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참 "겸손·준비, 좌우명으로"..데뷔 45주년 맞은 국민MC(인터뷰①)
웃고 떠들다 임무 놓치기도
"'세모방' 나이 잊은 도전"
농사 이야기도 유쾌하게 풀어냈다. 말이 길어지는 줄도 몰랐다. 듣다 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국민MC라는 수식어는 그의 일상에서도 묻어났다. 32년 전 폐암 진단을 받은 아버지의 마지막을 위해 이사한 남양주에서의 생활 이야기는 듣는 사람들을 전원생활의 매력에 빠져들게 했다. 타고난 달변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올해 방송에 몸담은 지 45년을 맞은 그는 천생 '방송쟁이'였다.
그에게 MC로서 성공 요인을 묻자 “지금도 이유를 잘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다만 지금도 카메라 앞에 서면 설레고, 때론 무아지경에 빠질 만큼 즐겁다고 했다. 그의 좌우명은 ‘겸손과 준비’였다. 깔끔한 검정 슈트에 반짝이는 선글라스로 포인트를 준 이날의 옷차림도 대중에 대한 그의 깍듯한 예의였다.
“후배들에게 ‘선택 받는 자가 되도록 항상 노력하라’고 말해요. 힘들게 벌어서 괜한 곳에 펑펑 쓰지 말고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하면서 선택받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고요. 이 직업은 선택받지 못하면 못하는 일이니까요. 준비하고 있으면 기회가 왔을 때 덜 실수하거나 당황하거든요. 저 역시 항상 내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말이죠.”
◇"전문 MC 육성 없는 요즘 아쉬워"
'국민 MC‘의 위상은 인터뷰 내내 실감했다. 교복을 입은 중학생부터 나이가 지긋한 장년 여성까지 남녀노소 많은 이들이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래오래 방송을 해달라”는 수줍은 인사를 남기고 떠난 여중생에게 그는 “고맙다”며 사람 좋은 미소로 답했다.
지금의 허참이 있기까지 혹독한 훈련의 시간이 있었다. 말재주가 좋은 어머니를 닮은 그는 어려서부터 웅변대회를 자주 나갔다. 군 복무 시절 사단 내 방송 DJ를 맡았다. 부산 출신인 허참은 ‘쌀’을 ‘살’로 발음했다. 사투리 교정이 급선무였다. 그는 “선임들에게 혼도 많이 났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볼펜을 입에 물고 매일 소리 내 신문을 읽었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 늘면서 사투리 억양이 조금씩 돌아온다는 그는 “그럴 때마다 다시금 긴장한다”고 말했다.
최근 허참과 같은 전문 MC는 드물다. 아나운서 출신 프리랜서 MC가 여러 프로그램을 독점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정식 훈련 과정을 거친 방송인이 얼마 되지 않는다. 리포터부터 시작해 선배와 PD에게 교육을 받는 일은 과거가 됐다. 허참은 “유행과 흐름이 있어 어쩔 수 없지만 지나친 재미 위주 진행을 볼 땐 아쉬움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3년 넘게 진행했던 종합편성채널 MBN ‘엄지의 제왕’을 떠올리며 “우리가 훈련을 잘 받긴 잘 받았다”고 말했다.
“9시간 동안 2회 방송분을 녹화했는데, 한 번도 자리에 앉지 않았어요. 발바닥이 아프긴 하지만 참을 만해요. 한 번은 게스트석에 앉아서 강의를 들었는데 그렇게 잠이 쏟아지는 거예요. 패널들에게 ‘어떻게 졸음을 참고 있느냐’고 물었죠.”
세계로 뻗어나가는 예능 한류에선 격세지감을 느꼈다. 한때 일부 방송은 일본 프로그램을 무단으로 베꼈다. 그는 “예전에는 PD들과 단체로 부산을 가끔 찾았다. 부산에서 일본 전파가 잡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일본 방송을 모니터했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예능 포맷은 중국과 미국 등에 판매되고 있다. 그는 “방송사와 국가에 보탬이 되는 신바람 나는 일”이라며 후배들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리빙TV, 실버TV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케이블방송사의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세모방’에서도 의미를 찾았다. 그는 “그런 의미에서 유익한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허참 위원님은 여든세 번 크게 웃었고, 네 차례 웃겨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영원한 MC’ 허참은 오랜만에 프라임 시간대 예능으로 돌아왔다. 지난달 28일 첫 방송한 MBC ‘일밤-세상의 모든 방송’(이하 ‘세모방’)이다. ‘세모방’은 방송계 원로격인 ‘세모방 위원회’ 멤버들이 박명수, 박수홍 등 후배 방송인의 체험 영상을 보며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허참은 ‘세모방 위원회’ 의 한 명으로 후배들의 결과물을 감상하고 평가한다. 주어진 대본에 의한 진행이 익숙한 그에게 일종의 도전이다. 소수 MC 체제가 아닌 멀티 MC도 처음이다. 처음 출연 제안을 받고 신선한 포맷에 마음이 움직였다.
“요즘 새로운 것을 해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혼자 하는 데 익숙해요. 그것도 적절한 애드리브가 필요하지만 아주 달라요. (제작진이) ‘세모방’은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해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감정 기복이 심해요. 기분 내키는 대로 마음껏 웃고 떠들고 있습니다.”
‘세모방 위원회’는 허참을 비롯해 송해, 이상벽, 임백천 등 내로라하는 MC로 구성됐다. 허참은 MC 중 MC다. 특유의 힘찬 목소리로 진행의 흐름을 이어간다. 그는 “웃고 떠들다 보면 임무를 가끔은 놓친다. 그럴 때 작가들이 스케치북을 들어 ‘넘어가 달라’고 말한다”고 말했다. 그 가운데 임백천과 애드리브 등 역동적인 그의 모습은 웃음을 안긴다. 유머 감각은 그의 타고난 성격이었다.
“‘가족오락관’ 시절 하루는 카메라 감독이 화를 냈어요. 가만히 좀 있으라고요. 콩트도 하고 뿅망치도 맞고 하다 보니 스튜디오를 하도 왔다 갔다 했거든요. ‘그게 내 진행스타일’이라고 티격태격했어요. 이제 그런 시대가 왔어요. 출연자 1명에게 여러 명의 VJ가 붙어 여러 각도에서 촬영하잖아요. 일찌감치 시작한 거죠.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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