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도종환과 바잉턴

고정애 2017. 6. 9.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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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 라이팅에디터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지명 이후 불거진 한국 역사학계의 비판, 도 후보자의 반발을 보면서 한 인물이 떠올랐다.

마크 바잉턴 하버드대 교수다. 2013년 『한국 고대사에서의 한(漢) 군현』를 출간했다가 국회의원들의 거센 압박 탓에 연구 지원이 끊겼다. 2006년에 시작된 ‘한국 고대사 프로젝트(EKP)’란 하버드대 연구 진흥 프로그램도 지난해 말로 종료됐다.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주장을 폈다는 게 이유다. 그게 학계 통설인데도 그랬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강정현 기자
하버드대 마크 E 바잉턴 박사.
바잉턴 교수에게 현지시간으로 7일 오전 5시 e메일을 보냈는데 5시간여 만에 장문의 답신을 했다. 신속함에 놀랐고 통렬함에 더 놀랐다.

Q : 중국 고대사로 전공을 바꿨다고 들었다.

A : “중국 동북 지역에 대한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이 지역의 역사·고고학 연구를 위한 독립적 기구도 설립했다. 아마 부여·고구려·발해 등에 대한 내 관심을 이어 갈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고대사 연구를 진척시킬 수 없었던 게 못내 아쉽다. 한국에서의 정치상황 탓에 불가능해졌다.”

Q : 도 후보자의 민족주의적 사관이 논란이다.

A : “국회 관련 특위 발언록을 보면 위원들이 학자들을 불러다 겁박하곤 했다. 중세 유럽의 종교재판을 떠올리게 할 법한 행위였다. 도 후보자가 여기에 참여했기에, 또 유사역사학을 지지했기에 그를 문체부 장관으로 발탁한 건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본다.” 유사역사학은 이를테면 고대 우리의 영토가 중국 땅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위대했다는 식의 주장을 편다. 도 후보자 자신은 8일 관련성을 부인했다.

Q : 비슷한 우려를 표명한 학계를 향해 이덕일씨 등이 ‘식민사관 카르텔이 나섰다’고 반박했다.

A : “유사역사학 옹호자들이 적을 규정하는 방식이다. 나 자신도 그런 모함을 받았다. 난 한국인들이 전문가들의 견해를, 유사역사학 장사치들에 의해 전파된 ‘야바위’보다 우선하길 기대한다.” 지원이 끊긴 서구학자의 편견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 사학계에서 제기되는 우려이기도 해서다. 정치가 역사에 개입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이전 정부에서 충분히 봤다. 근·현대사에 이어 고대사까지 정치적 격전지로 만들 순 없다. 도 후보자는 물론 그를 발탁하고 가야사 복원을 지시한 문재인 대통령이 유념할 일이다.

바잉턴 교수는 “3년간 한국에 안 갔고 장차 갈 계획도 없다”고 했다. 그를 한국에서 보게 될 날이 오길 바란다.

다음은 바잉턴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

Q : EKP 프로젝트는 중단됐나.

A : “그렇다. 지금은 한일 관계를 다룬 마지막 출판물을 마무리하는 중이다. 올해 말 출간된다. 미 측 지원을 받았다. EKP는 끝났고 어떤 식으로든 계속되진 않을 게다.”

Q : 중국고대사로 전공을 바꿨다고 들었다.

A : “하버드대학 내 인류학(고고학)과에서 중국 동북 지역에 대한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이 지역의 역사·고고학 연구를 위해 독립적인 기관도 설립했다. EKP와 유사한 프로그램이 되길 기대하고 있다. 차이라면 대상이 한국이 아닌 중국이란 점이다. 아마 부여·고구려·발해 등에 대한 내 관심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고대사 연구를 더 진척시킬 수 없었던 게 못내 아쉽다. 한국에서의 정치 상황으로 인해 불가능해졌다.”

Q : 케임브리지대의 『한국사 전집』중 고대사 부분을 집필 중이라고 들었다.

A : “한반도에 인류가 정착하고부터 신라·발해가 멸망한 10세기까지를 다루는 1권인데 각장의 집필자들이 정해졌다. 아직도 예비 단계라고 할 수 있다.”

Q : 도 후보자의 민족주의적 고대사관 여부가 논란이다.

A : “도 후보자가 EKP를 비판, 지원을 중단하도록 한 의원 중 한 명이어서 내 입장이 편향됐을 순 있지만 분명 그에 대한 내 나름의 생각이 있다. 우선 그는 이종찬·이덕일씨와 같은 국수주의적 유사역사학(ultra-nationalistic pseudohistory) 지지자들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나는 유사역사학이 사회를 감염시키는 질병이라고 생각한다. 비합리성·외국인혐오증·종족중심주의·공포심 조장에 기반, 사회 내에서 적을 규정하고 암시와 협박, 인신공격, 위증을 통해 공격한다. 학자가 아니다. 대개의 훈련된 학자라면 의당 지니는 합리적 접근법이나 방법론을 사용하지 않는다. 유사역사학 옹호론자들은 일종의 음모론자들과 유사하다. 사회마다 그런 존재들이 있긴 하다. 대부분 성가시긴 해도 위해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이들이 정부 지원을 받는다면 민주주의 사회를 위협하는 진정한 위험이 된다. 난 많은 한국인들이 새 정부에 기대를 걸고 있다는 걸 안다. 도 후보자에게도 어떤 자질이 있을 게다. 하지만 유사역사학에 대한 그의 지지는 분명 불안 요인이다. 국회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위의 발언록을 보면 특위 위원들이 학자들을 불러다 겁박하곤 했다. 중세유럽의 종교재판을 떠올리게 할 법한 행위였다. 자유사회에선 있어선 안 될 일이다. 그가 여기에 참여했기에, 또 유사역사학을 지지했기에 그를 문화부 장관으로 발탁한 건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본다. 박근혜 정부의 과도함과 차별화하려는 정부 아닌가.”

Q : 역사학계가 도 후보자 지명에 대해 우려하자 이덕일씨 등이 “식민사관 카르텔이 나섰다”고 반격했다.

A : “유사역사학 옹호자들이 적을 규정하는 방식이다. 사실 그런 카르텔은 없다. 그럼에도 이덕일씨 등은 자신들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과 생각에 ‘식민사관’‘동북공정’과 같은 레이블을 붙이곤 한다. 그렇다는 ‘사실’을 제시할 필요도 없다. 대부분 추종자들이 주장의 합리성보단 레토릭이 주는 감정적 충격에 영향 받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동북공정을 지지한다고 말하면 비록 그게 사실이 아니어도 다수가 적으로, 또 비난의 대상으로 여긴다. 애국심이 없다고 하는 것과 유사한 결과다. 때때로 그럴 만한 일이 있을 순 있다. 하지만 대부분 자기 의제가 있는 사람들이 악용하고 있다고 믿는다. 나 자신이 동북공정·식민사관을 촉진한다는 모함을 받았다. 『The Han Commanderies in Early Korean History(한국고대사에서의 한(漢)군현)』을 통해 낙랑군이 평양에 있다고 주장했다는 게 이유였다. 그건 전 세계 학자들 사이의 통설이다. 유일하게 북한, 그리고 남한의 유사역사학자들과 그의 추종자들만 달리 생각한다. 북한 학자라면 교시니까 선택권이랄 게 없다. 남한에선 유사역사학이 민족주의 감정이나 사익을 위해 잘못된 견해를 강요하고 있다.”

Q : 이와 관련, 한국 사회에 주는 조언이 있다면.

A : “지난 3년 간 한국을 방문하지 않았고 장차 방문할 계획도 없다. 그럼에도 한국에 여전히 관심이 있고 한국에 있는 친구와 동료들을 위해 상황이 개선되길 바란다. 유일한 조언이 있다면 ‘위대한 상고사’(※고대 우리 민족이 중국 땅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위대했다는 식의 주장)를 만들려는 명백한 욕구에 대한 것이다. 중국이나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응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저 기분 좋게 하려고, 비록 세계적으로 지지받을 수 없는 견해라도 믿겠다면 그럴 수 있다. 훈련 받은 학자의 의견 대신 환상을 택할 수도 있다. 그럴 권리는 있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을 받아 유사역사학 견해를 강제한다면 민주성을 해치는 일이다. 도 후보자를 포함한 국회의원들은 EKP를 종료시켜 장차 서구 학자들 사이에서 ‘낙랑이 평양에 있었다’는 사실이 퍼져나가는 걸 막았다고 여길지 모르겠다. 그러나 서구 학자들 사이에서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EKP를 끝장낸 건 그저 낙랑군이 설치되기 전에도 혹은 폐지 이후에도 거기에 사람들이 살았다는 걸 입증하기 위해 분투했던 조직을 죽인 것에 불과했다. 낙랑군 시기는 한국사로 여겨진다. 『The Han Commanderies in Early Korean History(한국 고대사에서의 한(漢)군현)』이라고 명명한 이유다. 이 책을 읽는 사람에겐 누구나 명확한 사실이다. 유사 역사학 지지자들도 책을 읽었다면 자신들이 제기한 의혹과는 다른 내용이 담겼다는 걸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에겐 내 책이 말하는 바는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위대한 상고사’에 대한 정부 지원을 얻는 데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결국 성공했는데 대중과 언론, 그리고 의원들이 이네들의 감정적 언사와 공포 조장에 동요됐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라야 한다. 난 한국인들이 전문가들의 견해를, 유사역사학 장사치들에 의해 전파된 야바위보다 우선하길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은 얘기는 유사역사학 옹호자들이나 정부 내 지지자들의 움직임을 한국 밖에서도 주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구 학자들에겐 너무나 엄연한 현실이다. 한국의 국제적 명성에 썩 좋지 않은 조짐이다. 이미 심각한 손상이 가해졌다고 본다. 3년 전 유사역사학의 조류가 덮치기에 앞서 한국이 누렸던 신뢰도를 회복하기 위해 새 정부가 대책을 강구하길 바란다.” 고정애 라이팅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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