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전쟁영웅, 김영옥 대령

YTN 입력 2017. 6. 20.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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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영웅, 김영옥 대령

이탈리아, 프랑스, 한국 세 나라로부터 무공훈장을 받은 김영옥 대령을 아십니까?

재미교포 2세였던 그는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미군 자격으로 이탈리아 전에 참가해 '불사신 영'이라 불리며 전쟁을 승리로 이끈 전쟁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런 그가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한 걸음에 부모님의 나라로 달려와 전쟁을 승리로 이끈 도화선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전쟁고아들의 아버지라 불리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어떤 사연이 담겨져 있는 걸까요?

김영옥이 한국의 전쟁고아를 처음 본 것은 1950년 최전선으로 향하는 기차를 타기 위해 부산역에 갔을 때라고 합니다.

기차 밑에 떨어진 석탄을 줍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기차 밑으로 기어다니는 헐벗은 아이들의 모습에

그는 미군들이 탄 기차 안에 들어가 밖에 있는 아이들에게 식량을 나누어 줄 것을 눈물을 머금으며 호소했다고 합니다.

이후 그는 미군부대의 대대장으로서 최전방을 60Km 북진시켜 교착상태에 빠졌던 전쟁의 분위기를 승리로 이끌어내는 공을 세웠습니다.

그러던 중 1951년 겨울, 한 부하가 전쟁고아 한 명을 부대로 데리고 오게 됩니다.

고민 끝에 그는 당시 서울 삼각지에 있는 경천애인사를 거점으로 500명의 아이들을 지원하게 되는데요.

그는 미군 부하들을 설득하여 부대로 들어오는 보급품 중 맥주와 담배의 절반을 아이들에게 필요한 물품으로 바꾸어 고아원에 보급했다고 합니다.

세월이 흐른 후 경천애인사에서 그의 도움을 받아 큰 장흥기 씨는 그를 두고 "보이지 않는 든든한 기둥 같은 존재로 느껴졌다."라고 그 당시를 회고했습니다.

2차 세계 참전 당시 "내가 만약 이 전쟁에서 살아남게 된다면, 내가 살아갈 사회를 위해 봉사할 것이다." 라며 다짐했던 고 김영옥 대령은 한국 전쟁에서는 전쟁고아들의 아버지로, 미국으로 돌아가서는 소수자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힘쓰며 2005년 생을 마감했습니다.

전쟁터에서는 승리의 영웅으로, 삶에서는 인도주의 정신을 몸소 실천한 이 시대의 진정한 군인, 고 김영옥 대령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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