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외교학전공 졸업생 전원 A학점.. 학점 퍼주는 서울대

김경필 기자 2017. 6. 9.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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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大 '학점 인플레' 심각.. 작년 서울대 졸업생 64% 90점 이상]
- 교수는 '학점 제한' 안 지키고
"학생들 취업난 허덕이는데.. 학점 짜게 주면 비난 듣기 십상"
- 학생은 'A' 따려 5과목 재수강도
인문계선 로스쿨 진학경쟁 치열 "스펙 위한 스펙 쌓기 악순환"

지난 2월 서울대 정치외교학부를 졸업한 박수정(27·가명)씨는 지난해에만 다섯 과목을 재(再)수강했다. 첫 수강 때 받은 성적이 'A'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이미 한 번 들었던 수업 내용을 한 학기 동안 다시 듣고 시험을 쳐 다섯 과목에서 모두 'A-' 또는 'A0'를 받았다. 그렇게 박씨는 'B+'에 약간 못 미치던 평균 성적을 'A0'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박씨는 "학교를 한 학기 더 다닌 셈이지만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에 지원이라도 해보려면 평균 학점이 4.0 이상(전 과목 A0 이상)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며 "그렇게 해도 우리 학과에서는 중간 정도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서울대를 비롯한 명문대를 중심으로 '학점 인플레이션' 현상이 극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8일 본지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운영하는 대학 정보 공시 사이트 '대학알리미'에 공시된 2016학년도 졸업자 성적 분포 자료를 분석한 결과, 서울대 전체 졸업생의 64.2%가 100점 만점에 90점 이상을 기록했다. 포스텍과 카이스트, 이화여대, 연세대, 고려대 등 명문대들에서도 졸업생의 절반 이상이 평균 학점 90점 이상이었다. 대학마다 학점 부여 방식에 차이가 있으나, 90점 이상은 대체로 'A학점'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난해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외교학전공을 졸업한 학생 31명의 평균 학점은 전원이 90점 이상이었다. 이들의 졸업 성적 평균은 94.37점에 달했다. 입학해서 졸업할 때까지 최소 44개 과목을 수강해야 하는 이 전공 학생들이 모든 과목에서 'A-'(93점)에서 'A0'(96점) 사이의 학점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같은 학부 정치학전공을 졸업한 학생 47명 중 44명(93.6%)도 졸업 성적이 90점 이상이었다. 서울대 지리·윤리교육·지리교육·경제·중어중문·영어영문학과에서도 90% 이상이 90점이 넘는 성적을 받고 졸업했다.

졸업생들의 학점이 높은 것은 우선 느슨한 학사 관리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대는 교수들에게 각 과목에서 A학점을 받는 학생 비율을 20~30%로 할 것을 권장하고 있지만, 의무 사항은 아니다. 교양과목은 A·B학점을 받는 학생 수가 전체 수강 인원의 70%를 넘길 수 없게 돼 있지만, 전공과목에는 이런 제한마저도 없다. 재수강도 몇 번을 하건 제한이 없고, 재수강 시 받을 수 있는 최대 성적도 'A0'로 높다. 그러다 보니 성적이 낮게 나온 과목은 반복 수강을 통해 학점을 끌어올리는 것이 가능하다. 연세대·고려대 등도 재수강 시 최고 'A0'학점을 받을 수 있다. 반면 중앙대·성균관대 등 학사 관리가 엄격한 대학은 재수강 시 최대 학점을 'B+'로 제한한다. 서울대 인문대학 한 교수는 "학생들이 취업난에 허덕이는데 학점을 짜게 주면 '왜 내 앞길을 막느냐'는 비난을 듣기 십상"이라며 "학점 부여를 엄격하게 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전공별로 보면 인문 계열 졸업생들의 학점이 높다. 서울대뿐 아니라 연세대, 한양대 등 대부분 대학에서 문과 계열 학과가 '학점 인플레'를 주도하고 있다. 명문대 인문 계열 학생들이 학점에 목을 매는 이유는 이공계와 비교할 때 취업이 어려워 더 좋은 학점이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뿐 아니라 '로스쿨 진학'도 인문 계열 학점 인플레의 주요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서울 소재 로스쿨에 입학하려면 평균 졸업 성적이 'A0'는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상식처럼 퍼져 있다. 서울 사립대 한 교수는 "상위권 대학일수록 문과 계열 학과에서 로스쿨 입학을 노리는 학생들이 많은데, 로스쿨 입학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학점이다 보니 너도나도 재수강 등으로 좋은 학점을 따려고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서울 사립대 교수는 "취업과 로스쿨 진학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한 학생의 학점이 높으면 다른 학생도 뒤처지지 않기 위해 더 높은 학점을 받으려 한다"며 "학생들이 '스펙을 위한 스펙 쌓기'라는 악순환에 빠져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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