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시간에도 앉아만 있던 아이, 전학 가서 달라졌다
[오마이뉴스 하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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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시간에 못 논다고?"
아이가 서울에서 학교에 다닐 때의 일입니다. 아이와 대화를 하다가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어요.
"유림아, 쉬는 시간에 친구들하고 뭐 하고 놀아?"
"못 놀아. 자리에 앉아 있어야 돼."
"왜?"
"선생님이 다친다고 자리에 앉아 있으래."
놀다가 사고가 날 수 있으니 쉬는 시간에는 자리에 앉아있어야 하고, 화장실 갈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허락을 받고 다녀온다는 겁니다. 그것도 허리에 손 올리고 까치발을 하고 말이지요.
방과 후에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놀고 있으면 학교 보안관이 아이들을 학교 밖으로 내보냅니다.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서라고요. 항상 이런 식이었습니다. 학교를 오가며 운동장을 보면 텅 비어있습니다. 학교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아이를 놀게 하고 싶었지만 다들 학원을 가니까 같이 놀 친구가 없었습니다. 제가 같이 놀아주는 것도 한계가 있었지요. 아이는 노는 방법을 몰랐고, 자유 시간이 생기면 게임이나 TV를 보는 게 다였습니다. 간혹 친구 집에 놀러 가도 방에 틀어박혀서 게임을 하기 일쑤였습니다.
놀이의 달인들
그래서였나 봅니다. OO초등학교로 아이를 처음 전학시키던 날, 수업 시작 전에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모습이 경이롭게 느껴진 것은.
등교하면서 아이들은 아침달리기를 하고 교실로 들어갑니다. 운동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한바탕 축구를 하고 들어가지요. 그러나 저희 아이같은 몇몇 게으른 아이들은 요리조리 피해갑니다.
그 짧은 10분 쉬는 시간에도 운동장에 뛰어나와 노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저희 아이도 중간놀이 시간이 생겨서 좋다고 하네요. 중간놀이를 한 번 하고 나면 수업에 집중도 더 잘된다고 합니다.
작년에는 축구팀이 생긴 이래 처음으로 3위로 등수 안에 들어서 교장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삼겹살을 사주셨다고 합니다. 시간날 때마다 교감선생님이 아이들 축구연습을 도와주신 것도 승리의 요인인 듯합니다.
요 며칠 아침마다 선생님이랑 아이들이 줄넘기 연습을 하고 있던데 대회 연습이었다고 해요. 열심히 하던데 안타깝게 4등에 그쳤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경쟁상대로 생각했던 학교를 이겼다고 좋아했다고 하네요.
많은 전문가들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적절한 놀이시간은 아동에게 있어 중요하다 (Bettleheim, 1987).
-놀이는 아이들의 "일" 이다. 즉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자신과 세상에 대해 알 수 있다(Piaget, 1971).
-놀이는 과거와 현재의 상황을 대처하게 하고 미래를 상상할 수 있게 한다 (Isenberg& Jalongo, 1993).
-놀이시간은 아이들이 삶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Haller,1987).
심지어 유엔에서도 이렇게 이야기하지요.
"당사국은 휴식과 여가를 즐기고, 자신의 나이에 맞는 놀이와 오락활동에 참여하며, 문화생활과 예술활동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아동의 권리를 인정한다."(유엔아동권리협약 제31조)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놀 시간을 빼앗긴 대한민국 아이들이 하루빨리 놀 권리를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다행히 얼마전 전남도의회가 전국 최초로 '어린이 놀 권리'를 제정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런 움직임이 확산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새 정부에도 기대를 걸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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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첫째아이 초등 2학년에 음성틱장애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다음해 저는 유방암 수술을 받았지요.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 가족은 서울에서 경기도 가평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마을에 있는 시골학교로 전학을 했구요. 1년이 조금 지난 지금 아이는 놀랍게 변했고 저도 건강해졌습니다. 이 신기하고 행복한 경험을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어 시골학교 일기를 연재해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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