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의 눈]'철밥통행' 마지막 열차

박종성 논설위원 2017. 6. 21.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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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시험을 통해 인재를 뽑아 관리로 쓰기로 한 것은 획기적인 사건이다. 실력이 있는 자는 누구나 벼슬을 할 수 있고, 가문이 훌륭하지 않은 자라고 해도 비관할 필요가 없게 됐다. ‘실력이 갑’인 세상을 열어준 것이다. 중국의 수나라 문제는 과거제를 도입했고, 고려 광종은 이를 받아들였다. 과거제는 면면히 흘러 ‘공무원 고시’로 이어졌다. 지금도 공무원 시험은 사회적 계층이동의 사다리이다. 많은 국가들은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공무원을 선발하며 이들은 각종 혜택을 받고 국가에 봉사한다. 공직에 나서 ‘치국’과 ‘평천하’의 뜻을 펼치겠다는 호연지기는 나무랄 수 없다.

새 정부는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공언하고 출범했다. 대선 때 공약한 대로 청와대에 일자리 현황 전광판까지 만들었다. 정부의 의지는 단호하다. 정부는 민간부문이 일자리를 만들지 못하므로 공공부문에서라도 나서야 하며 이번에 골든타임을 놓치면 미래도 담보할 수 없다고 한다. 정부 정책의 핵심은 공무원을 포함한 공공부문 일자리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중 81만개 공공부문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하반기에 소방과 경찰, 사회복지, 군무원 등 1만2000개 공무원 일자리의 채용에도 착수했다.

정부가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한 근거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공공부문 일자리 비율이다. 이들 회원국의 경제활동인구 대비 공공부문 일자리는 평균 21.7% 수준(2015년 기준)이다. 정부는 공공부문 일자리가 8.9%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므로 이 분야 인력을 늘릴 여지가 있다고 한다. 여기에 사회복지 부문 인력이 적어 대국민 서비스를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유럽공공행정연수원은 2005년 ‘공무원 고용의 유연성’을 주제로 보고서를 발표한 적이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이 포함된 유럽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를 분석한 것이다. 보고서에서 몇 가지가 확인됐다. 우선 유럽 국가들의 공무원 고용보장 수준이 낮다는 사실이다. 덴마크, 네덜란드, 슬로베니아, 핀란드, 영국 등은 공무원에 대해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평생고용을 보장하지 않는다. 이들 국가에서는 업무성과, 경제적인 이유, 구조조정에 따라 공무원에 대한 해고도 가능하다. 평생고용을 보장하는 나라도 있지만 공무원의 신분보장 수준이 한국과 차이가 난다. 그럼에도 공무원을 해직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이들 국가는 풀타임 공무원보다는 파트타임이나 기간제 공무원 채용을 선호한다. 단기간 쓸 수 있는 인력을 늘려가는 추세다. 파트타임이나 기간제로 일하는 공공부문 종사자는 21%에 달한다. 연금비용 부담에 따른 재정 압박 때문이다. 보고서의 분석에서 알 수 있듯이 유럽 국가들의 공공부문 고용관행과 고용조건은 한국과 다르다. 또 공공부문을 민간부문과 나눌 분류기준도 국가별로 제각기 다르다. 한국의 공공부문 인력이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과 비교할 때 크게 차이 나는 것은 맞지만 숫자상의 차이만큼 한국 공공부문 인력이 부족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앞으로 5년간 17조2260억원을 투입해 공무원 17만4000명을 뽑겠다는 계획이다. 이들 공무원은 채용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일단 채용 뒤에는 평생고용을 해야 한다. 5년 뒤부터 매년 추가 비용이 발생하며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정부는 아직도 공무원연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천문학적인 액수를 추가로 보전해야 할 처지다. 유럽의 국가들이 많은 공무원을 유지할 수 있는 토대는 세금에서 나온다. 그러나 증세 논의는 없이 일자리를 늘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한국 공무원의 근무형태와 고용조건은 일본과 유사하다. 그런데 일본은 한국보다도 낮은 공공부문 인력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은 고령화 등으로 민간 서비스 요구가 한국보다 높다. ‘어떻게 적은 공공부문 인력으로 소방, 보건 서비스 등을 유지하는지’에 대해 일본을 배우는 것이 더욱더 급하다. 한국이 모델로 삼은 국가들은 지금 ‘어떻게 하면 공공부문 인력을 줄여 재정 압박에서 벗어날지’를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치러진 9급 지방공무원 공채 시험에 1만명을 뽑는 데 22만명이 지원했다. 경쟁률은 20 대 1을 훌쩍 뛰어넘었다. 청년들만이 아니다. 40대 이상 응시자도 1만5000명을 넘었다고 한다. 이번 정부 집권 시기가 ‘철밥통행 열차’를 탈 마지막 기회라며 공시족들이 달려들고 있다. 중소기업은 더욱 인력난에 처할 것이다. 공무원 증원의 목표 달성에 연연할 게 아니라, 늘리는 게 맞는지 따져보는 게 우선이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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