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총수 손자·연예인 아들이어서?..사라진 가해자

김종원 기자 입력 2017. 6. 16. 21:25 수정 2017. 6. 19.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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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서울의 한 사립초등학교에서 수련회를 갔던 어린이가 같은 반 학생 4명에게 발로 밟히고 야구방망이로 맞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학교의 조사 결과는 이렇습니다. '피해자는 있지만 의도적으로 폭행한 가해자들은 없다.' 가해자로 지목된 어린이 가운데는 재벌 회장 손자와 연예인 아들이 있었습니다. 피해 어린이 부모는 이런 배경이 조사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김종원 기자입니다.

<기자>

초등학교 3학년 유모 군은 두 달 전 수련회에 갔을 때 담요를 갖고 혼자 텐트 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같은 반 아이 4명의 폭행이 시작됐습니다.

[유모 군(피해 아동), 사건 직후 녹취 : (담요 안에 있었는데) 누가 깔아뭉개면서 '팍'하면 서 '팍' 이렇게 했어요.]

한 명은 유 군이 빠져나오지 못하게 담요를 잡고, 다른 두 명은 야구 방망이와 나무 막대기로, 또 한 명은 무릎으로 폭행했다는 게 유 군의 증언입니다.

[(아파서) 처음에는 (작게) '으앙' 이렇게 울었어요. 그리고 심해져서 (크게) '아악' 하면서 울었어요.]

유 군을 폭행한 4명은 또 밤에 물을 찾던 유 군에게 바나나우유 모양 용기에 담긴 물비누를 우유라며 마시라고 했다고 합니다.

유 군은 이 끔찍했던 경험을 엄마에게 얘기했습니다.

[유 군 엄마 : '(아이가) 엄마, 나 죽을 뻔했어. 애들이 담요 씌우고 나를 막 때렸어' 이래서 깜짝 놀라서 (선생님한테 전화를 했죠.)]

유 군은 강한 충격을 받을 경우 근육세포가 파괴돼 녹아버리는 횡문근 융해증과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 진단을 받았습니다.

학교에서 조사가 시작됐습니다. 가해자로 지목된 아이들은 담요 위에서 뛰고 방망이로 때린 건 맞지만, 밑에 유군이 있던 건 몰랐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담요는 얇은 홑겹이었고 담임교사도 처음엔 아이들의 말을 믿기 어렵다고 스스로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담임교사 : 저도 납득이 안 가는 게 단 한 번만 눌러봐도 사람이 있다는 걸 알 텐데. 알면서도 했다는 게 제 마음이 저도 (이해가 안 가요). (같은 방에 있던) 한 명의 남자아이가 와서 저한테 얘기를 했어요. "사실은 (유 군이) 있는지 알고도 누구누구는 계속 밟았어요."라고요.]

하지만 조사는 지지부진했고 급기야 야구방망이를 휘두른 것으로 지목된 어린이가 가해자 명단에서 빠지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유 군 엄마 : (가해자 명단에) A군은 없습니다. 모든 아이들 진술서에서 빠져 있어요. A군이 모그룹 손자라고 제가 들었거든요. 재벌집 손자다.]

재벌 총수의 손자와 유명 연예인의 아들이 가해 아동에 포함됐다는 걸 알게 되면서 유 군의 엄마는 조사 결과를 걱정했다고 합니다.

이 문제를 논의하는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리기 이틀 전 교장의 말은 불안을 더욱 키웠습니다.

[교장 : 우리도 변호사를 써서 빈틈없이 대응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어머님 애 데리고 나갈 거 아니에요. 그러실 거 아니에요, 이번 일 끝나면. 어떻게 아이를 이런 학교에 보내시려고 하시겠어요? 학교를 징계하는 건 교육청이 아니에요. 우리는 법인 이사장님이에요. 교육청은 하나도 안 무서워요.]

학교폭력위원회는 가해 아동들에게 아무런 처분도, 피해 아동에 대해 아무런 보호 조치도 하지 않는 걸로 결론을 냈습니다. 고의로 폭행한 게 아니라는 가해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겁니다.

사과하고 화해하도록 노력하라는 권고 대상에서조차 재벌 총수의 손자는 빠졌습니다.

[엄마 : 유명한 사람의 자식이기 때문에 보호받고 진실이 감춰지고, 특히 이 아이들을 선도하고 지도해야 될 위치에 있는 분들이 그러면 아이들이 뭘 배울 수 있겠습니까?] 

학교 측은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원칙에 따라 내린 결론이며 피해 아동 부모가 재심을 청구하면 그 결과를 보겠다는 반응을 내놨습니다.

(영상취재 : 공진구, 영상편집 : 윤선영, VJ : 김준호)  

김종원 기자terryabl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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