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 "美 눈치보기 급급한 언론, '트럼프빠' 인가"

이재호 기자 2017. 6. 23.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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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문정인 특보 방미 동행한 김종대 정의당 의원

[이재호 기자]

 최근 문정인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이 동아시아재단과 우드로 윌슨 센터가 공동으로 주관한 세미나에 참석, "북한이 핵과 미사일 활동을 중단하면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를 포함한 한-미 연합군사훈련 규모 축소를 미국과 논의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을 두고 보수 세력과 주요 언론들이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비판 지점은 각자 다르지만, 이들이 공통적으로 우려하는 지점은 한 가지다. 한미 동맹, 정확히 말하면 미국의 군사력이 한국 안보의 핵심인데, 문 특보의 발언이 여기에 균열을 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번 문 특보의 방미길에 동행한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문 특보의 발언에 세 가지의 전제가 있었다면서 한미 동맹 균열은 과도한 해석이라고 항변했다.

김 의원은 "세 가지 전제가 있었다. 첫 번째는 북한의 핵 동결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미국과 협의한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은 문 특보 개인의 의견이며 정부 입장은 아니라는 것이었다"며 "연합 훈련을 중단한다는 것이 아니라 축소를 논의할 수 있다는 수준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언론들은 문 특보의 발언 이후 '워싱턴의 분위기가 싸늘하다', '트럼프가 한국의 사드 처리 방식에 화가 났다'등 미국이 문재인 정부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식의 보도를 쏟아냈다.

김 의원은 이에 대해 "국내 언론들이 "문재인은 뭐하고 있냐, 트럼프의 마음을 사서 한미동맹 강화 메시지 내야지. 무슨 딴 생각을 하고 있냐"는 식으로 보도하고 있다. 이건 뭐 '문빠' 저리가라 할 정도의 '트럼프빠'"라며 "트럼프의 완장을 차고 군기반장을 자임하는 세력들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윽박을 지르고 있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실제 워싱턴에 있는 전문가들 만나서 이야기해보면 실제 한미 정상회담이 파국으로 갈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런데 그 이유는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라 트럼프"라며 "이미 트럼프는 독일과 사실상 파국으로 치달았고 호주와도 껄끄러웠다. 만약 워싱턴에서 설문조사를 통해 한미정상회담이 파국으로 갈 경우 누구 때문일 것 같냐고 물어보면 트럼프라는 대답이 과반을 차지할 것"이라면서 국내 언론과 현지 분위기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서로 입장이 다르다고 해서 이런 걸로 동맹 깨자고 말하는 미국인들은 본적이 없다"며 "오히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지난 12일(현지 시각) '강대국 사이에 낀 한국'이란 제목의 사설을 통해 사드 배치 논란과 관련해 미국 정부가 한국의 입장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한국 대통령의 말에 귀를 기울일 때라고 주장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문정인 특보의 발언이 이미 북한과 미국에서 북핵 해결의 방법으로 제시된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김 의원은 "2015년 북한이 핵 동결과 한미 연합 군사훈련 축소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고 지난해 9월 나온 미국 외교협회(CFR)의 보고서에도 이러한 해법이 들어있다. 문 특보는 이를 보고 협상할만한 것이라고 생각해서 이를 좀 변형시킨 수준으로 언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그런데도 문 특보의 발언을 두고 안보를 허물어뜨린 것처럼 난리를 치는데, 미국 CFR에서 이야기할 때는 왜 가만히 있었나"라며 "지금 워싱턴은 대북 접근과 관련해 준비된 것이 하나도 없다. 압박만으로 안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면 한국 대통령이 어떤 제안을 하는지, 워싱턴은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접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22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김종대 정의당 의원 ⓒ프레시안(이재호)

프레시안 :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의 발언이 한동안 언론에 오르내렸는데, 실제 미국에서 문 특보의 발언이 이 정도의 파장이 있을 거라고 예상했나?

김종대 : 우선 문 특보의 발언이 나오게 된 행사 경위를 설명 드려야 할 것 같다. 발언이 나왔던 행사는 동아시아재단과 우드로 윌슨 센터가 공동으로 주관하던 세미나였다. 오전에 첫 번째 세션이 끝나고 점심시간에 기조 강연으로 문 특보가 25분 정도 연설을 했다. 그 다음에 간단한 질의 응답이 있었는데 그 때 문 특보가 한미 연합 군사훈련과 전략자산 도입 축소 발언을 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세 가지 전제가 있었다. 첫 번째는 북한의 핵 동결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미국과 협의한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은 문 특보 개인의 의견이며 정부 입장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또 연합 훈련을 중단한다는 것이 아니라 축소를 논의할 수 있다는 수준이었다.

이밖에 사드와 관련해서는 국내법에 따라 환경영향평가를 4계절에 걸쳐 해야 한다는 설명도 있었고 남북대화를 주도적으로 하지만, 북미대화와 공조해야 한다고도 밝혔다.

이러한 사항들에 대해 문 특보는, 특보 자격으로 굳이 이야기한다면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설계했던 사람으로서 설명한 것이라고 한정했다. 설계는 문 특보가 했을지 몰라도 실제 집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그 집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연설이 끝난 이후 오후 세션이 마무리된 다음에 워싱턴 특파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여기서 문 특보는 점심 때 했던 연설을 부연 설명했고 질의 응답으로 한 번 더 확인했다. 여기까지가 국내 언론에 보도된 경위 및 발언 내용의 전부다.

이후 문 특보는 다음날 뉴욕으로 이동해 아시아 소사이어티 재단이 주최한 행사에 참석해서 연설을 했는데, 이 때 연설에서는 전날 발언에 대해 개인의 견해고 학자의 소신이라고 밝혔다. 본국과 조율한 것도 없고, 특보는 월급 받는 자리도 아니고 의사 결정 과정에 들어가 있지도 않는, 그저 대통령이 필요할 때 자문을 해주는 역할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프레시안 : 그런데 문제가 됐던 세미나에서 마이클 그린 국제전략연구소(CSIS) 부소장이나 일부 전문가들이 상당히 비판적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김종대 : 그건 문 특보 연설이 아니라 저와 홍익표 의원이 참석했던 3세션에서 토론을 하다가 나오게 된 이야기였다. 당시 그린 뷰소장뿐만 아니라 길버트 로즈만 프린스턴 대학교 교수도 함께였는데, 한국이 미중 사이의 평화의 '중재자'가 되겠다는 것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한국이 무슨 중재를 하나? 미국과 중국이 긴밀한 대화를 하고 있는데. 중재를 한다는 근거가 무엇이냐"며 따져 물었다.

사드에 대해서도 문재인 정부가 사드 절차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중국의 눈치를 보면서 동맹을 약화시키는 행태고 한미일 3국 공조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제가 지난 정부에서 한미 양국이 사드 배치와 관련해 '과속' 사고를 냈는데, 실상을 잘 모르면서 동맹을 깼다는 식의 발상은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정부 간 약속이 정권이 바뀌어도 지켜져야 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왜 한미 FTA를 건드리려고 하냐, 미국은 하고 싶은 말 다 하면서 한국에만 뭐라고 하면 안되는 것 아니냐고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그린 부소장도 본인이 정부 입장을 말한 것은 아니라면서 유감을 표명했다.

프레시안 : 현지에서 문 특보의 발언을 들었던 언론들의 반응은 어땠나?

김종대 : 워싱턴 특파원들은 문 특보의 발언을 비교적 잘 이해한 것 같았다. 또 처음에는 기사가 강하게 나가지도 않았다. 그랬는데 월요일(19일) 조간에 <중앙일보>가 네 면을 할애해서 문 특보의 발언과 한미 관련한 기사를 쓰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사드 이어 문정인…싸늘해지는 워싱턴'이라는 제목의 기사부터 시작해서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려다가 퇴짜 맞았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문 특보의 발언을 한미 연합 훈련 축소 문제로 동맹에 악영향을 줬다는 식으로 묘사했다. 급기야 또 다른 매체에서는 사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조치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그렇게 되다 보니 청와대에서 관련 내용을 수습하려고 한 것 같다. 기사가 나간 그 날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문 특보에게 전화해서 더 이상 한미 정상회담에 부담이 되는 발언을 삼가고,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그런데 이걸 '엄중 경고'로 까지 받아들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 문정인 통일외교안보 대통령특보가 16일(현지 시각) 워싱턴DC 우드로윌슨센터에서 열린 제5차 한미대화 행사에서 오찬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프레시안 : 문정인 특보가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 정책의 골격을 만들었는데, 청와대가 수습에만 몰두하는 것은 결국 기존 정책에서 후퇴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나?

김종대 : 청와대의 현 관료들과 문 특보의 생각이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지금 청와대의 외교‧안보라인이 주로 외교관들 위주로 짜여져 있지 않나? 이들과 대통령 비서실장 등은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무난하게, 큰 탈 없이 가려고 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이른바 '좋은 모양'을 만드는데 치중한 것으로 보인다.

굳이 이 행사뿐만 아니라 여러 정황으로 봤을 때 청와대 안보실과 비서실은 조심하고 있는 것 같다. 사드 도입의 절차적 문제를 조사하고 있는데 이것이 꼭 철회는 아니라는 입장을 발표했다든지, 남북대화에 있어서도 서두르지 않으려는 인상을 보이려고 했던 것 등은 당분간은 방어적 관리에 치중하겠다는 경향으로 읽힌다.

그렇다 보니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진전된 대북 접근법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문정인 특보와는 분명히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청와대의 지금 입장보다 좀 더 당당한 외교를 선호하는 문정인 특보 입장에서는 지금보다는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좀 더 선명하게 우리의 입장을 가지고 주도해야 한다는, 즉 운전석에 한국이 앉아야 한다는 것이 문 특보의 생각이다.

한국 언론은 '트럼프 빠' 인가

프레시안 : 사실 북핵 문제를 풀려면 일단 북핵을 동결하고 이후에 폐기 수순으로 가야한다는 것에는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하고 있는 부분 아닌가?

김종대 : 그런데도 지금 보수언론들은 북한의 핵 무장이 너무나 진척돼서 동결이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지금 동결해도 북한은 이미 핵무장 단계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비핵화로 몰아붙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몰아붙이기만 하면 대화는 성사되지 않는다. 압박은 되는데 관여는 못하는, 이건 과거에 실패했던 방식이다. 그런데도 강한 고정관념에 젖어 있기 때문에 기조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과는 다른 접근법을 쓸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완강하게 거부하는 관념을 가지고 문제를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사실상 보수 언론들이 트럼프의 심기 경호를 노골적으로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북미대화가 먼저 이뤄져야 하고 그 전에 남북대화는 할 수 없고, 사드는 미국 의지대로 배치해서 트럼프에 협조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종합하면 결국 이렇게 밖에 결론을 낼 수밖에 없다.

'워싱턴 분위기가 싸늘하다', '트럼프가 화가 났다' 이건 결국 한국 대통령이 트럼프에 잘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미국은 분위기가 좀 다르다.

워싱턴에 있는 전문가들 만나서 이야기해보면 실제 한미 정상회담이 파국으로 갈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런데 그 이유는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라 트럼프에 있다. 이미 트럼프는 독일과 사실상 파국으로 치달았고 호주와도 껄끄러웠다. 만약 워싱턴에서 설문조사를 통해 한미정상회담이 파국으로 갈 경우 누구 때문일 것 같냐고 물어보면 트럼프라는 대답이 과반을 차지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조언은 어떻게 트럼프의 비위를 잘 맞춰줄 것인지에만 집중돼있다. 악수도 잘 하고 등도 두드려 주고 선물도 좀 줘야 하는 것 아니냐 등등 어떻게든 트럼프의 마음을 잡아서 정상회담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어이가 없는 건, 그렇게 예측불가능하고 충동적인 트럼프 대통령을 전 세계가 싫어하는데 왜 우리만 이렇게까지 사랑하는지 모르겠다는 점이다. 그런 사랑이 국가 이익에 도움이 된다손 치더라도, 특정 사안에 대해 이견이 있으면 앞으로 조정해나가면 되는 것이다. 어디까지 맞춰줄 셈인가?

국내 언론들은 "문재인은 뭐하고 있냐, 트럼프의 마음을 사서 한미동맹 강화 메시지 내야지. 무슨 딴 생각을 하고 있냐"는 식으로 보도하고 있다. 이건 뭐 '문빠' 저리가라 할 정도의 '트럼프빠'다. 트럼프의 완장을 차고 군기반장을 자임하는 세력들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윽박을 지르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문 특보의 발언을 의도적으로 부각시키는 셈이다. 

▲ 김종대 정의당 의원 ⓒ프레시안(이재호)

그런데 정작 미국에서는 한국 정부에 불만은 많을지언정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는다. 미국이 문재인 정부에 대해 감정이 좋지 않고 의심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제 북핵 문제를 풀 시간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이 문재인 정부가 엉뚱한 제안을 한다면서 까칠하게 나올 상황도 아니다.

지금 워싱턴은 대북 접근과 관련해서 준비된 것이 하나도 없다. 압박만으로 안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면 한국 대통령이 어떤 제안을 하는지, 워싱턴은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다.

서로 입장이 다르다고 해서 이런 걸로 동맹 깨자고 말하는 미국인들은 본적이 없다. 오히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지난 12일(현지 시각) '강대국 사이에 낀 한국'이란 제목의 사설을 통해 사드 배치 논란과 관련해 미국 정부가 한국의 입장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한국 대통령의 말에 귀를 기울일 때라고 주장한 것이다.

물론 노골적으로 협박을 하는 인사들도 있다. 스콧 스나이더 미국 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이 한국 정부가 사드 배치를 늦추면 트럼프는 주한 미군을 철수할 거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런데 평택에는 340만 평 규모의 주한미군 기지가 있다. 100억 달러 들여서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해외 미군 기지를 지었는데 거기서 미군이 나간다? 사드 하나 때문에? 이는 비상식적이고 근거도 없다. 그런데 이런 협박이 한국에 먹히는 것이 참 신기하기도 하고 문제이기도 하다.

문 특보의 제안, 이미 북한과 미국이 말했다

프레시안 : 그런데 문 특보의 연설에 화답이라도 하듯, 계춘영 주 인도 북한대사가 인도 방송과 인터뷰에서 "미국이 잠정적이든 영구적이든 대규모 군사 훈련을 완전히 중단한다면 우리 또한 (핵과 미사일) 실험을 잠정적으로 중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종대 : 시기적으로 볼 때 문 특보 발언 때문에 나왔나 싶은 생각이 들긴 하더라. 그런데 2015년 북한은 이와 유사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문 특보는 이걸 보고 협상할 만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미국 연설에서는 이걸 좀 변형시킨, 합리적인 수준으로 언급한 것이다.

그런데 북한의 이 제안은 지난해 9월 CFR에서 발표한 보고서에도 들어있는 해법이다. 북한도, 미국도 이미 했던 이야기를 문 특보가 변형해서 한 것 뿐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했다고 마치 안보를 허물어뜨린 것처럼 난리를 친다. 미국이 이야기할 때는 왜 가만히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결국 문 특보가 북한 당국과 미국 외교협회가 제시했던 것에서 조금 변형된 입장을 내놓았다면, 이 정도 선에서 대화를 끌고 나갈 수 있는 것 아닌가? 물론 안될 수도 있지만, 2005년 9.19 성명 나올 때만 해도 참가국들은 합의가 불가능한 지점에서 다시 협의‧조정하고 중간 합의서를 만드는 과정을 지루하게 거쳤다. 그러다가 전혀 공감대가 없는 입장들이 절충됐고 결국 합의서가 나왔다. 이렇게 만들 수도 있는데, 이런 이야기 자체를 하지 말라고 하니, 이런 몰상식이 어딨나.

프레시안 : 계 대사 발언이 북핵 문제 해결에 영향을 줄 수 있을까?

김종대 : 일단 계 대사 발언은 북한이 대화에 관심 있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본다. 문제는 북핵 문제를 해결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22일 <중앙일보>에서 북한이 이미 핵무기를 만들어서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는 북한 내부의 극비문서를 입수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와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은 인정할만한 부분이다.

그런데 북한 핵 개발의 특징은 공개주의다. 원래 냉전 시기에만 해도 핵을 개발하는 나라들은 몰래 개발하다가 실전 배치할 때 공개하면서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는 전략을 취했다. 그래야 국제 감시망을 피해서 핵 개발을 하고 순탄하게 핵 무장의 길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 인도 현지 방송 '위온'과 인터뷰하고 있는 계춘영 주인도 북한대사 ⓒ위온 유튜브 계정 갈무리

이와 비교해보면 북한은 정반대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열심히 외부에 공개하고 안 믿으면 영상을 보여주고 전문가들을 직접 불러서 보여주기도 한다. 북한이 실제 핵 무장에도 유리하지 않고 국제 재재를 당하면서 핵 위기를 자초하는 이런 행태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핵 개발 자체도 목적이지만 그 과정에서 대화의 판을 벌리겠다는 다른 정치적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게 없다면 해석될 수 없는 행동이다. 따라서 만일 북한이 핵을 정말 완성했다면 이를 대대적으로 공개했을 것이다.

북한 행태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이것이 주는 메시지를 읽고 우리가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전략적 사고가 함께 작동돼야 한다.

움직이는 미북, 발목 잡힌 한국

프레시안 : 문 특보의 북핵 문제 해결 방식 제안에 대해 미국 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전문가들은 있나?

김종대 : 관심을 표명하는 수준이었고 적극적인 평가는 없었다. 그게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사망하면서 미국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안그래도 북한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는데 웜비어의 사망이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특히 미국 국민들에게 미치는 정서적 충격이 크다. 그러다 보니 정치인들은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웜비어 사망 이후 미국 전략폭격기 B-1B가 한반도 상공에 진입했다. 주한미군은 이를 적극적으로 공개했다. 미국 국내와 북한에 메시지를 준 셈이다.

그런데 웜비어를 미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조셉 윤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북한에 갔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를 가진다. 북한 인권 문제를 강력하게 성토하면서도,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특사 외교가 주요했고 필요했다는 측면이 부각됐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웜비어의 사망이 앞으로 북미 관계를 포함한 동북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하나?

김종대 : 우선 북한에 대한 인권 문제가 주요 의제에서 누락될 수 없는 근거가 마련됐다고 본다. 주로 유엔을 통해 북한에 대한 인권 차원의 압박이 유지될 것이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미국은 북한과 물밑 대화를 계속할 것이다.

미국이 웜비어를 구출하려고 조셉 윤을 북한에 보낼 때 우리 정부에 알리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가 북한과 대화하면 미국에 불경죄를 저지르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미국도 자기들의 필요와 이익에 따라 얼마든지 대화한다. 이런 대목에 유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미국뿐만 아니라 러시아도 움직이고 있다. 대통령 특사로 러시아에 다녀온 송영길 의원에 따르면, 러시아가 조만간 북한에 특사를 보내겠다는 것을 우리한테 알려줬다고 한다.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 내기 위한 특사다.

이처럼 주변국들은 다 각자의 필요에 맞춰 해야할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우리만 미국에 불경스러운 짓을 저지를 수 없다며 발목이 잡혀있다. 미국은 해도 되고 우리는 엎드려야 한다는 이러한 관성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자유와 상상력은 고갈될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어차피 이미 정해진 것이기 때문에 준비를 해야겠지만, 일각에서는 정상회담이 너무 빨랐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나왔다.

김종대 : 문정인 특보가 조기 정상회담을 반대했다. 잘되면 축복이 될 수 있지만 위험 요소가 너무 크기 때문에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안보실장이 임명되고 안보실이 가동되기 시작하면서 정상회담 일자가 빨라졌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정상회담은 해야 한다. 그런데 좀 정리가 된 상태에서 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특히 북한에 특사를 보내는 것이 우선이냐, 한미 정상회담이 먼저 이뤄져야 하느냐를 두고 논란이 있을 수 있는데, 북한에서 봤을 때 받을 수밖에 없는 특사를 보냈다면 대북 접촉이 이뤄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특사를 먼저 보내서 북한 쪽이랑 대화도 나누고 그걸 밑천을 삼아서 한미 정상회담에서 우리 레버리지로 삼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다.

그런데 트럼프가 워낙 골칫거리이다 보니 미국을 먼저 만나고 그 다음에 북한과 접촉하는 것도 나름 합리적이다.

미국과 중국, 북한 중에 어디와 먼저 접촉할 것이냐를 결정할 때 아직 정책 결정이 제대로 돼 있지 않은 곳을 먼저 가는게 좋다. 예측이 안되는 곳을 먼저 가는게 수월한데 지금 미국은 어떤 상태인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어차피 정책이 결정돼있는 곳은 만나도 나올 이야기는 뻔하기 때문이다.

이재호 기자 (jh1128@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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