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조선일보

외국계 은행 3곳 '굿바이 코리아'

김신영 기자 입력 2017.06.19. 19:3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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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만삭스·RBS· BBVA 폐쇄

美·韓 금리 차 줄어들며

손쉽게 '차익 챙기기' 힘들어져

자국 규제로 파생상품도 불가능

외국계銀 순익 1조→6893억

정부가 서울과 부산을 글로벌 금융 중심지로 키우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정작 외국계 금융회사들은 한국 시장에서 잇달아 철수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RBS(본점 소재지 영국)·BBVA(스페인)·골드만삭스(영국) 등 3개 외국은행 국내 지점에 대한 폐쇄 인가안을 지난 18일 의결했다고 발표했다. 이들 은행은 각각 2013년, 2011년, 2006년에 한국에 지점을 냈었다. 3개 지점 폐쇄가 최종적으로 결정되면서 한국에서 영업하는 외국계 은행 지점은 43개 은행 50개 지점에서 40개 은행 47개 지점으로 줄었다. 외국계 은행들의 연이은 '굿바이(good bye) 코리아'에 대해 전문가들은 저금리 장기화로 인한 수익성 악화 및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까다로워진 글로벌 규제 등 한국 안팎의 변수가 겹친 결과라고 설명한다.

◇짐 싸는 외국 금융사들

글로벌 금융회사들의 한국 시장 철수는 2008년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꾸준히 진행됐다. 스페인 1위 은행인 산탄데르는 지난해 10월 서울 사무소 폐쇄를 결정했고, 이에 앞서 HSBC는 2013년 소매금융 사업을 접고 10개 지점을 닫았다. 자산운용사의 '엑소더스'도 만만치 않아 골드만삭스자산운용은 2012년 한국 법인을 폐쇄한 데 이어 피델리티는 올해 초 '자산운용사의 꽃'으로 꼽히는 운용 인력(펀드매니저)을 한국에서 홍콩·싱가포르 등으로 다시 배치했다. 스위스계 은행인 UBS와 영국계 바클레이스도 한국을 떠나겠다고 지난해에 이미 발표한 바 있다.

외국계 투자은행 서울 지점의 한 고위 임원은 "외국계 은행이 한국을 떠나는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 시장이 더는 돈을 벌어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한국에서 외국계 은행들이 돈을 버는 기본 모델은 자국에서 달러를 가져다가 비교적 금리가 높았던 한국 시장에 투자해서 그 차액을 챙기는 것이었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2012~2013년에 걸쳐 한국 금융시장도 저금리 환경에 안착하면서 이런 식의 수익 모델이 더 이상 작동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10년 만기 국채 금리를 비교해 보면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초만 해도 미국과 한국 금리는 각각 3.7%, 5.9%로 2%포인트 넘게 차이가 났다. 하지만 지금은 두 국채 모두 약 2.2% 수준으로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 상태다. 만약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예고한 대로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상하고 한국 기준금리는 지금 수준에 머무른다면, 한국 금리가 미국 금리보다 낮아지는 금리 역전 현상까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 시장에서 돈 벌기가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자국 규제도 발목…"한국 매력도 높여야"

금융위기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규제가 강해져 한국에 있는 외국계 은행의 또 다른 수익원인 파생상품 거래가 어려워졌다는 점도 외국계 금융회사가 한국 지점의 '셔터'를 내리게 한 원인으로 꼽힌다. 파생상품 거래 투명성 강화 등의 내용을 담은 미국의 도드―프랭크법, 위험한 투자를 할 때 은행이 더 많은 돈을 쌓아두도록 하는 국제결제은행(BIS)의 '바젤III' 등이 연이어 도입되면서 외국계 금융회사가 강점을 지닌 파생상품 거래 등을 할 때 들어가는 비용이 대폭 늘어났다는 것이다. 규제가 세지면 소극적으로 투자에 나설 수밖에 없기 때문에 버는 돈은 줄어든다.

한국의 금리 하락에 자국의 규제 강화가 겹쳐 돈 벌기가 어려워지면서 실제로 외국계 금융회사들의 수익은 지난 몇 년에 걸쳐 감소해 왔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외국계 은행이 낸 순익은 2014년 1조915억원에서 지난해 6893억원으로 줄었다. 18일 폐쇄 인가가 난 3개 은행은 한국에서 지난해 모두 적자를 봤다.

금융 당국은 최근 철수한 은행들이 글로벌 규제 환경 변화에 민감한 유럽계에 집중돼 있고 중국·인도·인도네시아 등 아시아계 은행은 오히려 한국에 더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는 만큼 크게 우려할 만한 상황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한국이 정부 희망대로 글로벌 금융 허브로 도약하려면 이들을 묶어둘 '매력 포인트'를 더 개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정희수 연구위원은 "한국의 외국계 은행 지점의 총자산 비중은 12% 정도로 아시아의 다른 금융 중심지보다 낮은 편"이라며 "한국 금융이 글로벌화하기 위해선 한국 은행의 해외 진출도 중요하지만 외환 관련 규제 등을 완화하는 등 글로벌 은행의 국내 진입을 수월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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