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트레킹 | 일본 시코쿠오헨로길<下>] '신 불습합' 진언불교 1,200년 전통, 길로 이어져

월간산 글 · 사진 박정원 부장대우 2017. 6. 22.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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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마다 전설·신화 무궁무진..
51번 절 석수사, 시코쿠순례 유래 간직

일본의 세계유산은 총 19건이다. 이 중 자연유산 4곳과 문화유산 15곳이 유네스코에 등재돼 있다. 세계문화유산 15곳 중 일본 ‘기이산 영지의 성지순례루트’에 시코쿠오헨로길이 일부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월간산]약왕사의 본존이 활짝 개화한 벚꽃과 잘 어울린다.

엄격히 말하면 시코쿠오헨로길은 세계문화유산에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라현의 요시노吉野와 오미네大峯, 미에현의 구마노산잔熊野三山, 와카야마현의 고야산 등 일본 불교 진언종 총본산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기이산 영지와 참배길紀伊山地の靈場と参詣道: Sacred Sites and Pilgrimage Routes in the Kii Mountain Range’ 안에 코우보우 대사의 묘가 있는 고야산과 그가 창건한 밀교(진언종)의 유적이 다양하게 분포한다. 시코쿠오헨로길은 코우보우 대사가 밀교를 포교하기 위해 다닌 고야산과 연결되고, 그의 전설과 불교문화가 그대로 전하기 때문에 광의의 의미로 세계유산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기이산지는 일본 불교문화 경관을 이루는 신도 신사와 불교 사찰의 독특한 융합 형태로, 동아시아 종교 문화의 교류와 발전을 보여 주는 한 형태다. 일본 전역의 불교 사찰과 신사 건축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신사와 불교 사찰의 독특한 형태를 창조하는 배경이 됐다.

 여기서 잠시 일본 신도와 불교의 습합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코쿠순례길에서 만나는 불교문화를 이해하는 밑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 전통 샤머니즘이 산신山神이라면 일본 전통 샤머니즘은 신도神道다. 신도도 엄밀히 따지면 산신과 별로 다르지 않다. 신도는 일본 천황의 조상신이라고 믿는다. 그 조상신은 BC 2세기 즈음 정착생활, 즉 농경생활을 하면서부터 생겨났다.

신도신앙은 산, 폭포, 바위, 나무 등의 자연물을 신으로 숭배하면서 산 위나 언덕에 있던 고대 주거지와 연관시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는 고대사회에서 동서양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고대인들은 산신은 평야지대에서 벼농사에 필수적인 물과 도시의 발전에 필요한 금괴를 다스린다고 믿었다. 또한 그들은 첫 수도인 나라奈良를 세운 초대 천황을 지도하는 신이 산에 산다고 믿었다. 이러한 고대의 신도신앙에 어려운 교리를 익힐 필요 없이 주술적 주문만 외우면 도를 깨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불교 진언종은 어렵지 않게 습합과정을 거친다. 이게 일본만이 가진 독특한, 그리고 지금까지 전하는 신불습합신앙神佛習合信仰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기이산지도 일본 고유의 신불습합신앙의 결과물인 것이다.

그중에 고야산高野山이 있다. 고야산은 일본 공식지명으로는 없다. 해발 800m에 8개의 봉우리로 둘러싸인 분지 형태의 지역을 말한다. 고야산의 명소는 몇 군데 있다.

오쿠노인奥の院은 코우보우 대사, 즉 구카이의 묘가 있고 주변에는 20만 기 이상의 광대한 황실, 구게, 다이묘의 무덤들이 있는 곳이다. 단조가란壇上伽藍에 있는 금당은 고야산 전체의 총본당으로 주요 종교 행사가 벌어진다. 곤고부지金剛峰寺는 고야산 진언종의 총본산을 말한다. 이들은 시코쿠순례길에도 자주 눈에 띄는 개념들이다.

일본 천황의 조상신이 신도신앙의 神

구마노참배길熊野参詣道은 기이산지의 세 지역을 연결하는 길이고, 시코쿠순례길은 코우보우 대사가 천황의 명을 받아 시코쿠섬에서 포교한 자취를 따라 조성한 길이다. 5월호에 이어 순례길을 계속 따라 가보자.

5번 절 지장사를 나와 마을길 따라 걷다가 만난 젊은 순례객은 비석을 두리번거린다. 사실 우리도 절에 가면 무슨 뜻인지 모르는 비석과 현판들이 가득하다. 아마 일본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두 달째 걷고 있다는 이 젊은이도 그들의 문화를 더욱 알고 싶은 바람으로 시코쿠순례길을 걷는 게 아닌가 싶다.

어느 덧 6번 절 안락사에 도착했다. 숙소와 함께 있는 절이다. 일주문 현판에는 온천산溫泉山이란 글자가 보인다. 코우보우 대사는 인근 안락계곡에서 발견한 온천을 지금의 절로 가져오면서 절을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온천은 치유력이 뛰어나 고대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용했다고 전한다. 안락사와 온천산, 이것도 어울리는 조합이다. 절 분위기가 조용하고 안락하다. 사람들이 쉬어가기에 딱 좋은 분위기다. 절에는 순례객 뿐만 아니라 온천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숙소로 사용하면서 숙박자들이 제법 눈에 띈다. 숙방宿坊이란 글자도 눈에 띈다. 참배객 숙박을 위해 내주는 방이란 의미다. 안락사 숙방에서 하루를 보내면서 온천과 참배행사를 간략하게 체험한다.

이튿날 일정상 10번 절 절번사切幡寺로 향했다. 버스는 일주문 앞에 세운다. 절 이름은 없고 득도산得度山이란 현판만 보인다. 이전 절과는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이전 절들은 전부 도심에 있고, 절번사는 산 속으로 살짝 올라간다. 그래서 득도산이란 지명과 잘 어울린다.

[월간산]1 소산사 입구에 코우보우 대사의 동상이 있으며, 순례하는 사람들이 순례복을 입고 지나고 있다. 2 일본 순례객이 비석 주변을 서성거리며 무엇인가 구도의 자세로 찾고 있다.

코우보우 대사가 절을 창건하기 전 산에서 오두막을 짓고 수행을 하는 동안 그가 만난 소녀와 관련한 전설이 전한다. 코우보우 대사가 7일간 수행정진하는 동안 소녀는 모든 수발을 다 들었다. 그녀는 옷도 또한 직접 짰다. 7일이 지난 후 코우보우 대사는 그 소녀에게 실로 양말을 새로 짜 달라고 했다. 그녀는 요구대로 만들어 제공했다. 코우보우 대사는 그녀에게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물었다. 그녀는 교토에서 음모에 휩쓸려 죽는 분위기를 피해 어머니가 시코쿠로 피신해 와서 자신을 낳았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시코쿠로 와서 숨어 지낸다고 했다.

코우보우 대사는 그녀에게 출가를 권했고, 그 말을 들은 그녀는 즉시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됐다. 그녀의 소원도 ‘부처를 섬기는 몸이 되어 사람을 구하고 싶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 승려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천수관음보살의 모습으로 바뀌었다고 전한다. 즉신성불卽身成佛이 그래서 나왔고, 산 이름이 득도산이 됐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인간이 현재의 육신인 채로 궁극의 깨달음을 얻고 부처가 되는 것을 말한다. 이 전설로 인해 특히 여성들에게 유명한 절로 이름나 있다.

절 정상에는 2층 목탑이 있다. 333계단을 거쳐 올라간다. 올라가는 계단 길 양옆으로 삼나무가 빽빽이 우거져 더욱 운치를 더한다. 234계단이 남았다는 표시가 나온다. 이 계단 숫자도 뭔가 의미가 있을 법하지만 파악할 수 없다. 333계단을 다 오르면 관음보살을 모신 본당이 있다. 코우보우 대사를 모신 사당도 보인다. 그 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건립한 ‘절번사대탑切幡寺大塔’ 2층 목탑이 자태를 뽐낸다. 일본 국보급 문화재다. 목탑 앞에서는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내려오는 길은 삼나무숲길을 따라 걷는다. 살가운 공기감촉이 피부를 스쳐 지나간다.

절 간 거리가 너무 멀어 버스를 타고 12번째 절 소산사燒山寺로 직행한다. 절 위치가 해발 800m 정도 된다는 안내문이 있다. 절을 포함한 전체 산 지명은 소산사산이라 표시돼 있는데, 일주문에는 마려산摩廬山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정말 갑갑하다. 산마다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심오한 지명이 나오지만 가이드는 이에 대한 내용을 전혀 모른다. 일본 말을 할 수 없으니 물어볼 수도 없다.

소산사는 코우보우 대사 이전 세대인 엔노 교자 스님이 산에 살던 불타는 용을 진압한 뒤 절을 창건했다고 전한다. 100년 뒤 다시 코우보우 대사가 돌아와 보니 불타는 용이 지역 주민과 재산에 많은 피해를 입히고 있었다. 이에 코우보우 대사는 용을 진압한 뒤 동굴에 봉인하고 그 용을 지키게 하기 위해 두 개의 조각상을 조성했다. 그래서 ‘불타는 산’이라 이름을 지니게 됐다. 소산사 일주문에 있는 마려산은 그 불타는 산에서 수행하는 장소로서 절을 끊임없이 갈고 닦았다는 의미에서 사용했는지…. 마려산이란 의미가 알 듯 말 듯 아리송하다.

소산사는 깊은 산중 삼나무숲에 둘러싸여 조용하고 아늑하다. 아름드리 삼나무는 성인 대여섯 명이 양쪽 팔을 쭉 뻗어야 에워쌀 수 있을 듯 수령이 몇 백 년은 됐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 걷기에도 좋다. 수행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안성맞춤이다.

걸어서 내려오는 길 옆 산 속에 이상한 동상이 동굴 속에 있다. 동상 입구 주변에는 여러 개의 동자상이 지키고 있다. 지키는 건지 보호하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이 동굴 속의 동상은 일본 전통신앙인 신도에 지장보살이 현재화해서 어린이들을 보호하는 모습이라 한다. ‘아이들의 수호신’이면서 인간의 수명까지 관장한다고 하니 신불습합이 제대로 된 신앙을 엿볼 수 있다.

13번 절 대일사 주지는 유일한 한국인 여성

13번째 절 대일사까지는 25.3km. 버스를 타고 간다. 대일사는 유일하게 한국 여성이 주지로 있는 절로 유명하다. 그 주지는  우리 전통 승무춤 무형문화재 보유자이다. 원래 일본인 주지가 한국에 와서 승무춤을 추는 그녀를 보고 반해서 구애를 한 끝에 결혼하게 됐다고 한다. 남편은 먼저 죽고 한국인 부인이 일본 승려자격증을 따서 주지를 계승했다. 만나서 많은 것을 묻고 제대로 인터뷰를 하고 싶었지만 마침 미국 유학 중인 자식을 만나러 가고 없다고 한다. 안타깝다.

대일사부터는 다시 도심이다. 대일사 맞은편에 ‘대한민국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김앙선 한국전통무용연구소, 승무전수호’라는 간판도 보인다. 이치노미야 성 바로 옆에 신사와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대일사는 여느 절과 별반 다르지 않고 특징적인 모습도 없다. 특징이라면 다른 절 일주문 현판에 있는 산 이름이 없다. 지금까지 봐온 절 중에 유일하다.

일본 절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불상은 지장보살과 관음보살, 코우보우 대사다. 이들이 일본인들의 가슴속에 깊이 각인 된 듯한 인상이다.

시코쿠섬 도쿠시마현에서 에히메愛媛현으로 어느덧 넘어왔다. 동쪽에서 서쪽 끝으로 위치를 옮겼다. 일본에서 유명한 도고온천과 가깝기 때문이다. 에히메현에 있는 40~65번 절까지는 번뇌를 끊고 극락정토로 향하는 ‘보리菩提의 도량’에 속한다. 일정상 전부 둘러볼 수 없기 때문에 중간에 점프를 많이 한다.

47번 팔반사八坂寺로 버스를 타고 한참 왔다. 팔반사는 8개의 언덕이 있는 절이라는 의미다. 언덕 위에 절이 있어 이름과 유사하다는 느낌을 준다. 주변에는 절에서 관리하는 수많은 묘들이 있다. 우리 식으로 하자면 일종의 명당이다.

[월간산]1 코우보우 대사가 순례하는 여인을 보살펴주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2 코우보우 대사를 나타내는 산스크리트어와 자모신이란 글자 주변으로 많은 동자상이 있고, 동굴 안에는 지장보살상을 연상케 하는 불상이 있다.

48번 절 서림사까지는 4.5km. 시간관계상 버스를 타고 간다. 일본의 시골마을들이 대개 그러하듯이 마을 자체가 온화하다. 온화한 마을 중간에 절이 자리 잡고 있다. 조그만 개천을 건너 절이 있다. 서림사西林寺 일주문에는 청롱산淸瀧山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바로 옆 개천에 맑은 물이 흘러서 청롱산이란 지명이 붙었으리라 짐작이 간다.

49번 절 정토사淨土寺까지는 3.2km. 도로변으로 걷는다. 우리 같으면 ‘이것도 걷는 길이냐’라고 말이 나올 정도로 인도가 없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 옆으로 아슬아슬하게 걷는다. 전혀 내키는 길이 아니다. 도심 절을 따라 갈 때는 대개 인도가 없는 차도 옆으로 간다. 이런 길은 걷기보다는 버스나 자전거를 타고 지나치는 게 나을 성싶다.

정토사 일주문 현판에는 서림산西林山이란 지명이 걸려 있다. 아까는 서림사가 있었는데, 지금은 서림산이다. 정토사 뒤는 바로 야트막한 산이다. 그래서 서쪽의 숲이 있는 산이란 의미의 서림산이고, 거기에 깨끗한 극락정토의 절이 있다고 해서 정토사라 명명된 듯하다.

메이지유신 이후 신사와 사찰 분리

절 뒤쪽 산자락으로 걷기 좋은 길이 나 있다. 모처럼 난 숲속 길이다. 그 길을 따라 1.7km 떨어진 거리에 있는 50번 절 번다사繁多寺로 향한다. 같은 산자락이지만 방향이 조금 다른 곳에 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신불습합신앙을 하지만 1860년 메이지유신 신불분리를 전격 단행한다. 그 전까지는 신도와 불교 사찰이 공존해 절인지, 전통신앙인지 구분할 수 없었지만 메이지유신으로 인해 엄격하게 분리했다. 하지만 천 수백 년 동안 이어져온 신불습합의 전통이 워낙 강해 쉽게 분리될 수 없었다. 신도와 불교 분리정책 이후에도 절 맞은편에 신도를 조성한다든지 하는 형태로 공존한다. 번다사는 신도와 불교가 한 공간 안에 공존하는, 전국에 몇 안 되는 절이다.

이제 51번 절, 일정상 ‘보리도량’의 마지막 절 석수사石手寺로 간다. 거리는 2.8km. 석수사는 글자 그대로 ‘돌손’이라는 의미다. 도심에 있는 절이라 천천히 걷는다. 제법 큰 절이다. 석수사라는 이름의 유래가 시코쿠 순례의 시작과 관련 있다.

서기 824년 에몬 사부로라는 지방 호족이 있었다. 어느 날 그의 집에 코우보우 대사가 탁발하러 왔는데, 사부로는 빗자루로 내쫓아 버렸다. 코우보우 대사의 철발은 8개로 깨져 사방으로 튀었다. 그 다음날부터 사부로의 자식 8명이 차례로 죽었다. 사부로의 꿈에 코우보우 대사가 나타나 “시코쿠 사원을 순례하는 것으로 참회가 이루어진다”고 했다. 사부로는 후회하며 참회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코우보우 대사의 뒤를 쫓았지만 좀처럼 만날 수 없었다.

사부로는 21번째 절까지 갔다가 다시 뒤로 돌았다. 마침내 12번 소산지 기슭에서 힘이 다해 쓰러졌다. 거기에 코우보우 대사가 나타나 그에게 무엇을 희망하는지 물었다. 이에 사부로는 “후세에는 이요국 코노가河野家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하곤 숨을 거뒀다. 코우보우 대사는 사부로의 손에 ‘에몬사부로재래衛門三郞再來’라고 쓴 돌을 쥐게 한 후 재래를 기원했다. 나중에 코노가에 남자 아이가 태어났는데 손을 펴려고 하지 않았다. 간신히 편 그 손에서 ‘衛門三郞再來’라고 쓴 돌이 나왔다. 사부로가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는 커서 이요국의 성주가 됐다. 그리고 그 절을 이시테지로 이름을 바꾸도록 했다. 진위여부는 알 수 없지만 그 돌이 ‘석수사’에 보관돼 있다. 이것이 시코쿠 순례의 시작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석수사 일주문엔 웅야산熊野山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석수사와 웅야산의 관계는 도저히 알 길이 없다. 추측컨대 사부로가 수컷 곰같이 들판을 누비며 참회하던 시절과 연관시켜 웅야산이란 현판이 탄생한 게 아닌지 여길 뿐이다. 본당은 국보급 문화재다. 일본은 우리와 같이 문화재에 순위를 매기지 않고 그냥 국보급 문화재, 혹은 보물급 문화재로 분류한다. 석수사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일본의 유명한 도고온천이 있다. 하루 밤을 주변에서 보내기로 한다.

다음날 다시 현을 옮긴다. 가가와현으로 왔다. 마지막 수행과정인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열반의 도량인 66~88번까지의 절이 계속된다. 일정상 81번과 82번 절만 돌 수밖에 없다.

석수사에서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간다. 일본은 어느 산이든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무성하게 우거져 있다. 피톤치드가 코를 자극한다. 나무 향기는 언제 맡아도 항상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아오미네산 자락 절에 도착한다. 조용하다. 일주문 현판에 능송산綾松山이란 글자가 보이고, 백봉사白峯寺란 절이 방문객을 맞는다. 81번째 절이다. 비단 소나무가 있는 산에 흰 봉우리 절이란 이름이다. 비단 소나무를 찾기 위해서 두리번거리지만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분명 어딘가에 있을 것 같다. 절은 크고 나무가 우거져 너무 조용해서 사람 발길도 찾기 쉽지 않다.

[월간산]학림사의 화려한 3층 목탑

82번 절 근향사는 가가와현 유래와 관련

조용한 절에서 잠시 쉬다가 산길로 82번 절 근향사根香寺로 향한다. 근향사는 5km 떨어져 있지만 완전 산길로 이동한다. 차로 갈 수도 없다. 산길을 걷는 도중에 우리 산 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탑과 유사한 탑이 있다. 역시 일본은 전통 샤머니즘의 신도(신사)신앙이 매우 강한 듯하다. 우리의 산신신앙과 유사한 신앙이 곳곳에 보인다.

중간중간에 쉼터와 안내판도 잘 구비돼 있고, 일정 거리마다 불상이 가는 길을 안내한다. 그 불상만 따라 가도 길을 잃지 않겠다. 산은 우리 산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 숲은 훨씬 더 우거져 있다. 숲을 구성하는 나무와 곤충에 대해서도 자세한 설명문이 곳곳에 나온다.

산길 5km는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아직 산자락 숲 속이지만 삼나무가 더 우거진 숲 속에 절이 자리하고 있다. 82번 절 근향사다. 백봉사와 마찬가지로 해발 400m가량 된다고 안내한다. 근향사는 가가와현의 유래를 지닌 절이다. 현의 이름인 가가와香川 근향사를 수원水源으로 하고 있다.

가가와현의 으뜸 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만 개나 되는 관음보살을 모시고 있다. 또한 1,600여 년 전 코우보우 대사가 직접 심었다는 노거수가 고사목이 돼 밑동과 아름드리 줄기만 남아 있다. 어른 10명이 팔을 양쪽으로 뻗어야 둘러쌀 수 있을 정도로 두둑하다.

일주문에는 청봉산靑峰山이란 현판이 있다. 푸른 봉우리다. 주변 산세와 숲이 우거져 정말 푸르디푸르다. 그런 봉우리가 5개나 된다고 한다. 마하비로자나불을 상징하는 5개의 봉우리로 이뤄져 있다고 한다. 우리식으로 하자면 오대산이다. 주변을 살필 수 없으니 확인할 수는 없다. 그만큼 세력이 넓다는 의미로 보인다.

시코쿠순례, 아니 일본 불교는 우리와 같은 듯 다른 것 같다. 다르면서도 유사한 내용은 굉장히 많다. 언젠가 제대로 한 번 둘러볼 각오를 한다. 1,200년이 넘는 일본 진언밀교의 총본산이 있는 고야산부터 먼저 한 번 가봐야 할 것 같다. 일본 불교의 성지이자, 종교도시다. 그러면서 아직 그 문화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그들이 한편으로는 부럽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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