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서른살 '배구여제'의 새로운 도전, 대륙정벌에 나선 김연경

이정수 2017. 6. 23.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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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배구 슈퍼스타 김연경이 스포츠서울과의 창간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진천 |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진천=스포츠서울 이정수기자]한국 나이로 서른. 이 사회에서는 어딘가에 발을 딛고 안정된 인생을 살기를 요구하는 암묵적인 시선과 마주하게 되는 때다. 20대 시절과 환경이 크게 달라진 것도 없지만 주변의 시선 탓인지 스스로도 안정을 추구하게 된다. 안정된 수익을 얻고 싶고, 이를 토대로 안정된 가정을 꾸리고 싶으며, 안온함 속에서 여가생활도 누리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생각이 같을 수는 없다.

‘배구여제’ 김연경(29)은 안정을 아닌 도전을 택했다. 1988년 2월생, 올해 우리나이로 서른이 된 김연경은 6년 동안 지냈던 터키에서의 일상을 정리했다. 그의 발길이 향할 곳은 중국이다. 리그 상황이나 수준을 잘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생활환경도 낯설 것이 분명하다. 기존 소속팀이었던 터키 페네르바체가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붙잡았던 점을 돌이켜보면 안정을 택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운동선수들이 선수로서의 종착지를 내다보기 시작하는 우리 나이 서른에 그는 불안정 속으로 뛰어들었다. “아니 왜?”. “재밌잖아요!” 진천선수촌에서 만난 그는 기자를 부끄러운 30대로 만들어놨다.

◇‘여제’의 도장깨기, 이번엔 중국이다

지난 2005년 V리그 흥국생명에 입단하면서 프로선수의 커리어를 쌓기 시작했으니 어느새 12년이 됐다. 흥국생명에서 뛰던 때 신인이었던 2005~2006시즌부터 3시즌 연속 리그 우승, 2시즌 연속 챔피언을 달성하며 리그를 평정했다. 2009년 다음 무대로 삼았던 일본으로 건너가 하위권이었던 JT마블러스가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는데 선봉장 역할을 했다. 그리고 2011년 발을 내딛은 터키. 그의 선수인생이 만개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여자배구 선수들이 모인 그곳에서 정규리그 우승을 비롯해 컵대회, 유럽배구연맹(CEV) 컵대회, CEV 챔피언스리그까지 참가한 모든 대회에서 우승했다. 참가한 대회에서는 꼭 한 번씩 MVP로 뽑히기도 했다.

김연경은 “터키에서 6년을 지내는 동안 팀은 물론 개인적으로도 많은 것을 이뤘다. 더 이룰 것이 없었다. 가는 곳마다 우승을 경험하고 있는데 새로운 팀과 리그에서 다시 우승에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배구여제’의 이른바 ‘도장깨기’ 선언이다. “도장깨기? 잘 해야 될텐데…. 해내야 되는데…”라고 되뇌며 환하게 웃어보인 그는 “상하이 구단이 최고 대우를 해줬는데 그만큼의 역할은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자신감 넘치는 표정이었다. 오히려 ‘생각하니 즐겁다’라는 느낌이랄까. 눈빛을 빛내던 그는 갑자기 억울함을 호소했다. “돈 때문에 중국간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던데 억울하다. 터키에서도 비슷한 조건을 제시했다. 돈만 생각했다면 익숙한 터키에 있었을 것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자배구 슈퍼스타 김연경이 스포츠서울 창간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진천 |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서른, 경험과 나이가 바꾼 가치관

가수 이상은은 20대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20대 시절은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둡고 긴 터널같았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어둠 속에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내가 뿜는 빛이 너무 밝아 나 자신도 눈이 멀었던 시간이었다”고. 김연경이 지나온 그의 20대는 눈이 멀고도 남을 정도의 화려함, ‘최고’로 정리된다. 국내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으며 승승장구했다. 가는 곳마다 성공이 뒤따랐다. 대부분은 성공이 주는 달콤함을 놓치지 않으려, 더 큰 성공을 이루려 치열한 전투를 멈추지 않지만 성공을 경험해 본 김연경의 가치관은 반대로 변했다. “최고의 팀에서 최고의 선수가 되겠다는 것에 집착하면서 스트레스 받지 말자”는 것이 우리 나이 서른, 김연경의 생각이었다.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성공을 위해 달려온 지난 20대의 시간은 김연경에게 보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관대한 눈을 줬다. 그는 “사실 터키를 떠나자고 생각하고도 주저하는 마음이 컸다. 그곳에서 이룬 성공이 컸고, 그곳에 내 삶이 있었다. ‘최고의 자리에 다시 설 수 있을까’하는 걱정을 하면서 성공을 이룬 터키에서 ‘뛸 수 있을 때까지 뛰는게 맞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도 했다. 자고 일어나면 터키, 그 다음날은 중국으로 마음이 오락가락해 결정을 내리기까지 시간이 오래걸렸다”고 말했다. 그러던 그가 중국으로 마음을 정한 것은 가치관이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김연경은 “고민을 거듭하면서 ‘최고에 집착하지 말자. 스트레스 받지 말고 마음이 가는대로 결정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더 늦으면 기회도 없을 것 아닌가. 욕심을 내려놓으니 마음이 편해졌다. 지금은 새로운 환경을 즐겁게 생각하고 즐기면서 배구하고 싶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왜 나이 얘기를 하고 그러냐?”며 눈을 흘기면서도 “제가 나이가 좀 생기다 보니…”라고 답하는 김연경의 모습에 여유로움이 묻어났다.

여자배구 슈퍼스타 김연경이 스포츠서울과 창간인터뷰를 하고 있다. 진천 |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도전 삼세판, 또 한 번의 출발선에 서서

딱 1년 전에도 2016 리우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해 진천선수촌에서 훈련중인 김연경을 만났다. 같은 시기, 같은 장소였지만 김연경의 생각이 달라진 탓이었을까. 그의 표정은 1년 전에 비해 훨씬 밝았다. 본인은 “친구들과 몰디브에 휴가를 다녀와서 까맣게 탔다”고 했지만 밝은 에너지가 느껴지는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표정이 밝아졌다”고 하자 그는 “대표팀에 언니라고는 (김)해란 언니밖에 없을 정도로 선수들 나이가 많이 어려졌는데 정말 열심히들 한다. 분위기도 밝고 파이팅도 넘치고 재미있다”는 대답을 내놨다.

‘세계 최고’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김연경에게 없는 단 한가지가 올림픽 메달이다. 지난해 리우올림픽에서 메달획득을 노렸던 여자 배구대표팀은 8강에서 탈락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지난 2012년 런던올림픽 당시 4위에 그쳐 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으니 한이 쌓일만 했다. 그런 이유로 올림픽에 대한 열망을 좀처럼 누그러뜨릴 수가 없다. “더 쉬고 싶은데…”라고 투정을 부리면서도 다시 땀을 흘리고 있는 이유다. 김연경은 “지난해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고생많이 했다. 물론 아쉬웠다”면서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그 과정들이 하나의 영화처럼 머릿 속에 펼쳐진다. 그게 또 나름의 즐거움이 있다”고 말했다.

김연경이 포함된 여자 배구대표팀은 다음달 시작되는 국제배구연맹(FIVB) 월드 그랑프리를 준비하기 위해 진천선수촌에서 훈련중이다. 눈앞의 대회에 우선 시선이 쏠리지만 오는 2020년 도쿄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한 첫걸음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김연경은 “도쿄올림픽 때는 우리 나이로 서른 셋인데 그 때까지 체력이나 실력이 안떨어지면 좋겠다. 지금도 그러려고 노력하는 중”이라고 웃어보이면서 “올림픽 메달이라는 목표를 갖고 제가 가진 꿈을 향해 다시 도전하는 과정이 재미있다. 또다시 시작되는 이 과정을 즐겁게 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polaris@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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