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고전학자의 브랜드 인문학] (1) 자신의 정체성을 알 때, 브랜드는 사치가 아닌 필요가 된다

김동훈 서양고전학자 2017. 6. 23.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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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프라다

영화 의 한 장면. 애니(앤 해서웨이, 왼쪽)는 유명 패션잡지 편집장 미란다(메릴 스트리프)의 조수가 된다. 명품 브랜드를 경멸하던 애니는 ‘자유로운 영혼’이 된 후에야 브랜드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브랜드(brand)의 희랍어 뿌리는 ‘스티그마’다. 이는 뾰족한 바늘로 찌른 자국, 점 등을 뜻한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는 충직한 종의 머리를 깎아 두피에 문신을 하고 머리카락이 자랄 때까지 기다린 뒤 은밀한 메신저로 보낸 이야기가 나온다. 이렇게 최초의 브랜드는 메시지였다. 지금도 브랜드를 만든 이들은 우리에게 뾰족한 바늘을 들이대고 있다. 현대의 소비자들은 고유의 역사성과 사회적 의미를 담고 있는 브랜드들을 통해 메시지를 듣고, 정체성을 획득한다. 현대의 브랜드와 그것의 의미를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서양고전학자 김동훈씨가 철학을 바탕으로 익숙한 브랜드의 의미를 들려준다.

브랜드는 탈영토화의 반복이다. 나는 프라다를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로 이해한다. 이 영화는 한 여인이 정체성을 얻어 탈주하는, 탈영토화를 보여준다.

저마다 악마로 보이는 사람이 있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비서의 눈에는 자신의 상사가 악마로 보인다. 그 상사는 최고 패션 잡지 ‘런웨이’의 편집장 미란다(메릴 스트리프). 프라다를 즐겨 입는 미란다가 비서 애니(앤 해서웨이)에게는 악마다. 편집장은 과하다 싶은 잔심부름으로 신출내기 비서를 한시도 가만두지 않는다. 그녀는 숨통을 꽉 틀어쥔 듯 비서를 부린다. 자신이 입던 코트며 핸드백을 아무렇게나 내던지기가 일쑤, 비서는 일일이 주워 담아 정리하기 바쁘다. 애니는 커피 심부름, 편집장의 전화 응대, 폭풍우 속에서 비행기 운항의 성사 여부 알아보기 등 온갖 업무로 자신이 무시받는 것 같아 서럽다. 어렵게 구한 직장에서 행여나 잘릴까봐 그녀는 매사에 애를 태운다. 그로 인해 아빠와의 관계, 남자친구와의 사랑에도 상당 부분 흠집이 가지만 애니는 꿋꿋하게 오늘 하루도 버틴다. 서러워도 참고 슬퍼도 또 참으며 편집장에게 미소로 달관한다.

■ 악마 미우치아 프라다

또 한 명의 악마가 있다. 브랜드 프라다의 세 번째 경영인. 28세에 미우치아 프라다는 경영을 맡게 되는데, 지난날 그녀의 삶은 패션과는 전혀 무관했다. 연극배우로 5년을 지냈으며 정치학을 전공한 사회당원인 데다가 페미니스트였다. 그녀가 사치라 여기며 한사코 반대하던 명품 소비. 그 명품 브랜드의 경영 일선에 나서게 된 것이다.

프라다는 1913년 패션디자이너 마리오 프라다가 가죽 제품 전문 매장을 이탈리아 밀라노에 열면서 시작되었다. 핸드백, 장갑, 액세서리 등의 가죽 제품으로 큰 인기를 끄는가 싶더니 1919년에는 이탈리아 왕실에 명품을 공급하는 업체가 되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으로 번영의 기쁨도 잠시, 유럽 경기가 침체되면서 프라다 역시 내리막길에 들어선다. 설상가상으로 1958년 창업자가 사망하고 그의 딸인 루이자 프라다가 가업을 잇기는 했지만, 가족기업을 명품 브랜드로 만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977년에 루이자의 딸이자 창업자의 손녀인 미우치아 프라다가 3대 회장이 된다. 젊은 시절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 골목골목 전단을 뿌리며 선동했던 미우치아가 이제는 쓰러져 가는 프라다에서 살아남자고 직원들에게 몸부림쳤다. 그렇게 악마가 됐다. 그러면서 프라다는 기적적으로 회생한다.

■ 편집장 미란다-되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당신은 오늘도 프라다를 입는다. 당신은 쌍둥이 엄마다. 이혼의 쓰라림 속에서 아이들을 생각하면 밤잠을 설치게 된다(이 부분에서 처음 목격하게 되는 메릴 스트리프의 화장 안 한 얼굴. 그 민낯을 보자니 맘이 더 짠하다). 아침이면 또다시 시작되는 편집장의 일상. 어지간한 독종이 되지 않고서는 이 바닥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당신은 커리어우먼의 전형이 되어야 한다. 이런 당신을 이 사회는 악마라고 한다. 당신은 일부러 프라다를 입는다.

새로 입사한 비서를 보면 당신의 20대가 떠오른다. 어린 비서도 이 고착된 사회에서 한 여자로 살아남는 법을 알게 될 것이다. 당신과 함께 일하는 인연이니, 그녀가 반듯하게 살도록 해주고 싶다. 하지만 그녀에게 자상할 수는 없다. 어느덧 그녀도 당신을 겪어나가면서 이해하게 될 것이고, 그때에는 제법 근사한 여자로 변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말하겠지.

“악마에게도 본받을 구석이 있네.”

■ 자유가 있을 때 비로소 선택할 수 있다

사양길에 접어들었던 프라다의 재도약은 미우치아의 특별한 패션 감각과 디자인 때문이었다. 당시 많은 디자이너들은 육감적인 여성의 몸을 드러내고자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이런 디자인은 상당히 거추장스러운 것. 그래서 미우치아는 우아함을 살리면서도 여성의 자유로움을 극대화할 수 있는 단순하고 실용적인 디자인을 과감하게 선보인다. 자신의 이런 요구를 다른 여성들도 똑같이 갖고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단순성과 실용성을 위해 혼신의 힘을 쏟던 중 미우치아는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기존 가죽으로는 보다 더 단순한 디자인을 만들 수 없다는 것. 그러자 그녀는 다른 디자이너들이 꿈꾸지 못한 일을 한다. 가장 실용적일 수밖에 없었던 군인들 소재에 눈을 돌린 것이다. 급기야 군용 물품 중에서 방수성이 높은 포코노나일론에 접속하게 된다. 프라다는 이 소재를 활용하여 백팩과 토트백 세트를 선보였는데, 3년여 만에 전 세계 백화점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이로 인해 미우치아는 프라다를 명실상부한 명품 브랜드로 올려놓게 된 것이다.

프라다의 성공 요인이 실용성이나 단순성이라는 스타일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 이상의 무엇이 있었다. 군용 소재에 눈길을 돌리고(접속) 그것을 가방의 소재로 활용(배치)할 수 있는 데에는 단지 패션 스타일의 변화를 선도했다고만 보기에 부족한 또 다른 무엇이 있었다. 정치학을 공부한 미우치아는 사회당원으로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극단적인 페미니스트였다. 그녀는 뜻하지 않게 가업을 물려받을 때 기존 패션의 경향이 의존적인 여성상을 생산해낸다고 여겼다. 페미니즘이 외부의 어떤 강제력으로부터 벗어나 여성 정체성을 확보하는 것으로 요약된다면, 프라다의 정신은 인간의 기본 권리인 자유와 맞닿아 있다. 프라다 브랜드는 우리의 정체성이 자유정신으로 무장토록 한다. 그런 당당한 자유가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선택하게 된다.

■ 명품은 페미니스트의 적인가

특이한 점은, 정체성을 확립함으로써 자유로운 영혼이 되었을 때 브랜드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 바로 이 지점에서 소비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프라다의 미우치아가 이전 귀족풍의 디자인에 반감을 가졌듯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애니도 줄곧 명품을 거부한다. “왜 명품은 페미니스트의 적인가?” 영화 초반에 애니가 읽은 기사의 제목이다. 법학을 전공한 애니 또한 페미니스트임을 드러내는 장치로서 브랜드를 경멸하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그런데 영화 후반에 이르러 애니는 프라다를 입는다. 한 명의 과격한 페미니스트가 명품을 만드는 사람이 되었듯, 또 한 명은 그 명품을 소비하는 사람이 되었다.

명품 소비는 과연 사치스럽고 불필요한 것일까? 사치는 불필요한 것을 소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브랜드는 불필요한 것이 될 때 사치가 되고, 필요한 것이 될 때는 건전한 소비가 된다. 명품을 소비하는 것 자체에 ‘사치’나 ‘필요’라는 낙인이 찍혀 있는 게 아니다. 보다 분명한 이해를 돕기 위해 들뢰즈와 가타리의 ‘기계적 욕망’ 개념을 살펴보자.

<천개의 고원>에서 밝히는 ‘기계’는 한낱 부품에 불과한 것으로, (사치인지 필요인지에 대한) 성격은 기계들끼리 접속하고 배치되면서 달라진다. 예컨대 프라다 부티크에서 프라다를 판매하는 매니저가 사치하지 않으려고 저렴한 옷을 입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프라다를 찾는 고객과 접속하고 매니저로 배치된 이상 고가의 프라다를 입는다는 것으로 사치스럽다고 손가락질할 수는 없다. 우리 손이 운전대와 접속하면 운전하는 손이 되고 지휘봉을 잡으면 지휘하는 손이 되지만, 다른 사람의 손과 접속하면 악수하는 손이 된다. 운전사인지 지휘자인지, 아니면 친구인지 하는 것은 손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손의 접속과 배치에 달린 문제다. 브랜드의 소비도 이와 같다. 외부와의 접속과 배치를 통해 ‘욕망’은 사치가 아닌 필요가 되는데, 이것이 ‘기계적 욕망’이며 브랜드에 대한 욕망도 그와 같은 것이다.

이 영화에서 콘셉트 회의 장면이 있다. 미란다는 옷의 온갖 샘플을 골라 이러저러하게 배치하면서 콘셉트를 잡고 있다. 그러던 중 거의 유사한 색깔의 벨트를 그 옷에 접속시킨다. 이런 장면을 처음 목격한 애니는 그만 웃음을 터뜨린다.

“뭐가 우습니?” (…) “이런, 넌 네 옷장으로 가서 뭐니 그 울퉁불퉁한 블루 스웨터를 골랐나 보네. 하지만 넌 그 스웨터는 단순한 블루색이 아니란 걸 모르나 보구나. 그건 터쿼즈색이 아니라 정확히는 셀룰리언색이란 거야. 2002년에 오스카 드 라 렌타가 셀룰리언색 가운을 발표했었지. 그 후에 입생 로랑이 군용 셀룰리언색 재킷을 선보였었고, 그 후 여덟 명의 다른 디자이너들 발표회에서 셀룰리언색은 속속 등장하게 되었지. 그런 후에 백화점으로 내려갔고 끔찍한 캐주얼 코너로 넘어간 거지. 그렇지만 그 블루색은 수많은 재화와 일자리를 창출했어. 좀 웃기지 않니? 패션계와 상관없다는 네가 사실은 패션계 사람들이 고른 색깔의 스웨터를 입고 있다는 게? 그것도 이런 물건들 사이에서 고른!”

이 회의가 끝난 뒤 프라다와 같은 명품 소비에 경멸을 느꼈던 애니는 이제 생각이 바뀐다. 한껏 차려입고 화장을 고치다가 애니는 문득 거울을 보면서 예전의 자신을 떠올린다. 이제는 그 얼굴에서 브랜드를 향한 반감의 눈빛이 사라졌다.

■ 소비에 앞서 정체성을, 과시에 앞서 나다움을

진정한 아름다움은 몸의 노출보다는 자신다움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여긴 미우치아는 지속적으로 패션의 개념을 파괴해 나갔다. 사회의 통념에 길들여지지 않고 소재가 됐든 디자인이 됐든 새로운 접근(접속)과 배치로 영역(영토)을 만들고 또 벗어나면서(탈주) 프라다는 우리가 정체성에 관심을 갖도록 만든다. <천개의 고원>에 따르면, 접속-배치-영토화-탈주-탈영토화를 통해 존재가 생성되듯 브랜드는 이 과정을 거치며 계속 새로워진다. 바로 이 점에서 브랜드는 탈영토화를 반복한다. 그 브랜드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 그러니까 접속, 배치, 영토화, 탈주, 탈영토화를 찾도록 자극한다.

영화의 후반으로 넘어가 보자. “넌 나를 많이 닮은 것 같아. 사람들의 심중을 꿰뚫어 볼 줄 알고 본인을 위한 선택도 할 줄 알지.” 편집장의 이 말을 들은 뒤 애니는 이제 막 다져왔던 영토에서 탈주를 시도한다. 탈영토화를 위해서, 꿈꿔왔던 기자 생활에 도전하기 위해서. 상사 미란다에게 전화가 오면 쩔쩔매며 무조건 받았던 애니가 전화기를 분수에 내동댕이치고 너무나 자유롭게, 그리고 당당하게 미소를 지으며 걸어간다. 이제는 자기 자신의 정체성으로 다른 사람의 인생이 아닌 자신 인생을 향해 출발한다. 이런 비서의 반응에 편집장의 눈빛은 너무나 차갑다. 하지만 그 차가움도 잠시, 차 안에 들어간 미란다는 소신 있게 걸어가는 애니를 보고 혼자 흐뭇하게 생각한다. 곁에 있었던 한 여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알 때 ‘악마는 웃는다’. 아마도 자신이 젊은 시절 그랬듯, 그렇게 자신만의 영토를 만들어갈 애니가 대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소비에 앞선 정체성, 과시에 앞선 나다움, 그 나다움은 자녀와 접속하는 엄마로 배치된 나이기도 하고, 동료들과 접속하는 편집장으로 배치된 나이기도 하다. 그 영역(영토) 안에서 프라다를 입는 것은 비로소 ‘필요’가 된다. 브랜드는 사치가 아니라 필요다. 그렇다면 생각해 보자. 지금 나는 무엇과 접속하고 또 무엇으로 배치되어 있는가? 그 정체성을 알 때 브랜드는 ‘필요’가 된다.

지금 내가 선 땅에서 나를 버티게 하기 위해 나는 어떤 프라다가 필요한 것일까? 사회의 편견에 고착된 정체성은 사치를 조장한다. 과감히 그 영토를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는 정체성이 페미니즘이고, 변신이고 개혁이며 혁명이다. 내가 사용하는 브랜드는 나의 정체성인가? 자유를 찾아 진정 탈주하게 하는가? 나의 정체성을 찾는 브랜드, 그리고 또다시 그 브랜드를 떠날 때 웃어주는 브랜드를 나는 오늘 입는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주인공 애니처럼 명품 소비를 사치라 여긴 프라다 창업주 손녀 ‘미우치아 프라다’는 노출보다자신다움을 드러내는 것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라 생각했다. 미우치아는 지속적으로 패션의 개념을 파괴했다. 군용 소재로가방을 만들고 여성의 실루엣을 드러내기보다 단순 디자인을 했다. ‘접속-배치-영토화-탈주-탈영토화’를 통해 브랜드의 정체성을 찾도록 노력했다. 프라다의 정신은 인간의 기본권인 자유와 맞닿아 있다. 우리의 정체성을 자유정신으로 무장토록 한다. 그런 당당한 자유가 있을 때,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김동훈 서양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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