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룩 대화' 피하면 성공한 인터뷰

2017. 6. 23.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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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대화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가 중요
상대방의 말 열린 마음으로 들어야

꽤 오랜 시간 인터뷰를 하다보니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인터뷰를 잘할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2002년 대통령선거 직후 노무현 당선자는 안희정 충남도지사에게서 질문을 받았다. “인터뷰 요청을 받았는데 잘할 수 있는 요령이 뭡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러겠네, 고민이겠네”라며 잠시 뜸을 들인 후 “묻는 말 잘 듣고 똑바로 대답하면 돼”라고 답했다.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인터뷰를 잘하는 방법으로 그만한 답도 없겠다 싶다.

인터뷰는 기본적으로 ‘대화’이다.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이해해서 적절히 대답하며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관건이다.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잘 듣고 똑바로 답하면 돼”

가수 고 신해철(사진)씨에게 “열려 있는 인터뷰어”라는 말을 들었던 지승호씨는 “대화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라고 강조한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디자이너 정구호는 진중권 교수와 인터뷰하며 소통의 어려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다른 분야의 분들과 얘기할 때 처음엔 얘기가 잘된 것처럼 보이는데 결과가 엉뚱하게 나오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전 끊임없이 반복 체크해요. 확인에 재확인을 해서 결과가 나왔을 때 서로 생각했던 결과가 되게 노력하는 거죠. 그런 반복이라면 얼마든지 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프랑스 사상가 볼테르는 “나와 이야기하고 싶으면 먼저 당신의 용어를 정리하라”고 했다. 다른 분야에서 일하거나 세계관이 다르면 ‘이야기가 잘된 것처럼 보이는데 엉뚱한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용어도 상대방의 용어도 어느 정도 정리하고 가야 제대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나는 “인터뷰는 기술이 아니고 태도”라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나를 인터뷰한 <채널예스> 엄지혜 기자는 이런 글을 썼다. “2년 전, 인터뷰어 지승호 작가를 만났다. 대학생 때부터 그의 기사를 열심히 본 바 있었다. 나는 살짝 긴장됐으나 티를 내지 않았다. 내겐 너무 선배 아닌가? 하지만 웬걸, 선배 자세가 아니라 동료의 제스처였다. 내 질문에 대한 평가는 당연히 없었다. 지적은커녕 고마운 마음만 표했다. 인터뷰를 마쳤으면 이 원고는 인터뷰어의 것임을 존중했다. 상대가 나를 존중한다는 느낌이 들면 게임 끝. 그의 말처럼 모든 사람과의 대화는 기술이 아니고 태도다.”

그 말은 가수 고 신해철씨가 언젠가 내게 해준 말과 일맥상통한다. “지승호씨는 신뢰로 열려 있는 인터뷰어죠. ‘저 양반이 사생활을 물어보는 이유는 어떤 필요에 의해서다’ 그런 믿음이 있으니까 편하게 이야기했고. ‘저 인터뷰어가 나에게 와서 쥐어짜가려고 한다’ 이런 경우는 긴장이 되니까 싫은 것이고. 대화잖아요, 인터뷰는.” 인터뷰어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라고 생각한다.

독일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공동체 내 다른 사람에게 마땅히 해야 하는 첫 번째 섬김이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이라고 했다.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고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편견의 망치 내려놓고 색안경 벗으라

손석희 JTBC 보도 담당 사장이 MBC 아나운서 시절의 에피소드다. 손석희 아나운서의 보도에 항의하려고 회사 앞에서 삼천배를 하며 시위하는 시청자가 있었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손 아나운서는 인사라도 드리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해 그 시청자를 찾아갔다. 시청자는 오전 내내 삼천배를 하느라 지친 상태에서 눈앞에 손 아나운서가 보이자 다리가 풀려 털썩 주저앉았다. 그런 태도가 손석희를 ‘가장 신뢰받는 언론인’으로 만든 것이라 생각한다.

얼마 전 바른정당 김무성 의원의 ‘노 룩 패스’ 논란이 있었다. 김 의원이 수행비서에게 그런 태도를 취한 것은 상대방을 같이 일하는 동료로 생각하지 않아서였을 것이고, 우리 사회의 여러 ‘갑질 논란’ 역시 다른 사람을 세상을 같이 살아가는 동료로 생각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문제일 것이다.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은 “망치를 든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이는 법이다”라고 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색안경 끼고 보는 경우가 많다. 대화(인터뷰)는 상대방을 이해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진짜 대화를 하게 되면, 슬그머니 망치를 내려놓고 색안경을 벗고 상대방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앤드루 소벨과 제럴드 파나스가 쓴 <질문이 답을 바꾼다>에는 어떤 여성이 한 달 내에 19세기 영국 총리였던 대표적인 두 정치가 윌리엄 글래드스턴, 벤저민 디즈레일리와 각각 저녁 식사를 한 뒤 두 사람이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글래드스턴과 식사를 하고 나서는 그가 영국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디즈레일리와 식사를 하고 나서는 ‘내’가 영국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자신이 똑똑하다는 인상을 심어주는 것보다 상대방이 ‘내가 똑똑한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좋다. 내게 인터뷰를 잘할 수 있는 기술을 묻는다면, 해줄 수 있는 말은 결국 이것뿐이다.

지승호 인터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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