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을 조종하는 '어둠의 손' 코크 형제

2017. 6. 15.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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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부자 코크 형제
어두운 돈과 문어발 조직으로
워싱턴 정치 맘대로 주물러

극단적 자유지상주의 이념으로
지식인, 연구소, 시민조직 장악
오바마 반대 티파티도 배후지원

[한겨레]

다크 머니 -자본은 어떻게 정치를 장악하는가
제인 메이어 지음, 우진하 옮김/책담·2만8000원
“코크 형제의 승리다. 트럼프는 단지 도구에 불과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2일 파리 기후협약 탈퇴를 발표하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제프리 색스 컬럼비아대학 교수가 한 말이다. <뉴욕 타임스>는 “코크 형제의 정교한 캠페인에 따라 공화당 의원들이 움직이고 있다”며 “심지어 트럼프가 읽어 내린 탈퇴 발표문의 문장 하나하나가 코크 형제의 평소 주장과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고 보도했다.

찰스 코크(82)와 데이비드 코크(77) 형제는 미국 캔자스주 위치토에 본사를 둔 코크산업(Koch Industries)의 소유주들이다. 두 사람의 재산은 ‘포브스 선정 억만장자 순위’ 공동 8위다. 둘의 재산을 합하면 974억달러(약 110조원)로, 1위인 빌 게이츠(860억달러)를 가볍게 뛰어넘는다.

코크 형제의 실력은 트럼프 주변 사람들을 살펴봐도 알 수 있다. 부통령 마이크 펜스는 코크 형제가 2012년 대통령 후보로 민 적이 있고 선거자금으로 30만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의 경우 코크 형제의 텃밭인 캔자스주 하원의원 출신으로 코크 형제의 지원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으로 손꼽힌다. 아예 ‘코크 가문의 하원의원’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이 일일이 셀 수가 없을 정도로 많다.

21년째 <뉴요커>에서 전속으로 기사를 쓰고 있는 제인 메이어가 쓴 <다크 머니>는 코크 형제를 집중 해부한 책이다. 지은이는 책의 서두에서 결론부터 말한다. “트럼프야말로 본질적으로 그들(코크 형제)의 후계자인 동시에 그들이 1970년대 이후 계속해서 매진해온 광범위한 정치 활동의 결과물임에 틀림없다.”

코크 4형제의 어릴 적 모습. 앞줄의 데이비드(왼쪽)와 윌리엄은 쌍둥이다. 뒷줄 왼쪽이 찰스, 오른쪽이 맏이 프레더릭이다. 프레더릭과 윌리엄은 훗날 찰스와 데이비드에 의해 가문에서 축출된다.

코크 형제의 아버지는 스탈린과 히틀러의 도움을 받아 가문의 부를 쌓아올리기 시작했다. 1930년대 소련에 현대식 원유 정제시설을 건설했고, 독일에서는 전투기 연료로 쓰이는 고옥탄 휘발유를 생산했다. 그는 독일식 생활에 매료돼 독일 출신 가정교사를 집에 들였는데 코크 형제는 열정적인 나치 추종자인 가정교사로부터 히틀러에 대한 찬양을 들으며 성장했다.

코크 형제는 일찌감치 정치적 열정에 휩쓸렸다. 이들이 신봉한 이념은 보수주의라기보다는 리버테어리언(Libertarian)이다. 일반적으로 자유지상주의자로 번역될 수 있는 리버테어리언은 자유주의를 철저하게 옹호하지만 자신들이 버는 돈 문제에서는 무정부주의에 가까운 극단성을 보인다. 그래서 코크 형제의 목표는 “기존의 국가 중심 체제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것이고 “레닌이나 스탈린처럼 혁명을 완성한 주인공이 되고 싶어했다.”

동생 데이비드는 1980년 미국의 자유당 부통령 후보로 출마했으나 결과는 참담했다. 득표율이 1.06%에 그쳤다. 형제는 전략을 바꿨다. 직접 나서서 돈과 시간을 쓸 게 아니라 정치인을 움직이는 각본을 쓰기로 한 것이다. 이후 30년 동안 형제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대부분 익명으로 자신의 입맛에 맞는 조직이나 단체에 기부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 형제의 활동은 언론과 정치권, 학계와 연구소 등에 문어발식으로 확장됐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코크토퍼스(Kochtopus)다. 즉 코크(Koch)와 문어를 의미하는 옥토퍼스(octopus)를 합성한 말이다.

2016년 대선 때는 형제를 중심으로 한 정치조직이 몸집을 최대한 키웠다. 1600명이 넘는 유급직원들을 미국의 35개 주에 파견해 전체 유권자의 80%를 접촉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이들이 끌어모은 정치 자금만 8억8900만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화당 공식 조직보다 자금이나 규모 면에서 훨씬 크다. 전쟁으로 치면 정규군보다 더 강력한 민병대를 꾸린 셈이다.

미국 캔자스주 위치토에 있는 코크 산업 본사 모습.

코크 형제는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3단계 계획을 세웠다. 1단계는 지식인들에 대한 투자, 2단계는 정책 연구소에 대한 투자, 그리고 마지막 3단계는 시민모임에 대한 지원이다. 1, 2단계 투자에서 가장 빛을 본 것은 오존 농도를 낮추려는 정부 정책에 맞선 것이었다. 1997년 정부가 원유 정제시설에서 나오는 오염물질 기준치를 강화하려고 하자 코크 형제의 지원을 받는 어느 학자가 기발한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스모그로 인해 태양빛이 줄어들면 피부암도 따라 준다. 만일 공기오염에 지나치게 관여한다면 피부암이 매년 1만1000건 이상 더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런 주장은 소송으로까지 이어졌는데 어처구니없게도 재판부는 코크 형제의 손을 들어줬다. 나중에 보니 재판부 판사들은 이전에 코크 가문의 재단들이 뒷돈을 대준 학술회의에 참석해 멋진 휴가를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3단계 투자의 결정체는 세금 납부 거부 운동인 티파티다. 티파티 운동은 기득권층의 금전적 이해관계에 맞서 자발적으로 일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은이는 “대부분의 만들어진 신화가 그렇듯 실제는 전문적으로 조직된 미디어들이 대중적 저항이라는 환상을 꾸며냈고, 은밀한 기획을 통해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2009년 4월15일 세금 납부일에 맞춰 전국적 규모의 대회가 열렸을 때 코크 형제의 입김이 미치는 헤리티지 재단과 케이토 재단, 그리고 ‘번영을 위한 미국인들’ 같은 단체들이 집회에 필요한 연사와 주제, 교통수단과 언론협조, 필요한 물품을 모두 제공했다는 것이다. 코크 형제 같은 후원자들의 지원이 없었다면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처럼 티파티 운동 역시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을 것이라는 게 지은이의 생각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코크 형제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2010년 1월 판결을 통해 “기업 등이 특정 후보를 편들기 위해 광고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슈퍼팩(특별정치활동위원회)이 활동할 수 있는 물꼬를 터준 셈인데, 선거자금의 규제 완화는 또 다른 도금시대의 부활이 될 것이라는 게 지은이의 우울한 전망이다.

책에서는 물론 한국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하지만 미국 정치의 작동방식이 이토록 어둡다면 한반도의 장래도 그만큼 암울해 보인다. 워싱턴의 백악관과 의회만이 아니라 월스트리트를 중심으로 한 미국 자본의 생리를 더 날카롭게 들여다봐야 하는 숙제가 우리 정치인들에게 주어져 있는 셈이다.

김의겸 선임기자 kyummy@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주주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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