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e갤러리] 도려내야 차오른다..오관진 '비움과 채움-복을 담다'

오현주 입력 2017.06.20. 00:10 수정 2017.06.28. 08:18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짙푸른 공간에 허연 달항아리가 둥실 떴다.

달항아리는 한국화가 오관진(54)의 작품에서 주역급이다.

한지에 바탕을 그린 뒤 날카로운 칼로 환부를 파내듯 도자기의 형상을 도려내곤 돌가루·안료를 혼합한 재료로 제거한 도자기를 다시 올리는 식이다.

'비움과 채움-복을 담다'(2016)란 후덕한 외형에 두툼한 질감까지 입은 달항아리 역시 이 지난한 과정을 거쳐 세상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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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 바탕서 도려낸 도자기 형상
돌가루·안료 혼합한 재료로 채워
'비움·채움' 노동집약적 반복으로
오관진 ‘비움과 채움-복을 담다’(2016). 한지에 혼합재료. 60×60㎝(사진=갤러리두).

[이데일리 오현주 선임기자]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짙푸른 공간에 허연 달항아리가 둥실 떴다.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을 휘영청 밝힌 보름달이 바로 이 모습일 거다. 달항아리는 한국화가 오관진(54)의 작품에서 주역급이다. 어디에 내놓아도 존재감이 압도한다. 그럼에도 작가의 주제는 어디까지나 여백이다. 다 비워낸 공간에서야 비로소 달항아리·막사발·분청사기 등 전통정서 짙은 도자기를 채워넣기 때문이다.

비법은 상감기법. 한지에 바탕을 그린 뒤 날카로운 칼로 환부를 파내듯 도자기의 형상을 도려내곤 돌가루·안료를 혼합한 재료로 제거한 도자기를 다시 올리는 식이다. ‘비움과 채움-복을 담다’(2016)란 후덕한 외형에 두툼한 질감까지 입은 달항아리 역시 이 지난한 과정을 거쳐 세상에 나왔다.

2차원의 화면에 시도한 실험적인 작화가 특별하다. 동양화와 서양화를 넘나들고, 극사실주의와 초현실주의를 오간다. 모티브와 관념은 지극히 동양적이지만 자로 잰듯한 정확한 기하학은 다분히 서양적이다. 말끔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균형이 어긋난 달항아리, 불길이 스친 막사발의 검은 흔적은 극사실주의적이다. 도자기에서 매화가지가 뻗치고 체리가 뒹구는 장면은 초현실주의적이다. 여기에 파내고 채우는 공예적인 시도까지.

오관진 ‘비움과 채움-복을 담다’(2017). 한지에 혼합재료. 45×53㎝(사진=갤러리두).

한 평론가는 작가의 작업을 두고 ‘선(繕)과 선(鮮)으로 빚어 공(空)을 짓는다’고 했다. 손보아 고치듯 장르의 룰을 벗겨 내고, 밖의 이미지와 안의 메시지를 포괄해, 궁극적으론 비우는 데 집중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말이 쉽지, 이 모두는 결국 몸을 혹사한 ‘노동’의 다른 말이다. 비우고 채우는 거대한 일이 머리만 써서 될 리가 없지 않은가.

24일까지 서울 강남구 청담동 갤러리두에서 여는 초대전 ‘비움과 채움’에서 볼 수 있다.

오현주 (euanoh@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