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들이 살던 주상복합 세운상가의 영욕

박인헤,정순우,김강래 2017. 6. 11.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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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따라 오락가락 행정..오세훈 前시장 "전면 철거" 1조 철거비 감안 안해 실패
박원순 시장은 "보존 재생"..'보존가치' 공론화는 안거쳐

◆ 낡은 도심부터 재생하라 ④ ◆

지난 주말 서울 청계천로 세운교 사거리. 청계천 복원으로 2005년 철거했던 세운전자상가와 청계상가 사이 공중보행교가 다시 건설되고 있다. 새하얀 색의 보행교 너머 올해 준공 50년을 맞은 빛바랜 상가 빌딩이 눈에 들어왔다. 상가 안쪽으로 들어가니 '임대' 표지가 붙은 소규모 상가가 나타났다. 한동안 주인을 찾지 못했는지 굳게 닫힌 가게 셔터문 앞은 박스와 간이의자로 가로막혀 있다.

연예인과 유명 인사들이 살았던 대한민국 최초 주상복합 세운상가군의 현주소는 초라했다.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156달러에 불과했던 1967년, 서울 도심 청계천변에 들어선 연면적 20만㎡ 17층 높이의 주상복합 세운상가는 근대화의 상징이었다. 준공식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참석할 정도로 국가적 관심이 뜨거웠다. 하지만 신세계·롯데백화점과 용산전자상가 등의 등장으로 상권을 빼앗긴 세운상가는 쇠락의 길에 접어들었다.

이후 낙후된 세운상가를 구하기 위해 수많은 정치인이 해결사를 자처하며 등장했지만 세운상가 일대는 50년 전 모습 그대로다. 서울시장들의 치적이자 '전시행정'의 희생양으로 전락한 결과다. 그 과정 속에서 세운상가 일대는 슬럼화의 악순환에 빠져들었다. 세운초록띠공원은 '전시행정'의 상처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상징적인 곳이다. 세운상가군을 전면 철거해 1㎞ 길이의 녹지축과 초고층건물 건립을 공약했던 오세훈 전 시장은 2009년 현대상가를 철거하고 현재의 세운초록띠공원을 조성했다. 현대상가를 시작으로 2015년까지 8개 상가를 철거하는 계획이 나왔지만 얼마 안 가 철거는 돌연 중단됐다. 이해관계자 간 갈등, 사업성에 대한 논란은 사업을 중단시키기에 충분했다. 당시 서울시는 예상 이주보상비만 1조원에 육박한 전면철거 사업을 추진했고,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초고층건물을 짓겠다고 했다. 그러나 수익성 확보의 핵심 고리인 초고층건물 가능 높이는 문화재청이 세계문화유산인 종묘 앞 층수제한을 들고 나오면서 122m에서 62m로 반 토막 났다.

2년간 지지부진한 세월을 보내는 동안 서울시장이 바뀌었다. 박원순 시장은 당선 후 세운상가군 개발계획을 백지화했고, 이로써 2000억원 이상의 상가 철거·보상비를 쏟아부었던 세운상가군 철거 사업은 없던 일이 됐다. 이후 박 시장 체제의 서울시는 오 전 시장과는 정반대의 길을 선택했다. 세운상가를 존치하고 일대를 서울시 1단계 도시재생활성화지역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현 서울시 세운상가 재생사업도 '보행 재생'이라는 '박원순표' 도시 정책에 매몰돼 있다. 시는 마중물 사업 격으로 종묘부터 퇴계로까지 이어지는 세운상가군 공중보행로를 새롭게 단장하는 중이다. 박 시장 핵심 사업인 '서울로 7017'을 중심으로 서울 도심을 '보행 도시'로 만드는 계획의 일환이다. 세운상가 재생사업에 배정된 974억원의 사업비 중 841억원이 보행로 조성에 쓰이고 있다.

다만 세운상가군의 옛 모습을 보존할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공감대 형성이 부족하다. 세운상가군은 1970년대 후반부터 서울시의 동서방향 교통 흐름을 고려하지 않고 남북 종단축을 만든 것에 대한 비판을 받았다. 이는 서울 도시축의 흐름을 단절하고 세운상가 양쪽 블록의 연결성을 막아 일대 활성화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꼽혔다. 전문가와 지역 관계자들의 의견 청취를 넘어서 서울시 전체 차원의 공론화 과정이 필요한 이유다.

공중보행로 보존 필요성도 반대 논리가 만만치 않다. 서울시 도시빛정책자문단·미래유산보존위원회 위원인 권기봉 작가는 저서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에서 "사람들 심리상 3층까지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하는 보도를 굳이 이용할 까닭이 없다"며 "3층 점포의 임대료가 1층이나 2층보다 싸다는 것은 3층 보행자전용로가 이미 실패한 꿈이라는 단적인 증거"라고 지적했다.

[기획취재팀 = 박인혜 팀장 / 정순우 기자 / 김강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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