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취재] "어중간한 대학 갈 바엔.." 軍간부시험에 부는 '여풍'

이창수 2017. 6. 8. 19:2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군인 꿈꾸는 여성들 급증 / 입시학원 수강생 절반 20대 여성 / 여군 2085명서 18년새 1만명 넘어 / 2017년 육사 여생도가 졸업순위 1∼3등
#1. 부천에 사는 문가현(21·여)씨는 요즘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조만간 ‘입대’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 그는 지금 육군부사관 최종합격자 발표날(9일)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지난해부터 부사관시험 학원에 다니며 시험공부는 물론 체력훈련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취업이나 준비하라”, “여자는 힘들다”며 만류하셨던 부모님도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원비를 내는 문씨의 열정에 이제는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문씨는 “고교 직업탐방 시간에 여군 선배를 봤던 게 계기”라며 “씩씩한 군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2. 최현지(19)양도 오는 9월 예정된 육군부사관 시험을 위해 매일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현직 육군부사관인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군복을 입고 출근하시는 아버지를 보면서 최양도 자연스레 군을 동경하게 됐다고 한다. 학창시절 장래희망은 두 말할 것도 없이 항상 ‘군인’이었다. 대학 진학은 애초부터 생각치 않았다는 최양은 “어중간한 대학에 진학하는 것보다 훌륭한 군간부가 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며 “빨리 군복을 입고 싶다”며 밝게 웃었다.
7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군간부시험 학원 여성 수강생들이 체련단련을 하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제원 기자
이들처럼 최근 군(軍)간부를 목표로 시험을 준비하는 젊은 여성들이 부쩍 늘고 있다.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여군 병력이 1만명을 넘어서고, 최근 피우진 예비역 중령이 그동안 군단장급 예비역 장성이 맡았던 국가보훈처장을 맡는 등 군 안팎에서 부는 ‘여풍’이 심상치 않다.

8일 학원가에 따르면 장교·부사관 등 군간부입시학원 오프라인 수강생의 60∼70%가 20대 여성이라고 한다. 영등포구에 있는 한 학원 관계자는 “전체 수강생 50여명 중 35명이 여성”이라며 “지난해부터 여군에 도전하는 이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년 전 1∼2군데에 불과했던 관련 학원도 20여곳 이상 생겨났다고 한다.

대학입시반처럼 ‘여군 준비반’을 꾸리는 고등학교도 있다. 지난달 31일 서울 정화여상은 서울지역에서 처음으로 여군부사관 준비반 ‘J-Leaders’를 만들어 학생들을 모집했다. 학교 관계자는 “30여명의 학생이 신청해 인·적성, 출결, 자기소개서, 면접 등 심사를 거쳐 1·2학년 14명의 학생을 최종 선발했다”며 “인기가 많았다”고 귀띔했다.

오는 9일 예정된 육군부사관시험 최종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고 있는 문가현씨.
◆‘역대급’ 취업절벽서 직업적 안정감 두드러져

사실 이런 인기는 군인이라는 직업의 안정성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청년실업이 심각하지만, 부사관 등 군간부가 되면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도 안정감 있는 생활을 할 수 있다. 특수성이 있지만 다른 공무원시험에 비해 비교적 경쟁률이 낮아 합격이 크게 어렵지 않다는 점도 매력이다.

현역 부사관으로 근무 중인 A(21·여)씨는 “급여가 일반 기업에 비해 조금 적을 수도 있지만 굉장히 안정적이다”며 “오래 근무하면 군인연금 혜택도 볼 수 있어 장기복무를 지원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어 “바깥과 달리 돈 쓸 곳도 별로 없어서 월급 대부분 저축하고 있는데 나중에 요긴하게 쓰일 것 같다”고 덧붙였다.

군간부시험과 관련해 오프라인을 비롯해 온라인 강의가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은 한 군간부시험 학원 사이트 수강생 모집 광고.
여군부사관을 주제로 한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군대를 소재로 한 예능프로그램이 등장해 꾸준히 인기를 끄는 등 군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진 것과 군 내부에서 최근 인권을 크게 강조하는 분위기 등도 ‘여풍’에 한몫하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군대가 갖는 엄격한 이미지는 여전하겠지만 (여군 지원자가 늘어나는 것은) 과거와 달리 인권을 강조하고 악습을 없애는 등 변화한 분위기 덕분으로 보인다”며 “여성들이 의무복무를 하고 있는 주변 또래 남성들로부터 정보를 많이 접할 수 있단 점도 이유 중 하나일 것”이라고 말했다.

군대 내 여군의 위상이 많이 향상되었다는 점도 군대 내 여풍을 견인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육군사관학교의 경우 올해 개교 이래 처음으로 여생도가 졸업순위 1∼3등을 ‘싹쓸이’했다. 1999년 2085명에 불과했던 여군은 올해 1만1000여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여군 비율 늘려서 위계문화 벗어나야”

여군 지원자가 늘어나면서 이참에 여군을 더 늘리자는 주장도 나온다. 전체 병력의 5.6%에 불과한 여군 비율을 적어도 15%까지는 올려야한다는 것이다. 중령 이하 예비역 여군들로 구성된 ‘젊은 여군 포럼’은 지난 2월 “인구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군의 병력 부족과 군 복무기간 단축 요구에 대비해야한다”며 “위계 문화를 벗어나 비폭력적 병영 문화 확산을 위해 여군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포럼 관계자는 “2020년까지 여군 간부 비율 7%로 올리겠다는 국방부 안에서 더 나아가 15%(2만5000여명)으로 상향조정해야한다”며 “장기복무 선발시 남녀 간 장교는 10%P, 부사관은 48%P가량 차이가 나는데, 인사평가와 진급에 있어 공정한 기회가 주어져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AP부사관장교학원 김기호 원장은 “이같은 추세라면 여군은 계속해 늘어날 것”이라며 “군간부시험을 준비하기 전에 군대와 군간부에 대한 정보들을 꼼꼼히 살펴보고 본인의 적성과 맞을 지 고민해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설령 장기복무를 하지 않더라도 20대 어린 나이서부터 사람을 다루는 용인술과 리더십 등을 배울 수 있다. 한 번쯤 도전해볼 만한 직업”이라고 덧붙였다.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사진=이제원 기자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