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엉덩이 토닥이던 막둥이가.. 스쿨존 참변

2017. 6. 20.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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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는 어린이 교통사고

[동아일보]

스쿨존에서 시내버스에 치여 숨진 배정규(가명) 군의 사고현장 앞에서 큰아버지 배정문 씨가 19일 주민 등이 가져다 놓은 추모 물품을 정리하고 있다. 메모지(아래 사진)에 “천국에서는 아프지 말고 편히 쉬렴. 친구야 널 기억할게”라고 적혀 있다. 청주=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

“아빠, 이번 주도 잘 다녀오세요. 더우니까 건강 조심하시고요.”

11일 오후 막내아들 정규(가명·10) 군은 평소 일요일처럼 아빠 배인문 씨(46)의 엉덩이를 ‘톡 톡 톡’ 세 번 두드리며 인사했다. 배 씨는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에서 멀리 떨어진 충주시에 직장이 있다. 주말 동안 집에 머물다 일요일 오후 집을 나서는 ‘주말 가족’이다. 배 씨가 집을 나설 때면 막내아들은 애교 만점의 표정을 지으며 늘 아빠의 엉덩이를 토닥거렸다.

“그날이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그렇게 갖고 싶어 하던 닌텐도 게임기와 휴대전화를 진작 사주지 못한 게 평생 한이 될 것 같습니다.”

정규 군은 15일 오후 3시 26분경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다가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으로 지정된 도로에서 A 씨(60)가 운전하던 시내버스에 치였다. 안전기사 일을 하는 배 씨는 이날도 평소처럼 회사에서 일하다 휴대전화를 받았다. 충북대병원 간호사는 “아들이 많이 다쳤으니 빨리 오라”고 했다. 배 씨는 느낌이 이상했다. 정확한 상태를 묻자 머뭇거리던 간호사는 “사망한 상태”라고 말했다.

순간 배 씨는 현기증과 함께 온몸에 힘이 빠졌다. 동료의 부축을 받아 겨우 병원으로 향했다. 이미 아이는 흰 천에 덮여 영안실에 누워 있었다. “왜 우리 아들이 여기 누워 있느냐”는 아내(45)의 오열이 끊이지 않았다. 배 씨는 마음을 추스르고 간신히 흰 천을 걷었다. 아이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결혼하면서 아이 셋을 낳자고 아내와 약속했어요. 딸 둘을 낳고 막내가 아들 정규예요. 정말 복덩이였죠.”

정규 군은 활발했다. 친구도 많았다. 함께 사는 할머니와 중학교 3학년, 1학년의 두 누나에게는 늘 예쁜 짓만 골라 하는 귀염둥이였다. 한자(漢字)를 좋아해 아빠보다도 아는 글자가 많았다. 과학자가 돼 아빠에게 로봇 집을 만들어 주겠다는 소원을 입버릇처럼 말했다.

19일 삼우제를 마치고 본보 기자와 만난 배 씨는 “평소처럼 하교하던 아이가 왜 도로 한복판에서 버스에 치여 숨졌는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40년 넘게 이곳에서 살았지만 지금까지 이곳에서 교통사고가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시 사고 후 A 씨는 1시간가량 더 버스를 운행하다 붙잡혔다. A 씨는 사고가 난 것을 몰랐다며 ‘뺑소니’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상황을 알려줄 버스 블랙박스 저장 장치에는 사고 시간대 영상이 없다. 버스 운전사 A 씨는 “오류가 발생해 그런 것 같다”고 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데이터를 복구하기 위해 디지털 포렌식 조사를 의뢰한 상태다.

정규 군은 청주시 목련공원 화장장에서 한 줌의 재가 됐다. 이곳은 2013년 3월 청주시에서 어린이집 통학차량에 치여 숨진 김세림 양(당시 3세)이 하늘로 간 곳이다. 세림 양의 안타까운 희생은 어린이 통학차량 안전 기준을 강화한 ‘세림이법’(개정 도로교통법)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정규 군 사건에서 보듯이 여전히 통학길에서 어린이들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다. 배 씨는 장례식 날 아들의 영정 앞에 닌텐도 게임기를 선물하고 오열했다. 그러고 아들의 유해를 목련공원 내 봉안당(납골당)에 안치했다.

“우리 아들이 도대체 왜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세상을 떠났는지 정확히 알고 싶습니다. 정규는 가슴에 묻었지만, 하늘나라에서 편히 쉴 수 있도록 부모로서 마지막 노릇을 다할 겁니다. 사고를 당한 원인이 정확히 밝혀지면 이후에 자유롭게 세상을 다니며 놀 수 있도록 하늘에 날려 보낼 줄 겁니다.”

사고 현장 주변에는 친구들과 주민 등이 놓은 국화꽃과 과자, 초콜릿 등이 늘어가고 있다. 이날 한 여학생은 더위를 피하라는 뜻으로 빨간색 우산을 놓고 갔다. 한 과자봉지 위에는 “천국에서는 아프지 말고 편히 쉬렴. 친구야 널 기억할게”라는 메모지가 놓여 있었다.

청주=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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