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M-53과 이 땅의 곰들을 생각하며

2017. 6. 23.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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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한겨레]

최우리
미래라이프에디터석 미래팀 기자

먼 여행을 한 KM-53에게.

안녕. 나는 동물 같은 기자, 덕업일치를 실천하고 있는 기자, <한겨레> 미래팀에서 동물 기사를 쓰고 있는 최우리라고 해. 너는 지금 지리산에서 적응훈련 중이겠지. 너를 언제 어디에 풀어줄지는 박사님들이 계속 논의 중이래. 전에 살던 지리산 말고 이번에 네가 80㎞나 떨어져 발견된 경상북도 수도산에 그대로 방사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봤어.

내가 네 뒷조사를 좀 했어. 너의 이름은 KM-53. 2015년 1월 한국(Korea)에서 태어난 수컷(Male) 53번 반달가슴곰이란 뜻이지 너희 부모 이름은 CM-33과 CF-37(Female).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중국(China)에서 번식을 목적으로 들였고 너와 네 형제 KM-54를 낳았어. KM-54는 지금 지리산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다더구나.

너는 엄마랑 8개월 정도 지리산 자연적응장에서 지내다가 같은 해 9월부터 엄마와 떨어져 혼자 야생에서 살아갈 준비를 마쳤어. 야생에서 살기 위해 받아야 하는 훈련은 위협적인 상황을 만들어 네가 사람을 위험한 존재로 인식하는 거였어. 사람을 잊어버리는 훈련인 거지. 잘 마쳤으니까 방사했겠지? 그런데 넌 왜 수도산에서 사람이 먹는 초코파이랑 주스를 먹은 거야? 먹이가 부족하지도 않은 여름인데 말야. 새 동네가 낯설었던 걸까?

서재철 녹색연합 상근전문위원은 걱정 많이 해. 원래 야생곰은 쉽게 사람 눈에 띄지 않는대. 그런데 지리산에 방사된 너희들은 자꾸 사람 곁으로 오는 게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말야. 아마 지리산이 등산객도 많고 민가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너희가 야생성을 완벽하게 회복하는 데에는 모자람이 있지 않을까. 그런 의문도 남아 있어.

사실 난 이번에 네 소식을 듣고 다른 생각이 떠올랐어. 대학생 때 청계천을 걷다가 사육곰 반대운동을 벌이는 환경단체 회원들을 만난 적이 있거든. 그때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곰을 마치 가축보다 더 못한 환경에서 기르는 농가가 있다는 걸 알았거든. 곰의 웅담이나 발바닥 같은 걸 팔기 위해서지. 다행히 2024년에 곰 사육은 전면 폐지되지만, 아직 7년이나 남았어. 너도 그 좁고 더러운 우리에 갇힌 친구의 표정을 보면 많이 미안해질 거야. 또 동물원 우리 안에 있는 반달가슴곰도 있잖아. 이 곰들과 너의 차이는 무얼까. 한쪽에서는 복원을 하고 한쪽에서는 이용을 하는 모양새가 쉽게 이해가 안 됐어.

너를 지리산에 살도록 한 국립공원관리공단의 문광선 종복원기술원 복원기술부장님은 유전자가 달라서래. 너는 러시아 연해주와 중국, 북한 쪽에 사는 ‘우수리 아종’이라 다시 원래 살던 이 땅에 풀어줘도 되지만 사육곰들은 일본이나 대만에 살던 해양계 반달가슴곰이라 이 땅에 풀어주면 생물다양성을 훼손하고 생태계를 교란할 수 있는 거지. 그래서 사육곰은 이미 다 중성화수술을 시켰대. 혹여 너 같은 우수리 아종의 야생곰을 만나 번식하지 못하도록 말야. 근데 말야. 서울동물원에는 우수리 아종인데도 너와 달리 동물원에 있는 곰이 있어. 걔 입장에선 네가 참 부럽겠지?

방사곰, 사육곰, 동물원곰을 생각하면 생물다양성, 동물복지 등 어려운 질문을 하게 돼. 인간이 서식지를 빼앗았거나, 서식지에서 다른 곳으로 강제 이주시켰거나, 인공시설에 가둬두는 방식. 그동안 인간이 욕망 때문에 동물을 소비해온 온갖 방법이 다 있는 것 같아.

우리가 이제 와 복원하려 노력하고 있는 동물은 지리산의 너희 말고도 설악산과 월악산의 산양, 소백산의 여우도 있어. 들인 공이 꽤 돼. 2004년부터 지금까지 지리산 반달가슴곰 복원에 212억원이 들었어. 한 해 평균으로 계산해보면 반달가슴곰은 15억, 산양 3억, 여우 3억원씩 들어.

일단 국립공원관리공단은 2020년까지 지리산에 반달곰 50마리(현재 47마리)를 방사하는 게 1차 목표래. 복원의 끝은 곰이 살 수 있는 서식지가 완성된 뒤에나 가능하니까 거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릴 거야. 개발을 원하는 지역주민 및 지방자치단체와의 협의도 필요하고 말야.

이런, 편지지가 부족하네. 우리가 또 만날 일은 없겠지. 매정하게 들려도, 그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 그게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일 거야. 그럼 깊은 숲속에서 너희들끼리 무탈하게 잘 지내.

참, 초면에 반말해서 미안해. 그냥 쓰면 글이 너무 길어져서. 동물인 널 존중하지 않는 건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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