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취재파일] 국민 22만 명에 '보험료 폭탄', 보험사들은 왜?

손승욱 기자 2017. 6. 17.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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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동안 사고 3번 낸 뒤 이른바 '공동인수'에 걸려 보험료가 크게 올랐다는 한 운전자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작정한 듯 사연을 쏟아냈습니다. 하지만, SBS 8뉴스에는 길어야 20여 초만 방송됐습니다. (▶ 연속 사고 내면 보험료가 3배?…도 넘은 보험사 폭리) 그래서 조금 더 길게 그 사연을 소개해보겠습니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혼자 주차하다가 기둥, 벽을 들이받았죠. 보행자를 치는 사고도 없었고, 다른 차와 부딪힌 적도 없습니다." 그렇게 1년에 한 번 씩 3번 사고를 냈다고 합니다. 본인 뿐 아니라 아내도 냈다고 합니다. 새 차였기 때문에 모두 보험처리하고 깨끗하게 수리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보험 갱신 때가 돼서 전화를 했더니 갑자기 보험 가입이 안 된다는 겁니다. "사고를 많이 내셔서 그렇다"는 취지의 답변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공동인수라는 게 있는데, 보험료가 크게 오르기는 하지만, 이렇게 가입하는 방법 밖에 없다"라고 말하더랍니다.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답니다. "아니, 비싼 수입차를 들이 받은 것도 아니고. 관둬라. 다른 보험사에 들면 된다"

그러나, 전개되는 상황은 생각과 달랐습니다. "다른 보험사에 전화를 걸었더니, 어찌 알았는지, 아니면 기준이 똑같은 건지 모두 보험 가입이 안 된다는 겁니다." 보험사 4군데에 전화를 했는데 모두 거절당한 겁니다. 그는 결국 처음 그 회사로 걸어서 "공동인수로 가입하겠다"고 항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보험없이 차량 운행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를 만났을 때 그의 차 뒷부분에 찌그러진 부분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건 왜 안 고치냐"고 물었더니 "지금 겪고 있는 공동인수 보험이 끝나고 보험료가 내려가면 그 뒤에나 생각해 보겠다"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이거 펴려다가 또 무슨 험한 꼴을 당할지 모른다는 겁니다.

● 보험료 폭탄 '공동인수'

이게 공동인수입니다. 윗분은 그나마 보험료 상승 폭이 크지 않은 경우였습니다. 대부분 보험료가 최고 2~3배 오르기 때문입니다.

공동인수란 사고가 많아 보험계약이 거절된 계약자에 대해 여러 보험사가 위험을 나누는 제도입니다. 쉽게 설명해보겠습니다. 공동인수 대상자를 바라보는 '보험사의 입장'입니다.

"선생님처럼 사고 많이 내시는 분은 앞으로도 사고 많이 낼 가능성이 높아서 보험을 받아주기 어렵습니다. 손해가 너무 크기 때문이죠. 그런데, 자동차 보험은 의무보험이고, 보험 없이 운행할 수 없으니, 누군가는 받아줘야 하죠. 하지만, 모든 보험사들이 선생님의 보험가입을 받아주지 않을 겁니다. 결국 여러 보험사들이 선생님처럼 사고 많이 내는 사람으로 인해 볼 손해를 나눠서 책임지겠습니다, 이걸 공동인수라고 부르는 겁니다."

보험사 입장에서 공동으로 책임지면서 보험을 받아주기 때문에 '공동인수'라는 이름이 붙은 겁니다. 중요한 게 빠졌군요. 보험사들은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어렵게 보험 받아주는 대신 요금은 최고 2~3배까지 올라갑니다"

● 손해 보험사들의 선전포고 "당신은 사고 다발자입니다"

공동인수 제도, 의무 보험인 차 보험에서는 분명히 필요한 제도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공동인수 남발'입니다. 일부 문제가 있는 운전자에게만 적용되던 이 제도 때문에 보험료가 오르는 사람이 급증한 겁니다.

2013년 4만 7천 건이었던 공동인수는 지난해 47만 건까지 뛰었습니다. 바꿔 말하면, 4년 만에 40만 명 넘는 운전자들에게 "당신은 사고 다발자입니다. 보험료를 최고 2~3배 더 내셔야 합니다"라고 통보한 겁니다. 특히 2016년 한 해 동안 22만2천 건이 늘었습니다.

보험사들이 왜 이러는 걸까요? 우리나라 운전자들이 최근 몇 년 동안 갑자기 사고를 마구 내기 시작한 것도 아닐 것이고, 최근 몇 년 동안 도로 상황이 갑자기 나빠진 것도 아닐텐데 말입니다.

● 보험료 자율화 뒤 '공동인수 남발'

한 대형 보험사의 담당 직원 얘기입니다. 녹취 내용을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아무래도 돈이 된다고, 아무래도 수익을 극대화하다 보면 그 제한도 없고 하기 때문에. 그 공동인수로 분류하는 제한이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보험사에서 돈 안 되는 계약은 워낙 적자가 심하다보니까 다 공동인수로 분류를 하게 된거고, (보험료) 자율화가 되면서 이제 보험사들은 인상이 가능하게 되었죠"

지난 정권은 보험사들의 적자가 심하고, 향후 보험사들의 회계 기준이 강화된다는 이유로 지난 2015년 보험료 자율화를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보험사들의 '보험료 폭탄'은 이런 '보험료 자율화'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보험료 자율화 당시 금융당국은 "보험료가 크게 오르면 어떻게 할 것이냐"라는 질문에 "가격 경쟁 때문에 무한정 올릴 수는 없고, 점차 내려갈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말, 올해 초에는 "손해율이 좋아졌다", "흑자로 돌아섰다"라며 일부 보험사들이 보험료를 내렸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 뒤로는 국민 수 십만 명에게 "당신은 사고 다발자"라고 통보한 뒤  '공동인수'건을 크게 늘려 보험료를 2~3배 올리는 방식으로 돈을 벌어왔던 겁니다.

● 도대체 누가 '사고다발자'인가?

"그래도 기준은 있을 것 아닌가" 

3년 동안 1년에 한 번씩 3번 사고를 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보통 3년을 기준으로 공동인수 여부를 판단하는 회사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액수와 관계없이 공동인수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어떤 운전자는 3년 동안 2번만 사고를 냈는데도 공동인수에 포함되기도 합니다. 기준을 정할 당시 보험사의 영업이익과 각종 손해율, 손해 보험사 CEO의 정책 방향에 따라 기준이 조금씩 바뀌기 때문이라는 게 대형 보험사 담당직원의 설명입니다.

그렇다면 소비자는 어떻게 해야할까. 위에서 언급한 운전자는 3년 동안 사고를 3번 내고, 현재는 공동인수 중인데, 차 찌그러진 부분을 수리하지 않고 있습니다. 보험료 폭탄 때문입니다. 공동인수를 한 번 겪은 운전자들은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어이 없고, 어처구니 없어도 방법이 없습니다. 사고를 1년에 한 번 씩 3년동안 내지 않던가, 불가피하게 사고를 당했을 경우에는 신고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겁니다.

이게 무슨 보험입니까. 그렇지만 어쩌겠습니까. 모든 기준은 보험사가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데, 어쩌겠습니까. 그래도 공동인수로 당하는 어느 정도 기준은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알 수가 없습니다. 공동인수 기준을 가르쳐 달라고 하면 보험사들은 "영업비밀이다. 우리가 왜 공개를 해야하느냐"라는 취지의 짜증 섞인 대답이 돌아옵니다. 민감한 문제니까, 자꾸 따지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 보험사 반론 "적자가 컸던 만큼 이제 정상화하는 과정이다"

자동차 보험은 2015년 보험료 자율화 즈음까지 대부분의 손해보험사들에게 분명히 '남는 장사'는 아니었습니다. 보험사들이 굳이 강조하지는 않지만, 물론 받은 자동차 보험료로 투자를 해서 이익을 봤고, 재산, 특히 부동산을 늘렸습니다. 또 자동차 보험을 매개로 인연을 맺은 고객들에게 다른 보험을 팔아서 큰 이익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자동차 보험만 보면 손해율이 높아서 보험사들이 큰 재미를 보지는 않았습니다.

공동인수 남발에 대한 보험업계의 공식 반론을 그대로 옮깁니다.

"손해율이 좋은 대형사끼리는 공동인수 기준을 조금 더 완화해서 갔을 수도 있고 아니면 손해율이 굉장히 높았을 때는 대부분 다 공동인수 기준을 좀 더 강화해서 운영했을 테니까 그 강화했던 기준이 어떤 상식의 수준을 넘진 않았을 테니까 우연하게 비슷하게 운영됐을 수는 있죠. 각사의 손해율이 높아지거나 낮아지거나 라는 부분에 따라서 인수정책을 강하게 가지고 갈 수도 있고요. 인수정책을 좀 약하게 가져갈 수도 있고, 보험업계가 뭐 3년에서 1조 이상의 적자를 하다보니까 각사가 공동인수 기준을 강하게 가서 손해율 관리를 하려고 했던 측면이 없지 않게 있습니다"

● 고양이에게 생선을? …보험료 자율화의 덫

8시 뉴스에 보도가 나간 뒤 시청자 댓글입니다.

"보험료 3배는 그나마 양반이다. 더한 경우도 있다"
"(보험)사기꾼들에게는 속고, 일반인에게는 (뒤집어)씌운다"

보험사들은 지금까지 애써 자동차 보험의 강제성, 의무성에 대해서는 외면한 채 자신들의 흑자, 적자라는 영업 논리로만 보험 서비스에 접근해왔습니다.

하지만, 다른 보험과 달리 자동차 보험은 의무 보험입니다. 돈이 없다고 보험 가입을 피할 수 있는 보험이 아닌 겁니다. 따라서 보험료 폭탄은 서민들에게 그대로 생활비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사회적 보험 성격도 있기 때문에 금융당국이 마냥 나몰라라 해서는 곤란하다는 겁니다.

특히 새 정부가 드러선 뒤 생활비 절감을 위해 애쓰고 있는데, 한 쪽에서는 연간 수 십 만원이 늘어나는 보험료 폭탄을 연간 20만 건 이상 퍼부었고, 앞으로도 퍼부을 기세입니다. 소득 늘려서 소비 늘린다고 하는데, 늘어난 소득으로 소비는커녕 '공동인수' 보험료 내는 경우만 늘어나고, 손해보험사 배만 불려줄 수도 있다는 겁니다.

금융당국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금융당국은 올해 초 공동인수 기준을 정하겠다고 나섰다가, 보험회사들과의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취지로 가이드라인 결정을 미뤘습니다. 이미 보험료 폭탄을 퍼부은 보험사들에게 도대체 언제까지 공동인수 기준 선정을 맡겨놓겠다는 얘기인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계속 소비자 사정은 '나 몰라라'하고, 보험사 사정만 봐준다면 금융당국이 괜한 오해를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현재 가장 믿을 곳은 공정거래위원회입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이미 손해보험사들의 공동인수 담합여부를 조사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손해보험사들의 '맘대로 공동인수' 폐해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합니다. 오늘도 사방에, 손해보험사들이 쏴대는 보험료 폭탄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손승욱 기자ssw@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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