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경향포럼]"생산활동 로봇·기계에 맡기고, 인간은 창조활동에 집중"
[경향신문] ㆍAI·로봇·IoT 결합 ‘4차 산업혁명’ 뛰어든 일본
# 혼자 사는 90세 ㄱ씨는 식사 후 고혈압, 관절염 약 먹는 걸 자주 잊는다. 그러자 사물인터넷(IoT) 기능을 지닌 약통의 데이터 정보를 받은 휴머노이드 로봇이 물을 떠서 약을 내민다. 약이 떨어지기 전 로봇이 미리 주문해 드론으로 문 앞에 배달시켜 가져온다. 그는 거동하기도 힘에 부치지만 집안일은 걱정하지 않는다. 설거지, 청소, 빨래는 모두 가사도우미 로봇이 하기 때문이다. 옛 추억까지 들려주는 이 말동무가 치매도 예방해준다.
공상과학 영화의 한 장면 같지만 10년도 안돼 실현될 수 있다. 결혼하지 않고 아예 로봇과 동거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일본에선 소니의 반려로봇 ‘아이보’가 망가지면 장례식까지 치러준다. 내 마음을 알고 소통하는 상대가 사람인지, 로봇인지는 중요치 않을지 모른다.
지난달 25일 일본 오사카 시내 한 호텔 로비에서는 머잖아 이런 세상이 될 것 같은 가능성을 보여줬다. 안내데스크 옆에는 사람과 닮은 로봇이 연미복에 나비넥타이 차림을 하고 있었다. 소프트뱅크의 휴먼로봇인 ‘페퍼’다. 영어로 날씨를 물어봤더니 못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돌리며 손을 살짝 말아서 귀에 가져다댔다. 순간 꼭 사람처럼 여겨졌다. 상대방이 움직이는 쪽으로 고개나 몸을 따라 돌리며 눈을 마주치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했다. 일본 곳곳에선 말을 걸어오는 페퍼를 만나게 된다.
점점 줄어드는 인구로 노동력이 부족해지는 저출산·고령화 문제 해결책으로 인공지능(AI) 로봇이 주목된다. 기계를 때려부순 ‘러다이트 운동’이 실패로 끝났듯이 로봇시대에 대한 저항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보인다. 특히 노동력이 부족한 일본의 구직자 대비 일자리 수인 ‘유효구인배율’은 1.48로 43년 만에 최고다. 일할 사람 100명에 일자리는 148개란 뜻이다.
일본 기업들은 특유의 ‘장인정신(모노쓰쿠리)’으로 쌓아올린 기술력에 최신 정보기술(IT)을 접목시켜 4차 산업혁명으로의 대전환에 뛰어들었다.
산업자동화 전문업체인 옴론은 최근 자동화기술과 AI, IoT의 결합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달 23일 교토 본사에서 만난 혼조 도모히토 IoT프로젝트 매니저는 “2년 전에는 인터넷 정보를 클라우드에 저장하는 등 데이터를 모으기만 했는데 이제는 이를 분석해 정보로 처리, 현장에 적용하는 IoT로 변화했다”고 밝혔다. 예컨대 차량의 위성항법장치(GPS) 정보와 속도, 제동 관련 데이터를 모아 정체 구간 정보, 사고 위험 높은 장소, 연비 등을 이용자에게 공개하고, 산업에도 활용하는 식이다.
마침 이날자 니혼게이자이신문 1면에는 옴론을 포함한 100개사가 참여하는 ‘IoT 데이터 매매시장’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옴론은 회사끼리도 정보를 공유하는 사회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자기 것만 지킬 게 아니라 공유할 때 더 나은 혁신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앞으로는 전체가 이어지는 사회(초연결사회)가 될 것으로 옴론은 예상한다. 혼조 매니저는 “한마디로 기계가 할 수 있는 일은 기계에 맡기고, 인간은 보다 창조적인 분야에서 활동을 즐겨야 한다는 게 옴론의 철학”이라고 했다.
또한 IoT를 통한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은 동떨어진 듯한 농업 분야에도 퍼지고 있다. 저출산·고령화 사회에 농업 효율화와 생산성 향상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오사카에 본사를 둔 105년 역사의 농기계·건설기계 등 제조사 얀마는 올 4월부터 ‘원격제어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튿날 방문한 얀마 본사의 차세대 서비스 거점인 ‘원격지원센터’는 하루 24시간, 365일 가동하며 농기계, 에너지 공조 시스템, 해양산업 장비 등 1만8000대를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농기구 트랙터의 경우 엔진 이상 등을 실시간 감지해 센터가 현장에 가까운 요원에게 알려준다. 부품센터와도 데이터를 공유한다. 또 기계가 도난 등으로 예정된 위치에서 벗어나면 이상신호를 보내온다. 가동정보를 취득해 기계 회전수, 부하, 에러, 연료소비량 등도 확인한다.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해 엔진·미션오일 교환, 필터 교환 시기 등 최적의 기계 유지·보수 방법을 제안하기도 한다. 얀마는 기계 가동정보, 논밭 정보, 작업 이력, 농약·비료 사용량 같은 데이터를 클라우드로 공유하고 있다. 구글 지도를 활용해 논밭의 위치, 면적, 울타리 여부, 재배 작물, 수확량 등도 색깔로 구분해 보여준다. 사에키 데쓰 고객서비스부장은 “아직 서비스한 지 얼마 안돼 데이터 축적, 분석 단계”라며 “앞으로 분야를 확대해 전력 소비, 판매, 통제 등에도 IoT를 접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2020년 무인 농기계 실용화 방침을 표명했다. 자동주행 트랙터, 드론, 로봇, 클라우드 등을 농업 현장에 적용할 계획이다.
앞서 디지털·스마트 혁명에 제대로 대응치 못했다는 평을 받은 일본은 지난해 6월 ‘일본재흥전략 2016’을 만들었다. 일본은 로봇, AI, IoT, 빅데이터 등을 기반으로 2020년까지 30조엔의 부가가치를 창출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인재도 적극 육성키로 했다. 또 건강·의료 데이터, 로봇·센서를 통한 건강 서비스 등을 늘리고, 드론 배송도 목표로 제시했다. 이광호 코트라 오사카무역관장은 “일본은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AI 기술을 적용한 ‘이동수단, 생산자동화, 건강·의료, 생활’을 4대 전략으로 삼고 대대적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고 전했다.
<오사카·교토(일본) | 전병역 기자 junb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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