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은실의 내 인생의 책] ②이상시집 | 이상
[경향신문] ㆍ우울함에서 얻은 위로
누군가의 우울함과 무기력함을 읽으면서 위로를 받은 일은 좀처럼 없을지도 모른다. 내게 이상의 시는 우울함에서 위로를 얻었다는 점에서 특별했다.
나는 이상이 세상이 요구하는 사람의 모습을 취할 수 없었고 또 거부하는 과정에서 외로운 싸움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가장의 노릇을 하지 못해 밤중에 “안열리는門을열려고” “門고리에쇠사슬늘어지듯매어달렸다”거나(‘家庭’), 무덤의 조상까지가 자신에게 “血淸의原價償還을强請”하는 것을 거부하고 싶어 하지만 그것을 “쉽사리끌러버릴수가참없다”(‘門閥’)고 고백하는 방식으로 그리하였다. 이는 기왕의 것이라는 이름하에 강요되는 기성의 많은 요구에 대하여 스스로 ‘타협불가능’함을 인식하는 데서 오는 “외로된事業”(‘거울’)인 셈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시 중 ‘紙碑’가 있다. 이 시에서 큰 키에 왼다리가 불편한 “나”와 키가 작은 “안해”(아내)는 서로를 부축하며 걸어간다. 화자의 오른다리와 아내의 왼다리가 함께 걸어가며 이상은 “이夫婦는부축할수없는절름발이가되어버린다無事한世上이病院이고꼭治療를기다리는無病이끝끝내있다”고 말한다.
이상 시의 ‘우울함’은 무병의 유병(有病)에 기인한다. 세상은 병원이고, 병원은 누군가를 치료하기 위해 존재하며 그러기 위해 끊임없이 증상에 대하여 병증을 진단 내린다. ‘진단’을 거부한다는 것은 어쩌면 대세가 강요하는 무엇을 따르지 않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내게 이상의 시가 특별했던 이유는 세상에 대한 나의 타협불가능의 지점과 보이지 않는 세계의 진단과 겨루면서 느끼는 개인의 외로운 골몰을 다른 누군가가 한 차례 겪어냈다는 것, 그리고 이렇게 멋지고 우울한 시로 남겨주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그의 우울을 감히 위로로 삼을 수 있었다.
<선우은실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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