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노래]임재범의 '비상'-어려운 시절 넓은 세상을 꿈꾸며

2017. 6. 14.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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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지 공부를 못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딱히 중학교 시절에도 우등생인 적은 없었지만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성적표는 정말로 참담했다. 지금도 성적표를 보고 “한규야, 다음에는 잘해라”라고만 하신 어머님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누구를 괴롭힌다거나 술·담배를 한다거나 해서 요주의 학생으로 불린 것은 아니었고, 그저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영화 보러 다니고 선생님 말씀보다는 밤늦게까지 라디오 DJ(특히 전영혁)의 선곡에 더 귀를 기울였던 학창시절이었다.

뒤늦게 어느 대학이라도 입학하고자 분발했지만 졸업 당시 성적은 10등급 기준으로 6등급으로 마치고 3수를 한 끝에 간신히 경원대(현 가천대) 법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대학에 입학한 후 우리 사회의 정의롭지 않은 모습들, 특히 80년 광주의 진실을 알게 된 것은 지금과는 비교되지 않는 순수했던 20대의 내게 커다란 사고의 전환을 안겨다 주었다. 비로소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하게 되었고, 그 당시 고시생들이 대개 그랬듯이 정의로운 법조인의 꿈을 안고 사법시험에 도전하게 되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특별히 잘 살았던 기억은 없지만, 대학 졸업 후 집안사정이 급격히 어려워졌다. 어느 순간부터 집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이 끊겼음은 물론 월세가 연체되었다고 집주인이 찾아와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직장을 알아보려고 했지만 아버님은 “신경 쓰지 말고 공부해라”고 하셨고, 그 순간부터 공부와 겸업이 가능한 일자리를 찾으러 다녔다. 식당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했고, 고시원 총무를 한 것은 물론 길거리에서 전단지도 돌려봤다.

변호사로서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 논리력, 화술, 암기력, 이해력 등 흔히 변호사가 갖추어야 하는 능력들이 아니고 의뢰인에게 비교적 공감을 잘한다는 것이다. 특히 의뢰인이 사회적 약자인 경우 공감대 형성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이 역시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들이 약자여서라기보다는 그저 옆에 있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총 12번을 떨어졌지만 운이 좋은 덕에 변호사가 될 수 있었고, 애초에 꿈을 꾸던 정의로운 변호사의 모습까지는 아니지만 의뢰인들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감안하면 스스로 과락은 면한 것 같다고 위로하곤 한다. 계속된 불합격 소식을 듣던 어두운 시절에 입가에 맴돌던 노래가 있다.

“나도 세상에 나가고 싶어. 당당히 내 꿈들을 보여줘야 해. 그토록 오랫동안 움츠렸던 날개 하늘로 더 넓게 펼쳐 보이며 날고 싶어.”

임재범의 <비상>이다. 계층이동이 불가능한 세상이 되었다. 공부를 못했거나, 가난하거나 장애가 있으면 감히 위를 쳐다봐서는 안 되는 세상이 되었다. 교육·복지 등 각종 사회제도가 미비할 뿐만 아니라 기득권층이 자신이 가진 것을 절대로 양보하지 않고 대물림하는 세상이다.

과거 산업발전시대에는 ‘개룡남’ 신화가 있었다. 이에 대해 그 용들이 사회에 미친 폐해를 지적하고 그것은 구시대의 유물이며, 차라리 개천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들도 많다. 하지만, ‘용’을 ‘부와 권력’만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의 장이라고 넓게 해석하면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새 정부가 들어섰다. 서민이 ‘비상’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마련하는 데 역점을 두었으면 좋겠다. 함께 사는 사회라는 것을 잊지 말자.

<김한규 변호사·전 서울변호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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