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골프매거진]My Dream, My Destiny
은퇴 뒤 7개월. ‘골프 여왕’ 박세리가 새로운 인생을 꿈꾸고 있다.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투어 25승, 명예의 전당 헌액 등 골퍼로서 최고의 영광을 맛봤지만 이대로 만족할 박세리가 아니다.
박세리는 은퇴 뒤 여유를 가질 새도 없이 새로운 사업 구상을 위해 뛰어들었다. 자신의 이름을 건 골프웨어 라인을 론칭하기로 계약했다. 상반기 중에는 박세리 와인도 출시된다. 아카데미 사업과 코스 디자인 등 더 큰 프로젝트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마흔 살. 새로운 인생 2막에 도전하고 있는 박세리의 표정에선 기대감과 긴장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Q : 지난해 말 은퇴하고 벌써 반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네요. 그동안의 근황은 어땠나요?
박세리(이하 박) :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나간 것 같아요. 지난해 10월 선수 생활을 마치고 이제는 일반인으로서 새로운 삶을 구상하고 있어요. 트레이닝룩 차림으로 마트에 가고 하나뿐인 조카의 학교에 가보는 등 삶의 여유가 생겼지만 역시 저는 바쁘게 사는 것이 더 익숙한 것 같아요. 선수 때처럼 많이 바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골프 관련 일을 해보고 싶은데 아직은 많이 모르고 부족하기 때문에 많은 분들을 찾아뵙고 있어요. 도움을 청하면서 배우고 있죠.
Q : 바쁘게 살다가 은퇴를 하면 공허한 기분이 드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박 : 저는 정말 후회 없이 선수 생활을 했어요. 또 후회가 남지 않도록 은퇴 전에 차근차근 정리의 시간을 가졌죠. 그래서인지 그런 느낌은 많이 들지 않았어요. 한 가지 아쉬움은 ‘시즌 때마다 봐왔던 후배들이나 친구들과 밥 한번이라도 더 먹었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현역 시절에는 시즌마다 매주 보니까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은퇴하고 나니 서로 경쟁했던 기억만 남는 거예요. 그때는 좀 여유를 가지지 못했었죠.
Q : 최근에 LPGA 로레나 오초아 매치플레이 대회에 출전했는데 친선 경기지만 오랜만에 경기를 한 소감은?
박 : 정말 많이 달랐어요. 예전에는 이벤트성 대회라고는 해도 선수들 간에 경쟁 심리가 있었죠. 하지만 이번에는 다 은퇴한 선수들(줄리 잉스터, 안니카 소렌스탐, 로레나 오초아)과의 친선 게임이었기 때문인지 너무 재미있었어요. 부담감 없이 그냥 친구와 라운드를 한 기분이랄까. 그전에는 시합 때 만나면서 경쟁을 하는 그런 사이였잖아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은퇴 뒤에 개인적인 삶을 살다가 오랜만에 만나니까 너무 좋았어요. 공을 치면서 농담도 건네고, 서로 살아온 일이나 최근의 근황까지 나누면서 인생 친구가 된 기분이 들었어요.
Q : 요즘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박 : 제 인생에서 가장 큰 목표 중 하나는 가정을 꾸리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쉽지 않네요. 메이저 대회 우승보다 더 어려운 것 같아요.(웃음) 저 혼자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닌 거 같고, 너무 어렵네요. 가정을 꾸리고, 또 제 주니어도 낳고 싶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기회가 되지 않기 때문에 일단은 제가 원하는 또 다른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조금 더 관심을 쏟고 있어요.
Q : 이상형은 나이 대에 따라 바뀐다잖아요. 요즘 이상형은 어떤 스타일인가요?
박 : 저는 항상 같았어요. 친구처럼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어떤 분위기에도 상관없이 편안하게 잘 어울려줄 수 있는 사람이죠. 그런데 아직까지 인연이 없네요. 사실 저처럼 커리어가 있는 상대에 대해 부담감을 느끼는 분들이 적지 않은 것 같아요. 하지만 좋은 짝이 어디인가에 있을 거라고 믿어요.(웃음)
Q : 가장 아끼는 물건이 있다면?
박 : 아직까지도 저와 한 몸이었던 골프 클럽이랑 그리고 트로피들이 가장 소중해요. 제 클럽을 누가 만지는 게 싫어요. 예전부터 그랬어요. 클럽 같은 경우는 누구도 못 만지게 했어요.
Q : 은퇴하고 나서 클럽을 만질 일이 자주 있나요?
박 : 없죠. 클럽이 주인을 잃었죠.(웃음) 지난해에 은퇴한 이후로 한 번도 라운드를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집에 그대로 두고 지나다니면서 확인한 정도였죠. 심지어 동생이 “언니, 골프 선수였었어?”라고 농담을 하더라고요. 그러다 최근에 간만에 친선 게임에 출전하면서 클럽을 잡은 거죠.
Q :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하나요?
박 : 전혀 안 해요. 친구들과도 전화로 연락해요. 기계랑 안 친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뭘 올리는 걸 좋아하는 편도 아니어서요. 사실 저 하나 관리하기도 벅차요.(웃음) 저 대신 후배들이나 지인들이 사진이나 글을 올리는데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Q : 은퇴 뒤 투어 동료들과도 종종 자리를 함께하나요?
박 : 은퇴한 선후배들이 많아지다 보니 더 편하게 자리를 가질 수 있게 됐어요. 예전에는 아이스크림을 먹거나 커피를 마셨는데 이제는 술자리도 편하게 갖곤 해요. 술 한잔하면서 예전 이야기도 하고, 요즘 사는 이야기도 나누는 등 소소한 삶의 즐거움이 생겼어요.
Q : 주량은?
박 : 제가 엄청난 주당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 그렇지 않아요.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정신을 차리고 뒷정리를 하는 편이라서 그런 루머가 생긴 것 같아요. 좋아하는 술은 맥주나 소주인데 식사를 하면서 한두 잔씩 즐기는 정도예요. 술자리는 좋아하지만 이제는 다음 날 뒤탈이 생겨서 많이 마실 수가 없어요. 술을 많이 마시면 다음 날 하루 종일 화장실에 들락거리고 링거를 맞아야 돼서 조심하고 있어요.(웃음)
Q : 은퇴 후 더 예뻐진 것 같은데.
박 : 선수 때보다 요즘에 화장할 일이 좀 많아져서 그런 거 같아요. 여자는 화장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진짜 맞는 말이에요. 화장 덕을 많이 보고 있죠.
Q : 피부 관리는 하고 있는지?
박 : 피부과에 다니면서 그전에 못했던 피부 관리를 받고 있어요. 그동안 햇빛을 너무 많이 받았잖아요. 저한테 너무 인색한 삶을 살다 보니까 여기저기 많이 망가져 있더라고요. 이제 은퇴를 했으니까 나 자신을 위한 관리를 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어서 피부과도 다니고 제 몸에 투자를 하고 있어요. 그래야 결혼을 하지 않을까요.(웃음)
Q :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감이 클 것 같아요.
박 : 당연하죠. 선수 생활을 하면서 제가 원했던 것, 하고 싶었던 목표에 대해 운이 좋게 다 이뤘잖아요. 이제는 제2의 인생을 사는데 대한 기대감이 더 크고 그만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에 대한 부담감도 들어요. 이제 스케치를 시작한 건데 그리면서 지웠다가 다시 그리는 단계를 겪고 있어요. 어렵기도 하고, 부담도 크지만 어떤 그림이 나올까 기대감이 커요.
Q : 박세리에게 부담이라는 단어는 잘 어울리지 않는 느낌인데.
박 : 현역 때는 긴장감이라는 게 생활화가 돼서 잘 몰랐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선수가 아닌 모습으로 또 다른 시작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느낌이 달라요. 어렸을 때부터 선수 생활을 했기 때문에 사실 운동 외에는 많은 걸 모르잖아요. 막상 사회생활을 시작하려고 하다 보니까 그런 부담감이 생기더라고요. 사회생활이나 대인 관계에 대한 고민도 생겼고요. 은퇴를 앞두고 그런 생각이 점점 많아지다 보니 머릿속이 복잡하기도 했어요. 선수 생활을 했을 때는 일상이나 스케줄이 제 위주로 돌아갔는데 지금은 그게 아니잖아요. 쉽지는 않겠지만 저보다 먼저 은퇴해 잘 하고 있는 선후배들이 있기 때문에 그들을 보면서 저도 잘 해나가야죠.
Q. 사업에 대한 구상은 잘 되고 있는지?
박 : 사실 제가 옷에 관심이 많아요. 얼마 전에 골프웨어(아바쿠스)와 계약을 하고 올가을에 제 이름을 건 라인을 출시할 계획이에요. 컬래버레이션으로 와인 사업을 벌일 예정이고, 후배 양성을 위해 골프 아카데미에도 관심이 많아요. 코스 디자인도 해보고 싶고요. 현역 때부터 생각했던 것들을 하나씩 시작하고 있는데 골프와 관련해 할 수 있는 게 너무 많기 때문에 욕심이 생겨요.
Q : 와인이 곧 출시된다고 들었는데.
박 : 론칭까지 얼마 남지 않았죠. 레벨 작업도 거의 끝났어요. 세리와인이라고 라벨에 제 이름이 들어가서 기분이 좋더라고요.
Q : 아카데미 사업에 대한 희망을 오래전부터 밝혀왔는데.
박 : 아카데미 같은 경우는 오래전부터의 꿈이었어요. 현재 여러 곳에서 이야기가 오고 가고 있는데 서두르지는 않고 있어요. 20~30명을 가르치는 작은 아카데미가 아니기 때문에 멀리 보고 장기적으로 준비하고 있어요. 위치도 중요하고, 선수들이 최적의 환경 속에서 훈련할 수 있는 곳을 찾고 있어요.
Q : 코스 디자이너로서의 행보도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나요?
박 : 현재 호주 쪽 회사와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호주 내에 캐리 웹 선수랑 저랑 9홀씩 디자인을 할 예정입니다. 디자인이 끝나면 LPGA투어도 코스에서 개최할 예정인 프로젝트예요.
Q : 제2의 인생에 대한 바람이 있다면?
박 : 과거의 박세리와 지금의 박세리 그리고 미래의 박세리는 같은 사람이지만 예전에는 제 위주로 생활했다면 이제는 그렇지 않은 게 달라진 점이라고 생각해요. 선수로서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해봤으니 새로운 인생에서도 또 다른 도전을 하고 싶어요. 은퇴하고 편하게 살겠다는 생각은 아예 버렸어요.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일을 하면서 사업가로서의 꿈도 하나하나 이루고 싶어요. 지금껏 많은 사랑을 받은 만큼 골프계와 선후배, 꿈나무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들도 많이 해야죠. 현역으로 활동했을 때처럼 나태하지 말고 열심히 뛸 생각이에요.
이지연 기자 easygolf@joongang.co.kr 신봉근 기자 shin.bonggeun@join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