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 먼 공익제보] 소신 지킨 대가로 9년째 실업상태.. 고통은 '진행 중'

이우중 2017. 6. 12.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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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앞에서 공익제보자는 너무도 쉽게 무력해진다.

제보 내용이 사실로 밝혀지더라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대부분인 데다 그때까지의 고통은 오롯이 개인이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유씨는 "내용을 들여다보면 명백히 불합격인데 시공사가 결론 부분만 적합하게 꾸민 보고서를 만들어냈다"며 "이런 건물은 평상시에는 기초 말뚝 하자로 인한 피해가 서서히 진행되지만 태풍이나 지진 등의 자연재해가 올 경우 못 버틴다. 제가 걱정한 것이 이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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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사 부당 설계변경 고발한 유영호씨 / '엉터리 보고서' 불합격 시키자 보복.. 감리단장 교체에 22억 손배소 제기 / '블랙리스트'로 재취업 길까지 막아

조직 앞에서 공익제보자는 너무도 쉽게 무력해진다. 제보 내용이 사실로 밝혀지더라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대부분인 데다 그때까지의 고통은 오롯이 개인이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전북 군산시 현대메트로타워 공사현장에서 감리단장으로 일하다 시공사의 부당한 설계변경을 고발한 유영호(사진)씨는 부실공사를 막겠다는 소신을 지킨 대가로 지금까지 9년째 실업 상태다. ‘블랙리스트’에 오르자 30여년의 경력도 쓸 데가 없었다.

지난달 30일 전북 군산시에서 취재팀과 만난 유씨는 “알지 못했다면 몰라도 명백한 부실공사를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앞서 2009년 4월 유씨가 이 아파트의 감리단장 업무를 시작한 지 5일 만에 시공사가 예정에 없던 설계변경을 요청해 왔다. 공사비 절감을 위한 것이었다. 당시 시공사는 “기초 말뚝에 쓰이는 파일을 바꾸겠다”며 설계변경을 요구했고, 유씨는 시에 건의해 재하시험(지반의 지지력·안정성을 점검하는 시험)을 실시했다. 시험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유씨는 “내용을 들여다보면 명백히 불합격인데 시공사가 결론 부분만 적합하게 꾸민 보고서를 만들어냈다”며 “이런 건물은 평상시에는 기초 말뚝 하자로 인한 피해가 서서히 진행되지만 태풍이나 지진 등의 자연재해가 올 경우 못 버틴다. 제가 걱정한 것이 이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씨가 감리 도장 찍기를 거부하자 곧바로 보복이 뒤따랐다. 시공사는 유씨 때문에 공사가 미뤄졌다며 하루에 7000만원씩 22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고 ‘청렴의무 위반’ 등의 혐의를 씌워 군산시에 감리단장 교체 요청을 했다. 애초 유씨의 문제 제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던 군산시에서는 기다렸다는 듯 유씨를 교체했다. 뿐만 아니라 전국 시군구에 감리원 변경과 사유를 통보해 재취업 길까지 막았다. 유씨는 “청렴의무 위반으로 감리원 교체가 이뤄지면 다른 곳에서도 일할 수가 없게 된다”며 “더구나 이런 사실을 전국 시군구에 공문으로 보내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

유씨는 교체 직후 감사원 등에 ‘군산시에 의해 부당하게 교체됐다’는 내용의 진정을 넣었다. 감사원에서는 전북으로 이송했고, 전북에서는 다시 군산시로 내려보내는 황당한 민원처리가 이루어졌다. 군산시의 문제점을 군산시에서 조사하도록 한 셈이다. 유씨는 2개월 뒤 재차 민원을 넣었지만 결과는 같았다. 군산시는 “명백한 허위 사실 주장”이라며 “계속 우리 시 업무를 방해하는 경우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는 고압적인 답변을 내놨다.

진실이 드러난 것은 3년이 지난 2012년이었다. 군산시의회 조사 결과 당시 감리단장 교체가 자의적이고 부당했으며 시공도 부실했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이어 2015년 유씨가 군산시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 항소심에서도 법원은 유씨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유씨는 공익제보로 직장을 잃은 이후 아직까지도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발휘할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는 “8년여 동안 회유와 협박 속에서도 진실을 밝힌 것은 기술자의 책무이기 때문”이라면서도 “공익제보로 어려워진 형편 탓에 나 대신 고생하는 아내에게는 감사하고 또 미안하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특별기획취재팀=김용출·백소용·이우중·임국정 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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