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똥구리 안에 온통 그리스가 담겨 있다!

이대희 기자 2017. 6. 23.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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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파게티만큼이나 일요일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있다.

침대에서 한발도 떼고 싶지 않은 나태함과 약간의 우울함, 권태, 스리슬쩍 느껴지는 육신의 피로가 일요일의 이미지를 채운다.

일상의 기억부터 일상을 지배한 사회적 공동의 기억이 부스스한 머리로 두서없이 방을 맴도는 일요일 오후 우리의 감성을 지배한다.

일요일 오후와 같은 무기력이 일상을 지배한다 느끼거나, 이유 없는 우울함을 뜨거운 햇빛 아래에 느껴본 이라면 관심을 가져도 무방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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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books] 정혜윤 CBS PD의 <인생의 일요일들>

[이대희 기자]

 
짜파게티만큼이나 일요일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있다. 약간의 숙취와 함께 느지막이 일어나 맞이하는 늘어진 햇빛, 정돈되지 않은 집안 구석구석 널린 지난 일주일의 흔적, 재미있다고도, 재미없다고도 말할 수 없는, 수년째 변함없이 시청자를 맞이하는 방송 프로그램. 

침대에서 한발도 떼고 싶지 않은 나태함과 약간의 우울함, 권태, 스리슬쩍 느껴지는 육신의 피로가 일요일의 이미지를 채운다. 경험상 일상이 바빴든 그렇지 않든, 일요일의 공기는 대체로 변함없었다. 

권태는 평화를 품기 마련이다. 평화는 기억을 되살린다. 불행히도, 항상 좋았던 기억만 떠오르는 건 아니다. 일상의 기억부터 일상을 지배한 사회적 공동의 기억이 부스스한 머리로 두서없이 방을 맴도는 일요일 오후 우리의 감성을 지배한다. 

▲<인생의 일요일들>(정혜윤 지음, 로고폴리스 펴냄) ⓒ프레시안
CBS 라디오 PD이자 여러 권의 책으로 고정 독자를 거느린 작가 정혜윤의 새 책 <인생의 일요일들>(로고폴리스 펴냄)은 기억에 관한 묶음 편지다. 

작가가 유독 일요일에 쓴 편지 39통을 독자에게 공개한 형태의 이 책은 관찰을 바탕에 둔 감성이 여린 문체로 정리된 또 다른 여행 에세이이자, 누군가에게 건네고픈 몽롱한 이야기다. 

어쩌면 몇몇 에피소드는 정신이 번쩍 드는 이야기들일 수 있다. 

그리스의 테살로니키에서 저자의 친구 '힘'은 쇠똥구리를 본 것이 제일 좋은 기억이었다고 말한다. 고대의 유적도, 빛나는 하얀 탑도 아닌 '쇠똥구리'라니! 

그러나 쇠똥구리를 보았다는 경험 속에는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진실들이 숨어 있다. 

"'야 여기, 쇠똥구리 한마리 있어' 그 뒤에는 윤기 흐르는 소, 소가 풀을 뜯는 푸른 목초지, 낮잠처럼 졸졸 흐르는 물, 뚝뚝 떨어지는 열매, 소방울 소리가 울려퍼지는 하늘, 다국적 사료회사에 휘둘리지 않는 농부들, 해 질 녁 소 잔등에 올라타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 해마다 새롭게 돌아와서 반가운 인사를 하는 생명들, 황금빛 일몰 속에 초록색 향기는 흐르고 오래된 세계에 새로운 선물인양 작은 제비꽃 하나가 고개를 내밀고."

그렇다. 쇠똥구리 한 마리에 그리스가 담겨 있다. 세계가 담겨 있다. 잔잔한 깨달음으로 주변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해고자의 이야기와 산토리니 여행기가 엮이고, 신화와 일상이 느긋하게 교차한다. 세월호 희생자의 이야기 대신 작가는 희생자 가족의 삶이 어떻게 되었는가를, 그 아이들의 방이 어떻게 되었는가를 궁금해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이야기한다. 

지쳐가는 일상에서 작은 위로의 단서를 뽑아내고, 일상을 극복하고자 떠난 여행에서 치유의 힘을 기어이 찾아내는 이야기가 편지 형태의 문체로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덕분에 책은 비단 일요일에 씌여졌다는 사실을 넘어, 서사에 일요일적 감성을 가득 품었다. 달큰하거나 쌉싸래한 글들은 온화한 기운을 머금고 어렴풋한 위로의 이야기를 독자에게 건넨다. 유독 출판사가 '성찰' '치유' 등의 명사를 강조한 이유일 터이다. 

편지 형식의 책이기에 이 책은 기본적으로 에세이로 읽힌다. 하지만, 어쩌면 시중에 떠도는 불량 자기계발서보다 뛰어난 치유의 언어 묶음으로 정리할 법도 싶다. 일요일 오후와 같은 무기력이 일상을 지배한다 느끼거나, 이유 없는 우울함을 뜨거운 햇빛 아래에 느껴본 이라면 관심을 가져도 무방할 책이다. 

이대희 기자 (eday@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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