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아름다운 퇴장, 고리 1호기

안영인 기자 2017. 6. 20.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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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퇴장, 고리 1호기

지난 1977년 중학교 1학년 지리시간에 노래 가사처럼 만들어 외웠던 것이 있다. “경상남도 양산군 장안면 고리에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가 준공됐습니다.” 지금의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 고리에 있는 고리 1호기 원자력 발전소다. 매우 중요하고 시험에 나온다고 해서 외웠지만 어린 마음에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원자력 발전소가 뭔지 잘 몰랐지만 마치 우리나라가 미국이나 당시 소련처럼 원자폭탄을 만든 것처럼 기뻐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고리 1호기 원자력 발전소는 그렇게 다가왔다.

1977년 6월 18일 원자로에 불을 붙인 고리1호기는 건설비가 총 1,560억 7,300만 원으로 1970년 준공한 경부고속도로 건설비 총 429억 원의 3.6배나 됐다. 설비용량은 587MW로 상업운전을 시작한 1978년 당시 국내 총 발전설비 용량 6,916MW의 8%를 차지했다.

고리1호기는 6월 18일 24시 영구정지 시까지 총 155,260GWh의 전력을 생산했다. 현재 부산지역 전체 가정에서 한해에 4,641GWh를 전력을 사용하는 것을 고려하면 부산지역 모든 가정이 33.5년 동안 사용할 전력을 생산한 것이다. 지난 40년 동안 경제발전으로 급증하는 전력수요를 고리 1호기는 묵묵히 뒷받침을 한 것이다.

18일 24시 영구 정지된 고리 1호기를 해체하는 데는 적어도 15년이 넘게 걸릴 전망이다. 적어도 5년 이상은 사용후 핵연료를 저장조에서 냉각시키고 안정화시켜야 한다. 이후 사용후 핵연료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원전 시설과 구조물에 붙어 있는 방사성 오염물질을 제거(제염)하고 구조물을 철거하는데 8년이 넘게 소요될 전망이다. 또 구조물 철거 이후 부지를 복원하는데도 2년이 넘게 걸릴 전망이다.

5년 뒤부터 해체에 들어가면 고리 1호기는 그대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일까? 더 이상의 역할은 없을까? 최초로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의 역사를 써온 고리 1호기가 이대로 퇴장하고 마는 것일까? 고리1호기가 영구정지 됐어도 고리 1호기로 인해 발생하는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금부터는 원전 해체와 사용후 핵연료 처분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써야 한다.

영구정지된 고리 1호기는 현재 핵반응이 완전히 멈춘 상태다. 원자로 뚜껑을 여는 준비 등 핵연료를 꺼낼 준비가 마무리되는 오는 26일에는 사용후 핵연료를 원자로 근처에 있는 저장조로 옮길 예정이다. 고리 1호기에서 사용후 핵연료가 나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고리 1호기는 1977년 첫 불을 밝힌 후 40년 동안 약 3~4년마다 핵연료를 인출하고 새로운 핵연료를 장전해 왔다. 연탄을 때고 매일매일 연탄재를 빼내는 것처럼 3~4년마다 핵연료를 교체하고 사용후 핵연료를 저장조에 보관해 왔다.

고리 1호기에서 인출한 사용후 핵연료는 적어도 5년 이상은 저장조에 넣어두고 관리를 해야 한다. 콘크리트 드럼에 저장(건식저장)할 수 있을 정도로 사용후 핵연료의 온도를 낮추고 방출되는 방사선도 줄이기 위해서다. 냉각수인 물은 사용후 핵연료를 식힐 뿐 아니라 핵연료에서 나오는 방사선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만약 공기 중에 노출될 경우 200도 이상 올라갈 수 있지만 저장조에서 보관하는 동안에는 냉각수를 강제 순환시켜 온도를 30도 정도로 유지하게 된다.

사용후 핵연료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정해진 것은 여기까지다. 저장조에 5~7년 동안 보관한 뒤 이후에 어떻게 할 것인지는 아직 법적으로 명확하게 정해진 것이 없다. 이르면 5년 뒤 발전소 구조물 해체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저장조에 보관 중인 사용후 핵연료를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다른 방법으로 보관을 해야 하는데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 현재 저장조에 보관 중인 사용후 핵연료를 다른 곳으로 옮기지 못하면 당연히 구조물 해체를 시작할 수도 없다.

한국수력원자력의 로드맵으로는 5년 이후 해체를 시작하기 전에 저장소에 들어 있는 사용후 핵연료를 건식저장 형태로 바꾸는 것이다. 5년 동안 온도를 떨어뜨려 콘크리트 드럼 형태의 통에 사용후 핵연료를 넣어 원전 부지 내 다른 곳에 모아 두겠다는 것이다. 건식저장법도 물론 임시로 저장하는 방법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아직 건식저장에 대한 법적인 기준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연히 현재 우리나라에는 고리원전 같은 경수로에서 나온 사용후 핵연료를 저장할 수 있는 건식저장 시설은 없다. 현재 희망으로는 2024년까지 건식저장 시설을 만들고 2025년부터는 건식저장 시설에 사용후 핵연료를 보관할 예정이다. 2025년에 건식저장소로 옮기기 전까지는 5년이 지난 뒤에도 계속해서 지금과 같은 수조에 보관해야 한다. 건식저장 시설이 만들기 위해서는 주민과의 합의도 필요하다.

건식저장 시설이 완공되면 사용후 핵연료는 2034년까지 건식저장 시설에 보관된다. 예정대로라면 2035년에는 사용후 핵연료 중간저장 시설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후 2053년에는 사용후 핵연료 영구저장 시설이 만들어지고 이때서야 비로소 고리 1호기에서 인출한 사용후 핵연료가 영구적으로 처분되는 것이다.

하지만 예상대로라면 이라는 말을 썼듯이 5~7년 동안 저장조에서 보관한 이후에는 아직 그 어떤 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 건식저장에 대한 법이 제 때 마련되지 않거나 주민과의 합의가 없으면 한 발짝도 나갈 수가 없다. 발전소 부지가 아닌 별도의 장소에 사용후 핵연료 처분장인 중간저장 시설이나 영구처분장을 만들기 위한 부지 선정은 난제 중의 난제다.

지난 1990년 안면도, 1994년 굴업도, 그리고 2004년에는 전북 부안 등 1983년부터 사용후 핵연료 처분장 부지 확보를 시도했지만 9차례 모두 실패했다. 2028년까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처분할 수 있는 부지를 선정해야 2034까지 중간저장 시설을 만들 수 있고 2035년부터는 중간저장을 그리고 2053년부터는 영구처분장을 만들어 가동할 수 있다.

해체에 필요한 기술도 확보해야 한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상업용 원전을 해체하는데 총 58개의 핵심 기술이 필요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수원은 현재 우리나라는 총 58개의 핵심 기술 가운데 41개 기술을 확보한 것으로 보고 있다. 나머지 17개 핵심 기술은 지금부터 추가로 확보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르면 5년 뒤부터는 고리 1호기 구조물 해체가 시작되겠지만 지난 40년 동안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 역사를 써온 고리1호기는 지금부터는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소 해체와 사용후 핵연료 처분의 역사를 써나가야 하는 것이다. 고리 1호기가 그동안 우리나라 원전 발전의 역사가 되었듯이 해체와 폐기물 처분 과정 또한 앞으로 모든 원전의 모델이 될 것이다. 선구자로서의 역할이 남아 있는 것이다.

영구정지를 나흘 앞둔 지난 14일 고리 원자력발전소를 찾았다. 3~4차례의 보안 검사를 거치고 굉음으로 가득 찬 터빈실을 지나 주제어실에 도착했다. 주제어실에 들어서는 순간 확 와 닿는 분위기는 진한 아쉬움이었다. 느낌이지만 직원들의 어깨도 처져 보였다.

박지태 고리원자력본부 제1발전소 소장은 “안타깝다”는 말로 분위기를 대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수 십 년 동안 하루 24시간, 1년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함께한 고리 1호기가 아닌가. 특히 고리원전 1호기가 상업운전을 시작한 지난 1978년 발전소에 들어와 40년 가까이 고리 1호기와 함께한 박 소장의 마음은 더욱 아쉽고 여러 가지로 안타까웠을 것이다.

하지만 고리 1호기의 역사는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지금부터는 대한민국 원전 해체와 핵폐기물 처분의 역사를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원전 역사의 주인공입니다>, <대한만국 원전의 자존심 고리 제1발전소> 고리 1호기 발전소에 크게 쓰여 있는 글이다. 원자력 발전소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다. 최근 들어서는 저렴한 에너지보다 친환경, 신재생, 그리고 국민들이 편안하게 생각하는 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지고 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임에 틀림없다.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그렇게 가야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고리 1호기와 직원들의 수고가 경제발전의 든든한 뒷받침이 돼왔고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밝고 따뜻하게 살 수 있었다는 사실도 함께 말해주고 싶다.    

안영인 기자youngi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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