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기숙사 막는 이웃들..원룸푸어 '발동동'

유준호 2017. 6. 18.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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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 충당하려면 학업포기" 지방학생 한숨 깊어지는데..고대·한양대 등 장기표류
"상권 도움안되고 소음만" 원룸업자·지역주민들 반대..구청도 표심 잃을까 몸사려

광장으로 뛰쳐나온 대학생들 "제발 살 곳 좀…"

18일 서울 돈암동 A아파트 앞에 한국사학진흥재단의 `동소문동 행복기숙사` 건립을 반대하는 아파트 주민들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유준호 기자]
"월세 내려면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 하고, 자취와 하숙을 포기하면 왕복 3시간이 넘는 장거리 통학에 내몰려요. 갈 곳 없는 대학생들 눈물을 좀 닦아주세요."

지난 8일 고려대 학생들은 기말고사를 앞둔 바쁜 시점인데도 학내 광장으로 몰려들었다. 이날 고려대 민주광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재학생들은 새 정부를 향해 "대학생 '원룸푸어'들을 위해 제발 살 곳을 좀 마련해 달라"는 한숨 섞인 하소연을 토해냈다.

보름간 학생회가 고려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걷은 기숙사 신축 촉구 탄원서만 3057장. 여기에는 4년간 인근 주민들의 반대로 표류하고 있는 신축 기숙사를 향한 학생들 열망이 담겼다.

18일 매일경제가 '2017 고려대학교 대학생 주거실태 조사 분석보고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고려대 기숙사 수용률(전체 재학생 수 대비 기숙사 수용 인원)은 10.4%로 전국 평균 기숙사 수용률 20.1% 대비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지방 출신 고려대 재학생 박 모씨(26)는 "카페에서 반나절을 꼬박 일해야 받는 돈이 한 달에 50만원 남짓"이라며 "부모 지원 없이는 월세라도 제때 내려면 학업 대신 일터에 나가야 하는, 소위 '원룸 푸어'의 현주소"라고 한탄했다.

한양대 재학생들도 이달 초 서울시청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새로운 기숙사 건립을 촉구했다. 한양대 학생들은 "학교 기숙사 수용률은 11.5%인데 이마저도 외부 임대 기숙사를 제외하면 한 자릿수로 떨어진다"며 "매 학기가 끝나고 성적이 나올 시기에 기숙사에 살고 있는 학생들은 기숙사에서 쫓겨날까 가슴 졸이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시험 준비 시간까지 쪼개서 학생들이 광장으로 몰려나오는 이유는 서울 곳곳에서 추진 중인 각 대학별 기숙사 건립이 수년째 제자리를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고려대는 학교용지 내에 1100명이 머물 수 있는 기숙사 신축을 추진 중이지만 4년째 표류 중이다. 애초 고려대 측은 기숙사가 완공되면 기숙사 수용 인원이 2700여 명에서 3800명으로 대폭 증가해 지방 출신 학생들의 주거 고민을 덜어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인근 주민들을 중심으로 고려대의 기숙사 건축 계획에 반발하면서 발목이 잡혔다.

주민들이 근린시설로 이용하고 있는 공원을 주민 동의 없이 없애서는 안 된다는 표면적인 이유에 더해 기숙사로 학생들을 뺏기면 원룸 수요가 떨어져 지역 경제가 무너진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민원이 구청에 줄기차게 쏟아진 것이다.

고려대는 2013년 말 학교 내 개운산에 기숙사 신축을 추진하면서 2014년 8월 토지용도 변경을 신청했으나 성북구청이 주민 반대를 이유로 허가하지 않았다. 올해 4월 고려대 측은 성북구청에 다시 토지용도 변경을 신청한 상태지만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 주민들의 표심을 고려해 소극적으로 대처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성북구청 관계자는 "고려대 측에서 고대 안암병원을 지으면서 주민복지용으로 공원을 조성한 곳이라 이 터에 기숙사를 짓는 데 대해 주민 불만이 많다"고 말했다.

건축허가까지 받았지만 공사를 진행하지 못하는 현장도 있다.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에선 한국사학진흥재단이 수도권 최대인 750명 규모 연합 기숙사 건립을 추진하다 지역 주민 간 갈등을 염려한 시공사가 몸을 사리면서 착공에 애를 먹고 있다. 재단 관계자는 "주민들이 반대하고 나서면서 갈등비용을 우려한 시공사들이 몸을 사리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 주민 민원과 함께 관할구청의 표심 눈치 보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지만 건립주체들도 지역 사회와 상생하는 모델을 찾는 게 근본 해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대학들이 수익성에 골몰하면서 대학 안에 식당과 카페 등 모든 편의시설을 들여오다 보니 과거 대학촌 주변 지역경제는 사라지고 오히려 유흥가 형성, 소음 유발 등 부작용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높기 때문이다.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골목시장과 대형마트 간 관계처럼 대학과 지역사회가 갈등·경쟁 구조가 되어서는 안 된다"며 "정부 차원에서 대학과 지역사회가 공생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유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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