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성추행 의혹 인정' 법원, 교회보다 빛났다

지유석 입력 2017. 6. 9.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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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서울고등법원, 전병욱씨 성추행·성희롱 행위 인정

[오마이뉴스 글:지유석, 편집:김도균]

 삼일교회 시무당시 새벽기도회에서 안수기도를 해주던 전병욱 목사.
ⓒ 지유석
교회 법정에서 '단순 부적절한 대화'로 결론 났던 사건이 사회 법정에서는 성추행이라는 판단이 내려졌다. 바로 삼일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던 당시 성추행으로 물의를 일으킨 전병욱씨 이야기다.

전씨는 삼일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다 2010년 성추행 의혹이 불거져 삼일교회를 떠났다. 그러다 2012년 서울 마포구에 홍대새교회를 개척해 목회활동을 재개했고, 이로 인해 성추행 의혹은 재점화됐다. 

전씨의 성추행 의혹은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수준이었다. 여성도를 집무실로 유인해 구강성교를 강요하는가 하면, 주례를 부탁하러 온 다른 여성도의 가슴과 엉덩이를 만지고 성희롱 발언을 했다. 심지어 모 여성도에 대해서는 허벅지와 가슴 등 신체 부위를 수차례 만졌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이에 삼일교회 성도들과 기독교계 개혁단체들은 전씨의 성추행 의혹이 불거진 시점부터 줄곧 전씨의 목사직 면직을 촉구해 왔다. 이에 맞서 전씨는 성추행은 물론 피해자들의 존재를 전면 부인해왔다. 홍대새교회 측도 2016년 1월 성명을 내고 아래와 같이 주장했다.

"삼일교회 당회와 '치유와 공의를 위한 TF팀'은 전병욱 목사에게 당한 '수많은 피해자'가 있다고 주장하며 그 수에 대해선 수백 명이라고 했다가, 수십 명이라고 했다가, 지난번 재판 때 고소장에 15명이라고 기록한 후부터는 쭉 15명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게 누구이며 어떤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지, 아니 그 15명이란 수가 어떤 근거로 정리된 수인지조차 그 구체적인 내용은 하나도 밝히지 않았습니다. 오직 언론에 떠들 이야기가 아니며 오직 징계권이 있는 노회에게만 이야기하겠다는 이야기만 했습니다."

전씨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합동) 교단의 조직상 목사직 면직에 대한 최종권한은 관할노회인 평양노회가 갖고 있었다. 평양노회는 2016년 1월 전씨에 대해 공직 정지 2년, 설교 2개월 정지의 처분을 내렸다. 2009년 11월 삼일교회 B관 5층 집무실에서 전OO와 '부적절한 대화와 처신을 한 것이 인정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세상 법정은 다른 판단을 내렸다. 서울고등법원 제14민사부(재판장 허부열 판사)는 지난 1일 삼일교회가 전씨를 상대로 낸 전별금 반환청구 소송에서 "전씨가 복수의 피해자들에게 성추행 및 성희롱을 가한 행위가 인정되고, 그중 전씨의 피해자들에 대한 추행 행위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0조 1항의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또는 기습추행으로서 형법 제298조의 강제추행죄에 해당하는 행위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에 재판부는 전씨로 하여금 삼일교회에 1억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목사로서 성실의무 위반한 전병욱씨

재판부가 인정한 전씨의 성추행 사례는 모두 다섯 건이다. 시기는 2004년에서 삼일교회를 떠나기 직전인 2010년에 걸쳐 있다. 구체적인 내용은 공식적인 지면에 옮기기 민망한 수준이어서 생략하고자 한다. 

재판부는 전씨의 성추행 행각을 적시하면서 목회자의 지위와 역할을 분명히 일깨웠다. 판결문 중 일부를 인용해 본다. 

"담임목사는 교회의 기도, 설교, 심방, 상담, 전도, 인도 등 교회의 목회 전반을 책임지고 있어 교회 소속 신도들의 신앙생활에 중심이 되는 인물로서, 신도들과 담임목사는 존경과 권위를 바탕으로 한 특수한 인적 신뢰 관계를 형성하고 있고, 이러한 담임목사의 역량과 자질에 따라 당해 교회의 성쇠가 크게 좌우된다고 할 것인 바, 수임인인 담임목사는 위임인인 교회에 대하여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로서 신도들과의 신뢰 관계를 불법적인 언행 등으로 훼손시키지 아니할 의무를 부담하고 있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원고 교회(삼일교회 - 글쓴이)의 담임목사이던 피고(전병욱씨 - 글쓴이)가 그 지위를 이용하여 자신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따르던 원고 교회의 여성 신도들을 상대로 담임목사 집무실 등에서 수년간 성추행 및 성희롱 행위를 한 것은 위와 같은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서..."

재판부는 삼일교회와 전씨 사이에 첨예한 쟁점인 '2년간 목회금지 / 성중독 치료'에 대해서는 살필 이유가 없다며 기각했다. 그러나 재판부가 전씨의 성추행 자행 사실을 인정하고, 그에 대해 배상책임을 지운 점은 주목할 만하다. 특히 평양노회의 재판 결과와 비교하면 재판부의 판단은 더욱 빛난다. 

평양노회, 전씨 봐주기 재판했나?

평양노회는 전씨에 대해 공직 정지 2년, 설교 2개월 중지 처분을 내리면서 이를 교단신문인 <기독신문>에 실었다. 이때 평양노회는 "전 목사의 '여성도 추행건'의 진상은 그간 언론에 의해 부풀려져 알려진 것과는 상당 부분 다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앞서 언급했듯 전씨는 성추행 행위는 물론 복수의 피해자의 존재를 완강하게 부인해 왔다. 따라서 평양노회의 판단은 사실상 전씨의 손을 들어준 결과인 셈이었다. 사실 이 같은 결과는 이미 예고돼 있었다. 평양노회가 전씨의 심리를 위한 재판국을 꾸리기에 전인 2015년 11월 당시 노회장이었던 김진하 목사는 홍대새교회를 찾아 이렇게 말했다.

"우리 한국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홍대새교회를 공격하고 전병욱 목사를 공격하지만, 우리 평양노회는 보호할 것입니다. 지킬 것입니다. 이 홍대새교회가 앞으로 한국의 청년문화를 새로 끌어가는 새로운 역사의 페이지를 써가는 귀한 교회가 되도록 힘껏 밀어줄 것입니다."

김 목사는 전씨가 무죄임을 확신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 목사는 2016년 2월 CBS와 접촉에서 아래와 같은 입장을 밝혔다. 

"전혀 피해를 입었다고 하는 피고인들을 하나도 본 적도 없고, 그냥 정황만 갖고 판단한 거잖아요. 이 모든 게, 그러니까 사회법 같으면 무죄입니다. 무죄."

이 같은 확신이 무색하게 법원은 전씨에게 성추행에 대한 배상책임을 지웠다.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원리 중 하나는 '제 식구 감싸기'다. 이 같은 원리는 일반 사회는 물론 교회 조직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한다. 전씨의 성추행이 불거진 이후 지금까지 목회자의 성범죄는 끊이지 않았다. 이토록 목회자의 성범죄가 빈발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라고 본다. 먼저 피해 여성도들이 목사를 '영적 아버지'로 여기는 데다, 만에 하나 성범죄를 외부에 알리면 오히려 피해자에게 2차 가해가 가해진다는 점이다. 

여기에 한 가지 이유가 더해진다. 바로 '제 식구 감싸기' 관행으로 인해 교회나 교단 안에서 제대로 된 징계가 내려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평양노회가 전병욱씨의 성범죄를 '부적절한 대화' 수준으로 축소하고 공직 정지 2년, 설교 정지 2개월이란 솜방망이 징계로 매듭지으려 한 건 이 같은 관행에 따른 '예측 가능한' 결과였다. 

기자는 전씨에 대한 평양노회 재판국의 판단이 내려진 직후인 2016년 2월 4일, 본 지면을 통해 아래와 같이 적은 바 있었다.

"적어도 평양노회 재판국이 보여준 일련의 행태는, 성도는 물론 일반 사회로 하여금 교회 안에서는 자정을 기대할 수 없음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전 목사에게 성추행 피해를 당했다는 여성도의 심경고백을 녹취록을 통해 들었었습니다. 피해자는 전 목사가 진심으로 사과하고 회개하기만을 바랐습니다. 반면 전 목사는 뉘우침보다 이 사실이 외부로 알려졌을 때 미칠 파장에만 전전긍긍하고 있었습니다. 재판국은 피해자의 간절한 바람을 무참히 외면했습니다.  

불행하지만, 만에 하나 교회 안에서 목회자나 다른 임원들에게 성추행 피해를 당했다면 목사들의 회개와 뉘우침을 바라선 안 될 것입니다. 서울대 수학과 강아무개 교수의 제자 성추행 사건처럼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어 사회 법정에 피해를 알리고, 외부의 도움을 호소하고 가해자 처벌을 요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피해자의 억울함을 푸는, 보다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봅니다."

교회 안에서 자정을 기대할 수 없고, 목사들의 회개와 뉘우침 역시 기대할 수 없어 결국 사회 법정에 올바른 판단을 구해야 하는 현실은 1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 법원의 전병욱씨 손해배상 판결은 '정의'를 잃어버리고, 오로지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한 교회에 울린 경종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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