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고요한 굉음, 맑은 날의 비

2017. 6. 1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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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당하자 파께서 매운 광선을 쏘고 계셨다.

비가 오는 도시는 정원 같았다.

소리 줄인 TV 속 비 내리는 연못 위 동심원처럼 계속해서 번져가되 언젠가 꽉 차버리지 않는 음악.

아파트 외벽에서 작업하다 추락사한 인부에 대한 뉴스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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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13일 화요일 맑음. 맑은 날의 비.
#252 Slowdive 'Sugar for the Pill'(2017년)

[동아일보]

영국 밴드 슬로다이브의 22년 만의 새 앨범 ‘Slowdive’. 리플레이뮤직 제공
공격당하자 파께서 매운 광선을 쏘고 계셨다.

눈물이 났다. 휴일 아침의 요리는 녹록지 않다. 나른한 정신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는 썰고 다듬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펄펄 끓인 국물을 들이켜고 나니 또다시 피곤해졌다. 아이스커피도 나른한 정신을 못 깨워냈다.

‘I am not a robot □’

밥을 먹고는 컴퓨터를 켜고 어떤 웹사이트에 들어가려 했다. ‘나는 로봇이 아닙니다’라고 써진 곳의 오른쪽 네모 칸에 마우스를 갖다 대야 했다. 그래, 난 로봇이 아니지. 체크.

비가 오는 도시는 정원 같았다. 투명한 빗방울을 맞고 또 맞아봤자 한 치도 자라지 않는 회색 식물들. 창문을 열지 않고 오디오의 스위치를 올렸다.

무심한 듯 ‘둥둥둥’ 울려대는 베이스기타와 드럼. 메아리를 물방울처럼 머금은 채 그 위를 부유하는 전기기타. 방금 잠에서 깬 듯 부르는 노래. 영국 레딩 출신의 밴드 ‘슬로다이브’의 음악은 팀 이름만큼이나 천천히 뛰어들고 싶게 만들었다. 50초 뒤 폭발하는 대신 끝나지 않는 예열. 소리 줄인 TV 속 비 내리는 연못 위 동심원처럼 계속해서 번져가되 언젠가 꽉 차버리지 않는 음악.

“고층빌딩에 매달려 작업하는 사람들은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서 음악을 틀어놓는대.”

K가 말했다. 아파트 외벽에서 작업하다 추락사한 인부에 대한 뉴스를 봤다. 인부들이 작업하며 휴대전화로 틀어놓은 음악이 시끄럽다며 누군가 옥상에 올라가 밧줄을 끊었다고 했다.

얼마 전 버스를 타고 신촌을 지나갔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H요가’란 간판을 다시 바라봤다. 대학교 때 즐겨 다니던 음악감상실 자리였는데 새 가게가 들어섰다. 간판 아래 쓰인 ‘요가, 명상’이란 평화로운 단어가 그 시절 스피커에서 울리던 록 음악의 굉음과 겹쳐졌다.

드림 팝(dream pop), 아니면 슈게이징(shoegazing). 슬로다이브처럼 꿈결 같고 조금 우울한 록 음악을 가리키는 장르명이다. 슈게이징은 다른 로커들처럼 활기차기는커녕 가만히 서서 신발 끝만 내려다보며 연주하는 그 부류 음악가들의 무대 매너를 묘사하다 생긴 보통명사다.

좀 전에 커다란 네거리의 건널목을 건너다 문득 헛것을 봤다. 쏟아지는 햇살, 도시를 빽빽이 메운 그 삼엄한 화창함 사이로 빗줄기가 섞여드는 환상. 오래된 영화 필름처럼 시간에 금이 갔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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