[Why] 아이 없는 결혼, 나름 가치있지 않나요?

이주윤 작가 입력 2017. 6. 24. 03:03 수정 2017. 6. 26.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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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윤의 너희가 솔로를 아느냐]
하고픈 일 많은 '나'
목숨 바쳐 아이 낳을 용기
자식 위해 살 자신 없는데
/일러스트=이주윤

겉모습은 마흔일곱쯤 되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서른아홉밖에 먹지 않은 남자와 소개팅을 했다. 그는 마흔이 되기 전에 결혼하고 싶다는 자신의 목표를 뚜렷이 밝혔다. 어차피 사십대로 보이는 마당에 올해 결혼하나 내년에 결혼하나 그게 그거일 것 같은데 무어 그리 서두르실까. 만난 지 삼십 분 만에 나의 가족 관계와 아버지 직업은 물론이요, 글을 써서 벌어들이는 돈은 얼마나 되며, 자취방이 월세인지 전세인지까지 캐물은 걸 보면 말이다. 무슨 면접관이라도 되는 양, 나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귀담아들으며 고개를 주억거리거나 골똘한 표정을 짓는 그의 모습에 하마터면 실소를 터뜨릴 뻔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 마시고 자빠졌네.

김칫국을 마셔도 너무 마신 그가 말했다. "저는 있잖아요. 주윤씨한테 바라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다른 건 제가 다 준비할 테니까 그냥 몸만 오시면 됩니다. 배 속에 삼 개월쯤 된 아기를 넣어서 오시면 금상첨화고요, 하하!" 그는 자기가 한 말이 굉장히 센스 있다고 생각했는지 호쾌하게 웃어댔다. 그러나 정작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정자 운동성이 저하되어 가고 있는 그의 급박한 상황이야 백번 이해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초면의 여자에게 혼전 임신을 권하다니. 지금 당장 손잡고 러브호텔에 가자는 말과 진배없이 느껴졌다. 그의 무례함에 기가 찼다. 여보세요, 아저씨! 내 난자는 당신 정자를 만날 생각이 요만큼도 없어요. 아니, 당신 정자보다 훠어어얼씬 더 잘난 정자가 와서 꼬리 쳐도 평생 안 받아 줄 거거든요!

나는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는 낳고 싶지 않다. 엄마가 아이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세상의 모든 자식은 제 어머니를 통해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숙취 같은 입덧을 견디며 열 달 동안 아이를 품을 의지도, 온몸의 뼈마디가 벌어지는 고통 속에서 목숨 바쳐 아이를 낳을 용기도, 혼자만의 시간이라고는 일분일초도 없이 온종일 아이에게만 매달릴 자신도 내게는 없다. 자라나는 아이를 보며 얻는 기쁨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아이 없이 사는 삶도 나름의 가치가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아직 철없게도 하고 싶은 일도 많고 되고 싶은 것도 많다. 이러한 연유로 내 삶을 아이에게 내어주는 대신 오롯이 나만을 위해 쓰고자 한다. 이렇게나 욕심 많은 나에게 엄마라는 이름은 너무 벅차다.

나는 이런 나의 생각을 그에게 또박또박 전했다. 그는 적잖이 당황했는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이내 흥분하며 반박했다. "여자로 태어났으면 당연히 아기를 낳아야 되는 거 아니에요? 어쩜 그렇게 자기 생각만 하세요? 아기도 안 낳을 거면서 결혼은 왜 하려고 하는데요? 그냥 연애나 하시지." 내가 내 자궁 안 쓰겠다는데 뭔 말이 이리 많어. 아, 그리고 당신이랑은 결혼 안 할 거니까 상관 마시라고요! 그나저나 마흔 되려면 육 개월밖에 남지 않았는데 이렇게 말꼬리 잡고 늘어질 시간이 있나? 여기서 나랑 왈가왈부하고 있을 게 아니라 얼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다른 여자 만나러 가는 게 이익일 텐데. 사람 답답하기는. 아무래도 이 남자, 마흔 되기 전에 결혼하기는 영 틀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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