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인사태풍.. '우병우 라인' 날아갔다

지호일 이경원 기자 2017. 6. 8.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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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 '황제소환' 논란 부른 윤갑근 대구고검장 등 4명 좌천성 인사

문재인정부의 인사태풍이 검찰에 상륙했다. 법무부는 8일 검찰 고위직에 대한 문책성 인사를 단행했다. ‘돈봉투 만찬 사건’ 감찰 결과 발표 하루 만이다. 이명박·박근혜정부 시절 논란을 빚은 수사의 책임을 묻는 동시에 검찰 내 이른바 ‘우병우 사단’을 솎아내는 성격이 짙다. 청와대가 주도하는 강제적 검찰 인적 쇄신이 본격화된 것으로 해석된다.

법무부는 윤갑근(53·사법연수원 19기) 대구고검장, 정점식(52·20기) 대검찰청 공안부장, 김진모(51·19기) 서울남부지검장, 전현준(52·20기) 대구지검장 등 4명을 동시에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전보 조치했다. 사실상 무보직 대기발령이다. 통상 검사장 진입을 앞둔 검사 등이 배치되는 연구위원 자리에 고검장·검사장을 한꺼번에 발령한 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 검찰 관계자는 “사표 내고 나가라는 말”이라고 했다. 실제 4명은 인사 통보를 받은 직후 모두 사의를 밝혔다.

유상범(51·21기) 창원지검장은 초임 검사장이 맡아 온 광주고검 차장검사로 좌천성 인사가 났다. 전국 검찰의 각종 범죄 정보를 수집·파악해 수사에 활용하는 역할을 맡았던 정수봉(51·25기) 대검범죄정보기획관은 서울고검 검사로 자리를 옮겼다.

법무부는 “과거 중요 사건에 대한 부적정 처리 등의 문제가 제기됐던 검사들을 일선 검사장, 대검 부서장 등 수사지휘 보직에서 연구 또는 비(非)지휘 보직으로 전보했다”고 밝혔다. 문책성 인사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인사 배경 설명에 ‘부적정 사건 처리’ 등의 표현을 넣은 것도 이례적이다.

이번 인사조치 대상자들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비위 사건, ‘정윤회 문건 사건’ ‘통합진보당 해산청구 사건’ ‘MBC PD수첩 사건’ 등 정치적 성격이 짙은 사건을 맡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 검찰 간부는 “현 정부가 과거 정부에서 논란이 됐던 수사 책임자와는 함께 갈 수 없다는 뜻을 명백히 한 것”이라며 “일종의 검찰 과거사 정리 차원”이라고 전했다.

한편 양부남(56·22기) 광주고검 차장은 공석인 대검 형사부장으로, 최순실 국정농단 특별수사본부 지휘라인이던 노승권(52·21기)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는 대구지검장으로 각각 발령됐다.

우병우 사단·전 정부 인사 정리

이날 인사는 법무부가 발표하는 형식이었지만 사실상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작품’이란 게 중론이다. 지난달 19일 이영렬(59·18기) 전 서울중앙지검장 등의 좌천과 윤석열(57·23기) 서울중앙지검장 발탁에 이은 검찰 충격 인사 2탄 격이다.

우선 타깃은 '우병우 사단'으로 분류되는 검사들에게 맞춰졌다. 윤갑근 고검장은 지난해 8월 우 전 수석의 개인비리 의혹을 파헤친 특별수사팀 팀장을 맡았다. 그는 "살아 있는 권력이 됐든, 누가 됐든 정도(正道)를 따라갈 것"이라고 했지만 4개월간 수사하고도 우 전 수석을 기소하지 못했다. 오히려 '황제 소환·팔짱 조사' 논란은 검찰에 두고두고 부담이 됐다. 윤 고검장은 수사팀을 해산하며 "국민에게 의혹을 해소할 수 있는 답을 내놓지 못한 부분은 송구스럽다. 저로서도 민망스러운 일"이라는 말을 남겼다.

유상범 지검장은 2014년 서울중앙지검 3차장 시절 '정윤회 문건' 수사를 지휘했다. 당시 검찰은 정씨 등의 국정개입 의혹이 담긴 문건 내용은 허구라고 결론내고 문건 유출자 3명을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정상적 수사였다"고 항변하지만, 문 대통령은 수사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며 재조사를 주문했다. 정수봉 기획관은 형사1부장으로 문건 내용 진위를 수사했었다.

김진모 검사장은 우 전 수석의 서울대·사법연수원 동기이자 오랜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정부 때 청와대 민정2비서관으로 근무하며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증거인멸을 도왔다는 의혹으로 조사받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서울남부지검이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한 건으로 여권의 미운털이 박혔다는 얘기도 있다.

대표적 공안검사인 정점식 부장은 2014년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청구 심판 당시 청구인(법무부) 측 위헌정당 태스크포스(TF) 팀장이었다. 전현준 검사장은 2009년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장으로 있으면서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보도와 관련해 MBC PD수첩 제작진 4명을 기소했다.

박 의원이 지난해 11월 국회 대정부 긴급현안질문에서 우병우 사단이라 주장하며 공개한 명단에는 이날 좌천된 고검장·검사장 5명이 모두 포함돼 있다. 당사자들은 이를 모두 부인하지만 현 정부의 인식 역시 박 의원 공개 명단과 같은 선상에 있어 보인다.

몰아치기 물갈이 인사로 개혁 기반

청와대는 검찰 개혁의 명분을 쥐고 몰아치듯 물갈이 인사를 전개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돈봉투 감찰 지시와 후속 조치가 시나리오로 있었던 것처럼 신속히 진행 중이다. 노무현정부 시절의 검찰 개혁 시도가 검찰의 집단 반발로 실패했던 점을 감안, '충격 요법'을 통해 검찰 머리부터 교체 작업이 이뤄지는 것으로 풀이된다. 문책성 인사가 난 고검장·지검장 4명이 줄사표를 내는 등 실제 검찰 인사 재편의 기반은 마련됐다. 신임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선임되면 추가적인 대규모 인사로 새 진용을 갖춘 뒤 본격적인 검찰 시스템 개혁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번 인사가 장관과 총장이 공석인 상황에서 검찰인사위원회의 심의·의결 절차 없이 단행되는 등 청와대가 주도하는 인위적 쇄신에 따른 후유증도 예상된다.

글=지호일 이경원 기자 blue51@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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