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뚤어진 모정·양심버린 교수·나몰라 학생..'대학농단 막장극'

2017. 6. 23. 21:4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최순실, 김종 차관 합격 부탁
차관→학장→입학처장→총장
처장, 면접위원들에 "금메달이야"

부정입학 뒤에도 치맛바람
제적 위기에 대리 수강 등 특혜
반성없는 교수들 거짓 진술만

재판부, 엄중한 비판
대학에 대한 신뢰 허물어뜨려
'빽도 능력' 냉소 사회에 퍼져

[한겨레]

자신의 딸에게 특혜를 주려는 최순실씨의 삐뚤어진 모정과 ‘비선 실세’ 앞에서 교육자의 양심을 저버린 이화여대 교수들이 합작한 ‘교육농단’ 사건이 관련자 전원에 대한 무거운 처벌로 일단락됐다. 법원은 23일 최씨와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 등 ‘이대 입학·학사 비리’ 관련자 9명의 유죄를 선고하며 비상식적으로 진행된 특혜와 불법을 조목조목 질타했다. 재판부의 표현대로 “대학에 대한 신뢰 자체를 허물어뜨리는” 범죄가 재판을 통해 전모를 드러냈다.

최씨는 딸 정씨가 2014년 9월 이대에 ‘체육특기자 전형 수시모집’에 지원한 직후 김종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을 만나 “합격할 수 있도록 부탁해달라”고 말했다. 김 전 차관은 이를 김경숙 당시 이대 신산업융합대학장에게 전달했다. 김 학장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은 남궁곤 당시 이대 입학처장은 ‘유력인사’ 정윤회씨의 딸이 체육특기자 전형에 지원했다고 최경희 당시 총장에게 보고했고, 최 총장은 정씨의 선발을 지시했다.

남궁 처장은 한 달 뒤 수시모집 면접 오리엔테이션에서 면접위원들에게 “수시모집에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가 있다고 총장님께 보고 드렸더니 총장님이 무조건 뽑으라고 한다”고 말했고, 면접고사장으로 이동하는 면접위원들을 쫓아가면서 손나팔로 “금메달입니다. 금메달”이라고 소리까지 쳤다. 정씨는 면접장에 금메달을 걸고 들어갔다.

이에 서울중앙지법 형사29부(재판장 김수정)는 이날 최 전 총장과 남궁 전 처장, 김 전 학장의 양형 이유를 밝히며 “누구나 자신의 노력과 능력에 따라 공평하게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다는 사회의 믿음을 뿌리부터 흔들리게 만들었다”면서 “공정한 입시를 믿었던 당시 수험생, 학부형의 분노나 예비 대학생, 학부형의 불신 역시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비선 실세’에 호응하는 교수들의 부정은 입학 뒤에도 계속됐다. 정씨는 2015년 1학기에 수강한 8개 수업 중 7개에서 에프(F) 학점을 받아 평점 0.11을 기록해 학사경고를 받았고, 2016년에도 계속된 학사경고로 제적될 위기에 놓였다. 최순실씨는 최경희 총장을 통해 이인성, 류철균, 이원준 교수 등에게 ‘학점 민원’을 넣었고, 하정희 순천향대 교수에게는 정씨의 인터넷 강의 대리수강자를 구해달라고도 부탁했다. 덕분에 정씨는 2016년 1학기 2.27점, 여름학기 3.3점으로 평점이 급상승했다. 재판부는 “교과목을 최선을 다해 수강하고 공정한 평가를 기대했던 학생들의 허탈감과 배신감은 보상받을 길이 없다”면서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공정성이라는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등 이 사건 범행이 사회 전반에 가져온 유·무형의 결과나 파급효과는 실로 크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학자로서 양심을 버린 교수들은 반성은커녕, 지난해 12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책임을 떠넘기거나 거짓말을 되풀이했다. 재판부는 “진실과 책임소재가 밝혀지기를 바라는 국민의 염원을 뒤로한 채 국회 청문회에서 거짓 진술을 했다”며 최 전 총장, 김 전 학장, 남궁 전 처장, 류 교수의 국회 위증죄도 인정했다. 특히 이 모든 학사 부정의 정점에 있던 최 전 총장에게는 “막중한 지위에 수반되는 무거운 책임에 명백히 배치되고, 스스로 주창했던 ‘경쟁력 있는 이화’, ‘혁신 이화’라는 지향점과 너무나 거리가 멀다”며 이번 사태로 학교가 입은 불명예에 대한 책임을 묻기도 했다.

최 전 총장을 포함해 교수 8명이 처벌받았지만, 정작 특혜를 누린 당사자인 정유라씨는 지난달 말 귀국 직후 “제 전공도 모르고, 한 번도 대학에 가고 싶어하지 않았다. 엄마가 알아서 한 일이고 전혀 모른다”는 말을 내놓아 국민들에게 거듭 허탈감을 안기기도 했다.

하지만 재판과정에서 최씨의 ‘학사농단’이 출석자료 위조 등 고등학교(청담고) 때부터 지속됐다는 점에서, 정씨의 이런 ‘모르쇠’가 향후 검찰 조사와 재판과정에서 인정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재판부는 청담고 학사비리에 대해 “정씨는 허위 공문을 통해 불출석하고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고 봉사활동 확인서에 서명하는 등 공모관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대 학사 특혜도 “최씨와 정씨의 방문으로 시작됐다”며 공모관계를 인정하는 취지의 판결을 했다. 재판부가 정씨에게 “공범”이라는 표현을 쓴 만큼, 어떤 식으로든 정씨도 처벌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김민경 현소은 기자 salmat@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주주신청]
[▶ 페이스북][카카오톡][위코노미][정치BAR]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