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유력 '포스트 슈틸리케' 허정무 "모든걸 걸 승부사가 필요"

노주환 2017. 6. 15.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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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무 부총재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스포츠조선
"모든 걸 걸 수 있는 승부사가 필요하다."

허정무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62)는 '포스트 슈틸리케' 정국 속 차기 유력 후보다.

슈틸리케 감독은 15일 파주NFC(국가대표 트레이닝 센터)에서 열린 제5차 기술위원회를 통해 공식 해임됐다. 이용수 기술위원장도 슈틸리케 감독과 함께 동반 퇴진하기로 했다. 이제 새로 구성될 기술위원회에서 공석이 된 A대표팀 사령탑을 선임하게 된다.

누가 맡게 되든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 축구는 백척간두의 위기에 놓여 있다. 한국(승점 13)은 최종예선에서 위태로운 A조 2위를 지키고 있다. 3위 우즈베키스탄(승점 12)과 승점 차는 불과 1점이다. 이제 남은 경기는 이란전(홈)과 우즈벡전(원정). 우즈벡과의 최종전이 단두대 매치가 될 공산이 크다. 원정에서 유독 약했던 터라 월드컵 9회 연속 진출은 장담하기 어렵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신임 감독 선임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일단 축구협회 안팎에서는 유력 후보들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그중 한 명이 허정무 부총재다. 축구 원로들이 그를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있다. 한 원로 축구인은 "이런 위기 상황에선 젊은 지도자 보다는 경험이 많고 승부사 기질이 있는 베테랑 감독이 더욱 효과적이다"고 말한다.

실제 허 부총재는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 우선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한국 축구 사상 첫 원정 16강을 달성했다. 국내 지도자로 월드컵 성적만 놓고 허 부총재를 능가할 경쟁자는 없다. 그는 남아공월드컵 성공 이후 미련없이 대표팀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K리그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으로 변신 후 2012년 4월 사임했다. 이후 2013년부터 행정가로 변신해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2014년 브라질월드컵 축구대표팀 단장을 지냈고, 2015년부터 현재의 연맹 부총재 직을 맡고 있다. 일각에선 허 부총재가 현장 지도자를 5년이나 떠나있었다며 이를 단점으로 지적한다. 하지만 이는 다소 기계적인 해석이다. 허 부총재는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 5년 간 지도자 때보다 훨씬 많은 경기를 지켜봤다. 시야가 더욱 넓어졌고, 최근 흐름에도 발을 맞추고 있다.

2012년 런던올림픽과 2014년 브라질월드컵도 현장에서 지켜봤다. 부총재가 된 후에는 매주 K리그 현장을 누비고 있다. 그는 "행정가로 변신한 후 경기를 보는 시야가 더 넓어졌다. 훨씬 객관적으로 경기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허 부총재는 14일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서 A대표팀 감독 복귀설에 대한 솔직한 심경을 밝혔다. 그는 "한국 축구가 큰 위기에 처한 건 분명하다. 상황이 좋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금 상황에선 정말 모든 걸 던질 수 있는 지도자가 와야 한다. 나는 마음을 비우고 있다"고 했다. 한국은 8월 31일 이란전(홈)과 9월 5일 우즈벡전(원정)을 통해 우즈벡 보다 승점에서 앞서야만 조 2위로 러시아월드컵 본선에 직행하게 된다.

남아공월드컵 때의 허정무 감독 스포츠조선
남아공월드컵 때의 허정무 감독 스포츠조선
허 부총재는 이런 말도 했다. "그냥 자신의 걸 버릴 수 있는 지도자, 잃어버려도 괜찮은 지도자가 맡아야 한다. 남은 2경기에서 승부를 걸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허 부총재가 언급한 차기 감독 조건의 핵심은 '희생'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져 수렁에 빠진 '한국축구'를 구할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한 시점. 그렇다면 이러한 조건을 두루 충족할만한 지도자는 과연 누구일까. 특정인을 딱 하나 지목하기는 어렵다. 다만, 앞길이 구만리 같은 젊은 지도자는 아니다. 오히려 모든 걸 이뤘고 손해볼 게 없는 베테랑 감독이 희생에는 적합하다는 뉘앙스가 깔려 있다.

마음을 비우고 있지만 허 부총재는 한국 축구가 자신을 간절히 필요로 한다면 회피할 생각은 없다. 받은만큼 언제든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평화로운 시기라면 후배 지도자를 위해 길을 터주겠지만 지금은 특별한 상황, 전시다. 남은 2경기 결과에 따라 자칫 8회 연속 이어온 월드컵 연속 진출이 중단될 수 있다. 자칫 한국축구 몰락의 '원흉'이 될 수 있는 바로 그 자리는 누구도 선뜻 맡기 힘든 '독이 든 성배'다. 죽을 수도 있는 전쟁터에 나설 선봉장이 없다면 베테랑이 희생해야 한다는 것이 한국 축구에 대한 허 부총재의 변함 없는 애정이자 충심이다.

사실 지금 처럼 시간은 없고, 목표가 분명한 특별한 상황에서는 허 부총재가 적임자다. 상황을 빠르게 정리할 수 있는 베테랑 중 베테랑이다. 소통과 연착륙에도 전혀 문제가 없다. 현재 대표팀 코칭스태프인 정해성 수석코치와 설기현 코치 등과도 이미 호흡을 맞췄다. 기성용, 이청용 등 대표팀 베테랑 선수들과도 이미 함께 했다. 빠르게 대표팀 속에 녹아들 수 있다.

무엇보다 남은 2경기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하는 대표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사생결단의 승부욕이다. 새로운 기술이나 전술을 심기에는 100일도 채 남지 않은 시간이다. 싫은 소리 못하는 슈틸리케 감독이 사실상 방치해온 느슨한 팀을 하나로 빠르게 뭉쳐낼 적임자가 바로 허정무 부총재다. 그는 스스로 승부사 기질이 있다고 늘 말한다. 실제 그는 선수 시절부터 지도자 시절까지 승부욕으로 똘똘 뭉친 파이터였다.

그는 4월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 때 "남아공월드컵 16강서 아쉽게 패한 우루과이와 다시 맞붙고 싶다"고 말했다. 또 "요즘 A대표 선수들이 팀으로 뭉치지 못하고, 희생하는 플레이가 적다"고 따끔하게 지적하기도 했다. "선수들이 겉멋이 들었다"는 충고도 했다. 당시 슈틸리케 감독에게 "선수별로 숙제를 내주면 관리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훈수도 뒀다. 기성용 이근호 등을 중심으로 "선수도 반성해야 한다"는 자성론이 나오고 있는 시점. 감독의 방치는 곧 직무유기다.

허 부총재는 지난 4월초 축구협회가 슈틸리케 후임 감독에 대한 후보군을 추렸을 때에도 후보군에 포함이 됐다. 당시 정몽규 축구협회장이 슈틸리케 감독을 재신임하면서 감독 교체건은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이제 다시 그때 준비한 카드들이 속속 부상하고 있다.

갑작스러운 특별한 상황들이 다시 그라운드를 향해 허 부총재의 등을 떠밀고 있다. 그는 위기에 봉착한 한국 축구를 외면할 지도자가 아니다. 오히려 그 위기를 받아들이고 즐길 준비된 리더다. 허정무 부총재의 재등판 여부가 '포스트 슈틸리케' 정국의 관심사로 급부상 하고 있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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