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플러스] 소외당한 가야史.. 연구·복원 갈 길 멀다

권구성 입력 2017. 6. 8.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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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 '복원' 지시 계기 재조명 / 삼국에 비해 기록 부족 조명 못받아 / 잘못된 '임나일본부설'로 더욱 소외 / 90년대 호남 동부서도 고분군 발굴 / 경상도 넘어까지 영향력 확대 추정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일 고대 가야사 연구와 복원을 지시하면서, 가야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학계에서는 이번을 계기로 가야사 연구가 활성화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가야사가 정치적으로 활용되거나, 속도전이 돼서는 안 된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국립 가야문화재연구소는 2014년부터 교동 고분군의 발굴조사를 진행 중이다. 앞서 교동 고분군에서는 봉분 직경 19m에 이르는 중대형의 앞트기식 돌방무덤(橫口式石室墳) 1기와 조선시대 건물지 등이 확인된 바 있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제공
◆‘임나일본부설’, ‘문헌부족’… 소외당한 가야사 재조명되나

가야는 기원 전후부터 562년까지 낙동강 유역을 중심으로 명맥을 이어온 고대국가다. 경남 김해에 있었던 금관가야를 중심으로 함안·고성, 경북 고령·성주·상주에 6개의 소국이 있었다.

가야가 고구려와 백제, 신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명받지 못한 이유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가야에 대한 기록이 매우 부족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가야사 연구를 대표하는 김태식(61) 홍익대 교수는 “그동안 가야사가 신라사에 밀려 소외받아 온 것이 사실”이라며 “학계에서는 고대사를 삼국시대라고 말하지만, 삼국시대는 가야가 멸망한 뒤부터 약 100년간만 존재했다”고 말했다.

역사적으로 가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시기는 임진왜란 이후다. 조선 중기 문신인 한백겸이 역사지리서인 ‘동국지리지’에서 가야사를 복원하고자 했고, 정약용 같은 실학자들도 가야사를 연구했다. 

가야읍에서 2.5㎞ 떨어진 조남산 정상부에 축조된 함안 성산산성은 고대 아라가야의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해 있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제공
그러나 19세기 중반부터 일본이 고대에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이 유입되면서, 가야가 일본의 속국이었다는 인식이 퍼졌다. 김 교수는 “임나일본부설은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간접 통치했다는 대표적인 식민사관”이라며 “잘못된 정보가 퍼지면서 가야사가 더 소외받게 됐다”고 지적했다.

가야사 연구가 전환점을 맞은 것은 1970년대 후반의 일이다. 1977년 경북 고령 44호, 45호 고분에서 가야시대의 유물이 대규모로 발굴되면서 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90년대 들어서는 호남 동부 지역이 가야의 영토였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전까지는 경상도 지역이 가야의 영토라는 통념이 지배적이었다. 김 교수는 전남 여수와 순천, 광양 일대가 가야의 영토라고 봤고, 2006년 순천에서 가야 고분군이 발굴돼 설득력을 얻었다. 최근에는 전북 남원, 장수, 진안, 임실 고분군도 가야의 것으로 확인됐다.

◆문헌기록·전문인력 부족한 가야사…연구 숙제 산적

현재 가야사 전문 연구기관은 국립 가야문화재연구소, 국립 김해박물관, 김해시가 설립한 대성동고분군박물관 등 크게 3곳이다.

문화재청 산하의 국립 가야문화재연구소는 금관가야의 왕궁지로 추정되는 경남 김해 봉황동 유적과 창녕 교동·송현동 고분군에서 발굴조사를 진행 중이다. 김삼기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장은 “가야는 백제나 신라에 비해 문헌기록이 단편적”이라며 “문헌에 의존하는 연구에는 한계가 있어, 주로 발굴조사를 진행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가야사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으면서 연구를 진행하는 전문인력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에는 소장을 포함해 정규직인 학예연구직이 5명에 불과하다. 소장과 실장, 연구사 3명이 가야문화 권역을 모두 담당하는 것이다. 김 소장은 “인력이 부족해 가야권에 산재한 고분을 발굴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학계에서는 그동안 관심받지 못했던 가야사 연구에 대해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섣부른 복원이나 발굴이 유적의 의미를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주보돈 경북대 사학과 교수는 “고대사가 정치논리에 휘말리면 객관성을 잃을 수 있다”며 “연구 방향에 대해서는 연구자들의 목소리가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학이 주축이 되어 가야사에 대한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도 “정치적 논리나 지역적 요구에 쫓기다 보면 자칫 가야사가 왜곡될 수 있다”면서 “학문에 입각한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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