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호의 사서삼매경] (18) '오기연저' 법무부 장관 낙마..'발탁' 자체가 문제다

southcross 2017. 6. 17.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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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 위나라 장수 중에 오기라는 자가 있었다. 병사를 아껴 그들과 같은 음식을 먹고 잠자리를 함께 했다. 행군 중에 말을 타지 않고 군장을 메고 걸었다. 하루는 한 병사가 심한 종기를 앓고 있었다. 오기가 보고 손수 입으로 빨아내 낫게 했다. 이 사실을 안 병사의 어머니가 통곡했다. 아들 아버지도 오기 밑에 있었는데 독한 종기로 고생했었다. 오기가 직접 입으로 종기를 빨아 낫게 했다. 은혜를 갚는다며 앞장서 싸우다가 결국 남편은 세상을 떠났다. 병사의 어머니는 남편에 이어 아들도 잃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 대성통곡한 것이었다. <사기 중에서>

이보다 더 참담할 수 없다. 살다살다 강제결혼 전적이 있는 장관 후보자는 처음 봤다. 교제를 하던 여성의 도장을 파서 혼인신고서를 냈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사랑하게 되고 결혼 생활을 이어갈 것이라 생각했다는 취지의 변론을 했다고 한다. 명백한 문서적 성폭력이다. 

가정법원에서 혼인무효판결을 받았다고 하니 의혹으로 치부하기는 곤란하다. 한 사람의 인권을 짓밟은 사람이 국가의 인권을 도맡았었다. 한국여성단체연합회에서 여성권익을 향상시켰다며 상까지 줬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누가 이 소식을 들으면 '에이 이 사람 내랑 같은 과네, 혹시 그것도 써봤나'라며 반기겠다. 애초 공직에 마땅한 인물이 아니었다. 내정 자체가 문제다. 청와대 인사 시스템이 오작동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가족관계등록부도 열어보고 법원 서류도 뒤져봤어야 했다. 개혁저지세력의 저항으로 단정짓기에는 사안이 너무 크다. 털어서 먼지나는 사람을 내세운 것 자체가 잘못이다. 차은택 감독과 김종덕 전 장관을 보는 듯 했다. 

법무부 장관은 무거운 자리다. 평시에도 무거웠지만 지금은 더욱 묵직하다. 문재인정부 개혁의 화룡점정이 검찰개혁이기 때문이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이후의 국무위원들은 그 각각이 개혁사령관들이다. 적폐와 병폐를 걷어내고 헌정사에 불행한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자리다. 행안부 장관은 제2의 세월호를 막기 위해 재난체계를 뜯어 고쳐야 한다. 

사회부총리는 소모적인 역사교과서 논란이 이어지지 않게 10년 가는 국가교육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국토부 장관은 4대강의 잘잘못을 처음부터 다시 짚어봐야 한다. 문체부 장관은 블랙리스트로 상처받은 문화예술인의 마음을 감싸안아야 한다. 경제부총리는 전 정권이 망친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만드는 일에 밤이 모자랄 정도다. 국무위원 한명 한명에게 주어진 일들이 많다. 법무부 장관은 국정농단의 발단이라 할 수 있는 우병우 의혹을 철저히 캐고 검찰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일을 해야 한다. 종교인을 모셔와도 부족할 판에 마초가 나섰다. 똥 묻은 이가 똥 묻은 이를 보고 나무라는 꼴을 볼 뻔 했다.

지지율의 함정에 빠졌다. 80% 이상의 지지율이 나온다고 하니 보무가 당당하다. 위태롭다. 우리 국민의 상당수는 처음 시작하는 대통령에게 많은 지지를 보낸다. 대통령의 실패는 곧 국가의 실패이기 때문이다. 국론과의 허니문 기간이다. 언론은 자연히 국론과 결을 맞추겠다. 기성세대의 대부분은 누구든지 대통령이 되서 혼란스러운 나라를 바로잡아 주기를 바랬다. 

그렇게 희망과 소망들이 모인 것이 80%다. 대선 당시 득표율이 40%이다. 나머지 40%는 팬클럽 멤버들이 아닌 셈이다. 그들은 문재인정부가 전 정권의 무능함을 답습할 때 답답해할 것이다. 전 정권의 분란 조장을 재현하려할 때 분노할 것이다. 특히 민주정부는 도덕성에 타격을 받을 때 심각한 위기가 찾아올 것이다. 높은 지지율은 무엇이든 해도 된다는 신호가 아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추락하는 아픔은 더욱 크다. 강경화 후보자를 두고 판단은 국민의 몫이라며 선긋고 밀고갈 의지를 내비쳤다. 고집하고 밀어붙이고 이기려고만 하면 지난 10년과 다를 바가 없다. 개개인의 부도덕은 정권을 위태롭게 하는 도화선이 될 것이다.

검찰개혁은 어려운 문제다. 바람이 불기도 전에 먼저 눕는 풀이기 때문이다. 권력의 입장에서도 쉽사리 포기가 안 된다. 재갈을 물리고 고분고분하게 만들어 놓으면 써먹기 좋은 칼이기 때문이다. 경찰에 힘을 싣는 것도 문제가 많다. 독점적 영장 청구권은 인권 유린을 막는 장치라는 검사들의 주장이 있었다. 

청와대가 경찰에 인권개선을 주문했지만 못 알아듣고 있다. 모르쇠가 아니라 모르고 있는 것이다. 제대로 알아들었다면 물대포차를 폐차했겠다. 개혁도 쿵짝이 맞아야 한다. 다루기에 너무 큰 사안은 나눠 대처하는 편이 좋다. 전략가들은 큰 적은 되도록 나눠 상대하려 했다. 적의 행군이 길 때는 머리와 꼬리를 끊어 서로 연락하지 못하게 했다. 싸우기 유리한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검찰을 쪼개 그 내부에서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것도 방법이다. 

검찰과 경찰 사이에 제3의 기관을 만드는 수도 있다. 경찰도 국가경찰과 자치경찰로 나눠야겠다. 검찰개혁을 법문화개혁으로 확장해 대대적인 준법운동을 펼치는 것도 좋다. 오자병법을 쓴 오기는 병사를 아끼는 지휘관이었다. 썩은 고름을 입으로 빠는 퍼포먼스로 승리하는 군대를 만들어 냈다. 문재인정부는 스스로 떳떳한 사람이 필요하다. 가장 어려운 개혁을 해낼 가장 깨끗한 사람이 필요하다. 마땅한 이가 없다면 대통령과 같은 철학을 지닌 검사에게 개혁의 칼을 쥐어주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다. 

하정호 기자 southcros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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