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노래]콜린 라빗의 '돌아오지 않는 소년병'-반전평화에 대해 눈뜨다

2017. 6. 21.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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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중학생이 되자 제일 먼저 변한 일 중 하나가 내 몫의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생긴 일이었다. 제 몸피보다 커다란 벽돌 같은 건전지를 검은 고무줄로 둘둘 말아붙인 조잡한 물건이었지만, 뜻밖에 음질은 좋았다. 이 라디오는 모두가 잠든 밤중에 이불 뒤집어쓰고 심야방송 듣기에 딱 적합했다. 휴대하기도 좋아서 시험치기 전날 공부한답시고 동무네 집에 갈 때 가지고 가면 인기만점이었다. 공부한다고 모여서는 혹시 내 엽서가 채택이 되었을까 하고 조마조마하며 듣는 심야방송의 즐거움을 누려본 사람들은 쉬이 잊지 못할 것이다.

소위 말하는 통기타 문화의 첫걸음을 떼던 우리 세대에게 초등학교때 목청껏 부르던 이미자, 조미미, 남진 등등은 촌스러웠다. 김추자는 최고였지만. 그럴 때, 가사는 알아듣지 못해도 세련된 발성법과 선율이 멋진 해외팝송을 주로 들려주던 심야방송은 신세계였다. 우리 동무들한테 인기 있었던 프로는 단연 <별이 빛나는 밤에>. 소수파로 <밤을 잊은 그대에게> 애청자 그룹이 있었다.

1971년 추첨제 2년차로 중학생이 된 우리는 여러 모로 불안정한 세대였다. 나중에 그 유명한 58년 개띠들이 되는 세대. 평준화의 혜택과 폐해를 고스란히 받아안았고, 문화적으로도 다양성과 선정성이 뒤섞였던 세대. 유신이 선포될 때 유신은 나쁜 것이라고 동시에 가르치던 교사가 아직 있기도 했던 세대다. 월남전 파병군인을 배웅하고자 부산항 부두에 나가 태극기를 흔들기도 한 동원 세대이고.

바로 이 월남전이 우리가, 내가 탐닉했던 <별밤>의 중요한 음악주제였다는 것을 나는 한참 뒤에 알았다. 존 바에즈와 밥 딜런이 우리 그룹의 우상이 되었고, 반전평화를 외치는 노래에서 환경문제·인권문제 등등으로 노래의 관심사는 번져가기 시작했다. 이런 어느날 방송에서 흘러나온 노래 하나에 마음이 꽂혔다. <돌아오지 않는 소년병>.

당시 고1이던 친구 언니가 대강 해석해준 가사는 그랬다. 열일곱살 어린 소년이 아직 어린데도 전쟁에 나가 돌아오지 못했다는. 그 전쟁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월남전일 거라는 데까지 의식이 미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슬펐다. 모든 전쟁에 반대하는 생각이 이때부터 싹트기 시작했나보다. 엽서마다 <돌아오지 않는 소년병>을 신청했고, 나직하게 읊조리는 여성가수의 목소리에 넋을 잃곤 했다. 목소리 하면 박인희가 최고였지만, 뜻도 모르는 이 슬픔 쪽이 훨씬 현실적이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인가 전혀 들을 수 없었다. 심지어 이 노래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 노래도 있었어’라는 반응을 동세대로부터 들을 때의 그 외로움. 흡사 딴나라에 살았던 듯한 그 느낌. 남들 모두 비틀즈 좋아할 때 롤링스톤즈를 좋아했던 것보다 좀 더 외로웠다.

사연이 있었던 것이다. <돌아오지 않는 소년병>은 가사 때문에 미국에서 금지곡이 되었다는 거다. 무명가수였던 콜린 라빗은 이 노래 때문에 미국에서 가수활동이 금지되기까지 했단다. 이를 아깝게 여긴 한 일본 음반업자가 옴니버스 음반에 실어 발매한 덕분에 DJ 백형두가 우리에게 들려줄 수 있었던 것. 그 이후로도 하필이면 금지곡을 콕 집어 좋아하던 역사는 이어졌지만, 이 노래가 처음이다. 유튜브 검색으로 이 노래를 다시 들을 수 있게 된 건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애잔한 트럼펫 소리와 담담한 듯 격렬한 가사는 아직 여물지 않은 내 영혼의 어떤 영역을 여전히 점령하고, 평화가 없는 지구에서 나는 여전히 난민이라고 속삭이고 있다.

Yes,

they called him a man,

a very brave man.

But he was really just a boy.

Just a freckle faced soldier.

<노혜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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