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숙부에게 복수하는 '태아 햄릿'

2017. 6. 8.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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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넛셸> 은 <속죄> <칠드런 액트> 의 영국 작가 이언 매큐언(사진)이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 을 창의적으로 다시 쓴 소설이다.

호두껍데기를 뜻하는 제목 '넛셸'은 <햄릿> 2막2장에 나오는 햄릿의 대사 "나는 호두껍데기 속에 갇혀서도 나 자신을 무한한 공간의 왕으로 여길 수 있네"에서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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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넛셸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문학동네·1만3500원

<넛셸>은 <속죄> <칠드런 액트>의 영국 작가 이언 매큐언(사진)이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을 창의적으로 다시 쓴 소설이다. 호두껍데기를 뜻하는 제목 ‘넛셸’은 <햄릿> 2막2장에 나오는 햄릿의 대사 “나는 호두껍데기 속에 갇혀서도 나 자신을 무한한 공간의 왕으로 여길 수 있네”에서 따왔다. 이는 또한 아직 태아 상태인 주인공이 갇힌 어머니의 뱃속에 대한 은유로 읽을 수도 있겠다.

주인공의 어머니 트루디가 시동생인 클로드와 불륜을 저지르고 내처 그와 공모해 남편 존을 죽이려 한다는 설정은 <햄릿>과 동일하다. 트루디과 클로드라는 이름부터가 셰익스피어 희곡 속 거트루드와 클로디어스에 대응한다. 어머니와 숙부가 아버지를 살해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실행에 옮기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복수를 꿈꾸는 주인공 태아의 우유부단한(?) 성격 또한 햄릿과 포개진다.

이언 매큐언

‘죽느냐 사느냐’ 하는, <햄릿>의 가장 유명한 고민이 <넛셸>의 주인공인 태아의 몫으로 고스란히 옮겨 온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주인공은 어머니의 뱃가죽에 귀를 붙이고 바깥 세계의 소리를 수신하고 해독한다. 진지한 소설의 주인공이 되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의 지능과 판단력을 지닌 그는 아버지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자책과 절망감 때문에 탯줄을 목에 감고 숨을 끊을 궁리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죽느냐 사느냐’ 하는 고민에 대한 이 소설의 진짜 답은 마지막 장면에 가서야 제출된다. 예정일을 두 주 앞둔 시점에서 주인공이 “이제 그만. 세상에 합류할 때가 되었다. 종말을 끝낼 때. 시작할 때”라 판단하고 바깥세상으로 나가기 위한 행동에 나서며 그것이 곧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가 된다는 설정은 태아 햄릿의 ‘불가능한 임무’를 가능하게 하는 절묘한 착상이다.

죽은 아버지가 유령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장면은 원작 <햄릿>에서는 도입부에 나오는 반면 <넛셸>에서는 거의 끄트머리에 놓인다. 그러나 이것은 <넛셸>의 주인공이 ‘종말’ 상태에서 탄생이라는 ‘시작’을 향하여 반대 방향의 움직임을 보인다는 사실과는 오히려 잘 어울리는 배치로 보이기도 한다. 바깥세상의 소리를 수신하지도 못하고, 덩치도 더 작아 공간의 여유도 있었던 불과 몇달 전을 가리켜 “태평한 어린 시절이었다”고 회상한다든가, 만삭인 트루디와 사랑을 나누는 클로드를 겨냥해 “아버지의 라이벌의 남근이 코앞에 있는 경험을 누구나 하는 건 아니다”라며 너스레를 떠는 데에서는 매큐언 특유의 유머를 만날 수도 있다.

최재봉 기자, 사진 문학동네 제공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주주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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