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전국 판사들, 양승태 대법원장 퇴진 요구 시작

이범준 기자 2017. 6. 22.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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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양승태 대법원장에 대한 일선 판사들의 사퇴요구가 시작됐다. 사법개혁 저지 의혹의 당사자이면서도 상황을 수습하지 않고 악화시킨다는 이유다. 대법원장에 대한 판사들의 사퇴 요구는 1988년 이후 거의 30년 만이다.

22일 법원 내부 통신망인 코트넷에는 양 대법원장의 사퇴와 입장 표명을 요구하는 판사들의 글이 잇따랐다. 지난 19일 일산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위해 법원행정처가 만든 전용 게시판에서다.

대법원 코트넷에는 양 대법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글이 이날 오전에만 5~6건이 이어졌다. 한 판사는 “이번 일은 1988년 김용철 대법원장이 (2차 사법파동으로) 중도 퇴진한 경우보다 상당히 심각한 사안”이라며 “대법원장께서 책임을 통감하고 사법부를 위하여 용단을 내리시는 것이 적절하다”고 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재판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와 관련 1988년 소장판사들은 김 대법원장을 비롯해 군사정부에 협조한 대법원 개편을 주장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판사 430여명이 서명했다. 결국 김 대법원장은 노태우 정부에서 사퇴했다. 마찬가지로 양 대법원장의 퇴진을 요구한 다른 판사는 “지난 19일 결의에서 대법원장 즉각 퇴진을 발의하자고 주장하기를 망설였던 제 얼굴이 화끈 거린다”고 했다.

양 대법원장의 입장 표명을 요구하는 글도 이어졌다. 다른 판사는 “왜 대법원장님은 아직까지 제대로 된 말씀이 없으시냐”며 “이 긴 침묵이 일선의 법관들로 하여금 논쟁을 만들고 상처를 심화시킨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판사는 법관대표회의에 관해 “한두 명도 아닌 100명이 의견을 모으려면 다수결을 통한 의사확인은 불가결한 절차(라는 것이) 상식이고 민주주의”라며 “회의장에서 뜨거운 논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고성과 상호비방이 난무했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또 다른 판사는 “(지난 3월 논란 이후로) 대법원장님께서는 마치 남 일 보듯 뒷짐지고 계시는 동안 판사들이 어떻게든 이 일을 해결해 보고자 노력한 결과 소집된 것이 월요일 회의”라고 했다. 이 판사는 “제가 몸담고 있는 사법부의 수장께서 이렇게 무책임하게 사법부를 나락으로 빠뜨리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덕분에 판사들은 편이 갈려 서로 싸우고 언론은 즐겁게 물어뜯고 있다. 대법원장님께서는 어떤 사법부를 원하는 것인지 대답을 해달라”고 호소했다.

한편 양 대법원장 사퇴 요구가 잇따른 게시판은 법관대표회의를 앞두고 행정처가 코트넷에 새롭게 만든 것이다. 코트넷에는 익명으로 글을 올리는 기능이 없었다. 판사들은 예전부터 자유로운 의견 개진을 위해 제도개선토론게시판 등에 익명기능 설치를 요구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이 때문에 대법원이 상고법원 제도를 추진하면서 판사들의 의견을 수렴하지도 않아도, 경력법관 임관 과정에서 국정원이 사상면접한 사실이 드러나도 판사들의 글이 없었다. 그런데 행정처가 이번 법관대표회의 게시판에만 익명 기능을 넣었고, 이후 법관대표회의를 공격하는 글과 이를 인용한 언론보도가 잇따랐다. 이 글들의 작성자로 다수 판사들은 행정처를 지목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초반에 올라온 글들은 법관회의 현장을 심각하게 왜곡한 것들”이라며 “전·현직 법원행정처 출신 판사들이 주축이 돼 올리는 것 같다”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전국 18개 법원 가운데 16개 법원 판사회의의 요구로 소집된 법관대표회의에 대해 양 대법원장이 침묵하는 사이에 본질과 동떨어진 매우 의심스러운 논란이 시작됐고, 양 대법원장은 침묵으로 확산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범준 기자 seirot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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