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노래]임재범의 '비상'-어려운 시절 넓은 세상을 꿈꾸며
누구를 괴롭힌다거나 술·담배를 한다거나 해서 요주의 학생으로 불린 것은 아니었고, 그저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영화 보러 다니고 선생님 말씀보다는 밤늦게까지 라디오 DJ(특히 전영혁)의 선곡에 더 귀를 기울였던 학창시절이었다.
뒤늦게 어느 대학이라도 입학하고자 분발했지만 졸업 당시 성적은 10등급 기준으로 6등급으로 마치고 3수를 한 끝에 간신히 경원대(현 가천대) 법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대학에 입학한 후 우리 사회의 정의롭지 않은 모습들, 특히 80년 광주의 진실을 알게 된 것은 지금과는 비교되지 않는 순수했던 20대의 내게 커다란 사고의 전환을 안겨다 주었다. 비로소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하게 되었고, 그 당시 고시생들이 대개 그랬듯이 정의로운 법조인의 꿈을 안고 사법시험에 도전하게 되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특별히 잘 살았던 기억은 없지만, 대학 졸업 후 집안사정이 급격히 어려워졌다. 어느 순간부터 집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이 끊겼음은 물론 월세가 연체되었다고 집주인이 찾아와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직장을 알아보려고 했지만 아버님은 “신경 쓰지 말고 공부해라”고 하셨고, 그 순간부터 공부와 겸업이 가능한 일자리를 찾으러 다녔다. 식당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했고, 고시원 총무를 한 것은 물론 길거리에서 전단지도 돌려봤다.
변호사로서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 논리력, 화술, 암기력, 이해력 등 흔히 변호사가 갖추어야 하는 능력들이 아니고 의뢰인에게 비교적 공감을 잘한다는 것이다. 특히 의뢰인이 사회적 약자인 경우 공감대 형성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이 역시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들이 약자여서라기보다는 그저 옆에 있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총 12번을 떨어졌지만 운이 좋은 덕에 변호사가 될 수 있었고, 애초에 꿈을 꾸던 정의로운 변호사의 모습까지는 아니지만 의뢰인들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감안하면 스스로 과락은 면한 것 같다고 위로하곤 한다. 계속된 불합격 소식을 듣던 어두운 시절에 입가에 맴돌던 노래가 있다.
“나도 세상에 나가고 싶어. 당당히 내 꿈들을 보여줘야 해. 그토록 오랫동안 움츠렸던 날개 하늘로 더 넓게 펼쳐 보이며 날고 싶어.”
임재범의 <비상>이다. 계층이동이 불가능한 세상이 되었다. 공부를 못했거나, 가난하거나 장애가 있으면 감히 위를 쳐다봐서는 안 되는 세상이 되었다. 교육·복지 등 각종 사회제도가 미비할 뿐만 아니라 기득권층이 자신이 가진 것을 절대로 양보하지 않고 대물림하는 세상이다.
과거 산업발전시대에는 ‘개룡남’ 신화가 있었다. 이에 대해 그 용들이 사회에 미친 폐해를 지적하고 그것은 구시대의 유물이며, 차라리 개천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들도 많다. 하지만, ‘용’을 ‘부와 권력’만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의 장이라고 넓게 해석하면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새 정부가 들어섰다. 서민이 ‘비상’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마련하는 데 역점을 두었으면 좋겠다. 함께 사는 사회라는 것을 잊지 말자.
<김한규 변호사·전 서울변호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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