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곧고 단단한 담양 대나무, 민초의 의기가 서려 있죠”

담양 | 김기범 기자

임의진 목사와 떠나는 문화가 있는 담양길

<b>죽녹원 거닐고</b> 임의진 목사(맨 앞)와 ‘명사 70인의 동행’ 답사단이 지난 3일 전남 담양 죽녹원에서 울창하게 뻗은 대나무 숲 사이를 걷고 있다. 마침 죽순이 올라오기 시작한 때라 죽녹원은 비를 맞은 뒤 빠르게 자라고 있는 죽순으로 가득했다. 담양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죽녹원 거닐고 임의진 목사(맨 앞)와 ‘명사 70인의 동행’ 답사단이 지난 3일 전남 담양 죽녹원에서 울창하게 뻗은 대나무 숲 사이를 걷고 있다. 마침 죽순이 올라오기 시작한 때라 죽녹원은 비를 맞은 뒤 빠르게 자라고 있는 죽순으로 가득했다. 담양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할아버지가 나타날 줄 알았는데 예상 밖이죠?” “의외로 젊으시네요.”

지난 3일 경향신문 ‘명사 70인과의 동행’에 참가한 시민들과 시골목사 임의진씨(49)가 처음 나눈 대화의 일부다. 전남 담양 죽녹원에서 유쾌한 웃음으로 시작된 이날 답사는 임 목사의 입담 덕분에 시종 흐뭇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경향신문에 10년 넘게 ‘임의진의 시골편지’를 연재하고 있는 임 목사는 목사 외에도 시인, 가수, 여행자 등 다양한 모습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날 답사에 온 시민들 중에도 임 목사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답사 참가를 신청했다는 이들이 많았다.

담양의 첫번째 답사지인 죽녹원에서부터 임 목사의 입담은 시작됐다. 아침 7시부터 서울시청과 양재역에서 모여 버스를 타고, 3시간여를 달려서야 겨우 담양에 도착한 터라 지칠 법도 했지만 참가자들은 임 목사의 말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그를 따라 죽녹원을 산책했다. 대나무를 스치는 햇볕이 따사로운 죽녹원에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담양에 대한 소개로 시작됐다.

“담양이라는 지명에 들어있는 볕 양(陽) 자는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을 줍니다. 저는 그런 느낌을 담은 ‘담양스럽다’는 말이 널리 쓰이게 하고 싶어요. 바닷가의 쑥이나 대나무에는 소금기 어린 바람에 대항하기 위한 성분이 포함된다고 하는데 담양은 바다의 소금기에서 딱 벗어난 곳이기도 합니다. 담양이라는 이름은 고려 때 처음 지어졌는데 내년이 꼭 1000년째가 됩니다.”

담양에서 13년째 살고 있는 임 목사의 담양에 대한 첫 소개였다. 그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담양의 풍광은 부드러운 느낌을 담고 있었다.

죽녹원을 걸으면서 임 목사의 설명은 자연스레 대나무에 대한 소개로 이어졌다. “담양 대나무는 곧고 단단하기로 유명해서 예로부터 의병이 일어설 때나 변란이 생겼을 때 죽창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담양의 대나무는 바로 민초들의 의기를 보여주는 나무이기도 한 것이지요. 이런 일이 생겼을 때뿐 아니라 대나무는 예로부터 버릴 것이 없는 나무였습니다. 지금이야 머릿니가 다 사라졌지만 옛날에는 이를 잡으려고 참빗을 많이들 썼는데 대나무 참빗을 많이 썼지요. 담양에는 4일과 9일 장이 서는데 옛날에 윗장은 대나무로 만든 물건들을, 아랫장은 다른 물품을 파는 장이었습니다.”

마침 죽순이 올라오기 시작한 때라 죽녹원은 비를 맞은 뒤 빠르게 자라고 있는 죽순으로 가득했다. ‘비가 온 뒤에 여기저기 솟는 죽순’이라는 뜻의 우후죽순(雨後竹筍)이라는 사자성어가 단순히 비유적인 표현만은 아니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임 목사는 “담양에서는 죽순회도 유명하지요”라고 귀띔했다.

담양읍에 있는 죽녹원은 2003년 5월 조성된 대나무 정원이다. 올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집계한 방문자 수에서 전국 주요 관광지점 46곳 가운데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높은 곳이기도 하다. 매년 80만명이 찾는 죽녹원에는 국내에 자생하는 대나무 7종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날 답사자들의 다음 목적지였던 담빛예술창고, 관방제림, 메타세쿼이아길과 가까워 연계성이 높은 점도 죽녹원의 매력 중 하나다.

죽녹원 산책을 마치고 다음 답사지로 가기 전 근처 식당에서 대통밥 정식을 먹으면서도 임 목사의 진솔하고, 거침없는 입담이 이어졌다. 그는 “저도 목사이고, 저희 할아버지, 아버지도 목사셨지만 요즘 목사들은 ‘목 좋은 데서 사기 치는 사람’이나 다름없어요. 그래서 저와 요즘의 기독교 사이 거리는 불교보다도 멉니다. 저는 요즘 목사들이랑은 5분도 같이 못 있어요. 답답해서 미쳐버리죠. 하하. 그래서 저는 한신선교신학대학원을 나와서 고향 강진에 가 목회를 하면서 ‘민중을 대상으로 삼는 교회’가 아니라 ‘민중이 주체인 교회’를 세웠어요. 지금 담양에 살게 된 것은 친한 스님이 담양에 땅이 있다면서 ‘절이나 하나 짓고 살아라’라고 해서 살게 됐어요.” 그러면서 그는 “관광지 근처 큰 식당에 가서 먹으면 안 돼요. 여행을 가면 현지인들이 먹는 식당에 가야 하죠. 다음에 담양 오시는 분들은 저한테 말씀하시면 현지인들 가는 곳을 알려드릴게요”라며 웃었다.

임 목사의 담양 자랑은 옛이야기 속 효자 이야기로 이어졌다. “담양 사람들은 예로부터 온순하고 온후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효자가 많은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옛날 효자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란 아들이 어느 날 보니 어머니 치마에 늘 물이 묻어있었어요. 이상하게 여긴 아들이 밤에 어디론가 가는 어머니 뒤를 밟아봤더니 어머니가 서당 훈장이랑 요즘 흔히 말하는 ‘썸’을 타고 있었던 거죠. 그걸 본 이 아들이 어머니 가시는 길에 있는 강둑의 풀을 다 베어줬다고 합니다. 그다음부터는 어머니 치마에 물이 안 묻게 됐다는 거죠. 이런 게 진짜 효자 아닙니까? 하하.” 식사를 하면서도 참가자들은 이런 임 목사의 입담에 푹 빠져든 모습이었다.

임 목사는 월드뮤직을 소개하는 데 열정을 바치는 자신의 일면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모든 이가 똑같은 음악만 듣는 것이 안타까워서 북유럽, 남미 음악들을 소개하고 있어요. 음악과 관련된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한달에 일주일 정도는 서울 가로수길에 있는 사무실로 가죠. 시골에서 몸뻬 입은 할머니들이랑 지내다 가로수길에 가면 다른 세상 같아요. 법정 스님이 강원도 사실 때 과속 딱지를 많이 끊으셨다고 하는데 그게 서울이 싫고, 빨리 집에 가고 싶어서였다고 해요. 저도 서울 갈 때는 천천히 가는데 내려올 때는 속도를 내서 빨리 돌아오곤 합니다.”

점심 후 첫 답사지는 미곡창고를 개조해 만든 담빛예술창고였다. 다양한 예술작품이 전시되는 동시에 주민, 관광객에게 휴식을 제공하는 공간에서 임 목사와 참가자들은 다양한 대화를 나눴다. 담빛예술창고에서도 임 목사의 담양 예찬은 이어졌다. 그는 “담양은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주는 곳이에요. 발전을 멈추고 지금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곳이죠.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가 잠시 멈춰서 자신의 영혼이 따라오길 기다렸다고 하던데 그런 여유를 지닌 곳입니다.”

담빛예술창고 뒤편은 담양의 명물 중 하나인 천연기념물 제366호인 관방제림으로 이어져 있다. 용소로부터 발원한 영산강 상류 관방천의 담양 구간 강둑에는 팽나무, 음나무, 은단풍나무, 푸조나무 등이 빽빽하게 심어져 해가 중천에 뜬 대낮에도 나무그늘이 끊김 없이 이어져 있었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나무그늘은 관광객들의 지친 발걸음이 관방제림과 붙어있는 국수거리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멈출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나무그늘 아래서 국수 한그릇을 먹으며 강바람을 맞이하다 보면 한여름 더위도 저만큼 물리칠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국수거리는 장날 오는 사람들에게 말아주던 멸치 국숫집에서 시작된 곳이다.

<b>관방제림서 쉬고</b> <춘향전> 속 이몽룡의 실존 모델로 알려진 사또 성이성이 만든 관방제림.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빽빽하게 심어져 대낮에도 나무그늘이 끊김 없이 이어져 있다. 담양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관방제림서 쉬고 <춘향전> 속 이몽룡의 실존 모델로 알려진 사또 성이성이 만든 관방제림.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빽빽하게 심어져 대낮에도 나무그늘이 끊김 없이 이어져 있다. 담양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관방제림에서 임 목사의 이야기는 4대강과도 이어졌다. 마침 관방제림과 영산강 이야기는 가장 최근에 ‘임의진의 시골편지’로 경향신문 지면에 소개된 내용과도 맞닿아 있었다. “옛사람들은 영산강을 백진강이라 불렀습니다. 예전에는 강이 자주 범람해서 홍수 피해가 컸는데 어느 사또가 지금처럼 나무들을 강둑에 가득 심게 했지요. 관에서 주도했다고 해서 관방제림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입니다. 관이, 나라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면 그 공적이 후대에 영원히 전해지면서 빛나게 되는 것이지요.” 완공된 지 몇 년 지나지도 않아 재자연화를 위해 수문 개방을 시작한 4대강과 관방제림은 관에서 한 일이라는 것만 같을 뿐 그 효용과 가치에는 하늘과 땅 같은 차이가 있다는 얘기였다. 관방제림을 만든 사또인 성이성은 <춘향전> 속 이몽룡의 실존 모델로 알려진 인물이다. 성이성은 1648년 담양에 부임했으며 청백리로도 유명하다.

임 목사와 헤어지기 전 마지막 찾은 답사지는 메타세쿼이아길이었다. 높이 10~20m에 달하는 메타세쿼이아가 담양에서 순창군까지 10㎞가량 이어진 이 길은 죽녹원과 함께 담양을 국내 최고의 관광지로 자리매김하도록 한 명물이다. 임 목사는 “메타세쿼이아길의 나무들을 베어내고 큰 도로를 만들려는 계획을 주민들이 막아낸 것을 계기로 담양에서는 본격적인 생태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어요. 메타세쿼이아는 담양을 생태도시로 각성하게 만든 나무인 것이죠. ‘남송창고’라는 이름의 미곡창고였던 담빛예술창고가 보존되고, 메타세쿼이아길을 지킬 수 있었던 데는 담양에 군유지가 많았던 덕분이기도 해요”라고 말했다. 그는 “사실 메타세쿼이아길은 겨울이 가장 예쁘다”고 귀띔했다. 메타세쿼이아 산책로가 끝나가기 전 답사 참가자들과 임 목사는 나무그늘 아래 둘러앉아 여행과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시인, 목사, 가수, 여행자 중 뭐로 불리는 게 가장 좋으냐”는 한 참가자의 질문에 임 목사는 “자기 이름으로 불리는 게 제일 좋아요”라고 말했다. “임의진이라는 이름도 있지만 저는 ‘떠돌이별’이라고 불리는 걸 좋아합니다. 가까운 이들은 저를 ‘어깨춤’이라고 불러요. 주변의 중·고생들이 저를 보고서 ‘어깨춤, 이리 와보세요’라고 편하게 말하기도 하지요. 하하.” 참가자들에 대한 음악 선물로 그는 목에 걸고 다니던 하모니카로 아일랜드 포크송인 ‘대니보이’를 연주하기도 했다.

사실 임 목사에 대한 참가자들의 궁금증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이 바로 “그의 정체성은 무엇일까”였다. 한 참가자는 “작가, 목사 등 호칭도 궁금했고, 월드뮤직 애청자로서 직접 얘기를 들어보고 싶어서 답사에 참가했어요. 오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이 참 유연한 분이라는 느낌이 들고, 저도 생각이 부드러워지는 것 같네요”라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작가, 글쟁이로서 사는 삶에 자부심이 있어요. 글을 통해 세상에 선한 영향을 미치고 싶습니다”라는 임 목사의 말에 깊은 인상을 받은 듯했다. 이날 답사는 “오늘 정말 반가웠고요, 앞으로 경향신문 ‘시골편지’를 통해서 또 만나뵙겠습니다”라는 글쟁이다운 임 목사의 말로 마무리됐다. 버스전용차로조차 다소 막힐 정도로 도로가 꽉 막힌 날이었지만 답사를 마친 참가자들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지면에서의 만남을 기약할 수 있었다.

[명사 70인과의 동행] (49) “곧고 단단한 담양 대나무, 민초의 의기가 서려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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