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의 추억’ 테러방지법 통과 1년3개월, 폐지·개정될까?

이재덕 기자
서훈 국정원장 후보자가 지난 29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권호욱 선임기자

서훈 국정원장 후보자가 지난 29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권호욱 선임기자

서훈 신임 국정원장이 최근 인사 청문회에서 “국정원 입장에서 현존하는 법은 이행하는 게 맞다”, “국정원이 정치와 완전히 끊어진다는 확신과 인증을 받게 된다면 그런 우려(테러방지법을 통한 민간인 사찰과 기본권 침해)도 많이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국회에 보낸 서면질의 답변서에서는 ‘테러방지법’에 대해 “대테러 활동의 체계적인 업무 수행이 가능해져 국민을 보호하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했습니다. 일각에서는 더불어민주당과 현 정부가 테러방지법 폐지에 대한 의지가 무뎌진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제기되고 있습니다. 민주당 내에서는 신임 국정원장 취임을 계기로 테러방지법 개정·폐지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합니다.[관련기사]▶국정원장 후보자 “테러·사이버테러 방지법 필요” 문재인 대통령과 엇갈린 입장 밝혀 논란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이하 테러방지법)’이 제정된 지 1년3개월이 지났습니다. 2016년 2월23일 19시5분부터 3월2일 19시32분(총 192시간 27분)까지 더불어민주당 등 당시 야당 의원 38명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필리버스터(의사진행방해 발언)’를 진행하며 테러방지법의 부당함을 지적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의원 시절인 지난해 2월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를 응원한다”며 “야당의원들의 혼신의 힘을 다한 노력들이 밤잠을 설치게 하면서도 감동과 희망을 주었다”고 썼습니다.

[정리뉴스]‘필리버스터의 추억’ 테러방지법 통과 1년3개월, 폐지·개정될까?

야권은 4월 총선에서 압승했습니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1년이 넘도록 국회에서는 테러방지법 개정·폐지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지난 1년 여소야대 국회는 왜 테러방지법을 개정·폐지하려 하지 않았을까요. 이와 관련된 전·현직 야당 의원들의 말을 직접 들어봤습니다. 국회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향이네가 정리했습니다.

필리버스터 세 번째 토론자로 나섰던 은수미 전 의원/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필리버스터 세 번째 토론자로 나섰던 은수미 전 의원/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은수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당시 10시간 18분 동안 필리버스터를 진행했다. 은 전 의원은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20대 국회 이후 민주당에서 논의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낙선한 제가 알 길은 없다”고 전제하고 “테러방지법 반대를 주도했던 사람들이 상당수가 낙선을 했다. 주도한 사람들이 법안을 가지고 하기 마련인데 저(낙선)를 비롯해, 정청래(낙천), 배재정(낙선), 김광진(낙천) 등 활동한 의원들이 모두 낙선·낙천했다. 그러다보니 이후 20대에서 이를 연계시키는 데 정치적으로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민주당과 국민의당 의원들은 테러방지법 제정 반대를 주장했지만 테러방지법을 개정할지, 폐지할지를 두고선 의견이 엇갈렸다. 민주당에서는 국정원이 국내 정치 개입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인권침해소지가 있는 독소조항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테러방지법을 개정하면 된다는 의견과 기존 법으로도 충분히 ‘테러 방지’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섰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지난해 4월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여소야대 되었으니 해야 할 일’이란 글에서 테러방지법을 폐지할 것을 주장했다.

[정리뉴스]‘필리버스터의 추억’ 테러방지법 통과 1년3개월, 폐지·개정될까?

신경민 민주당 의원은 필리버스터 8번째 주자였다. 20대 국회에서는 관련 상임위인 정보위원회에서 일했다. 신경민 의원은 “4월 총선하고 (5월30일) 20대 국회가 시작했는데 테러방지법이 이슈로 등장하지 않아서 들여다 볼 기회와 시간이 없었다. 그러고는 바로 최순실 게이트, 촛불국면, 대선국면으로 가게 되면서 볼 기회를 놓쳤다”고 말했다. ‘최순실 게이트’는 9월 한겨레 신문이 미르재단을 보도하면서 시작됐고, JTBC가 최순실 태블릿PC를 보도하면서 본격화했다.

당시 23번째 필리버스터 주자로 나섰던 이학영 민주당 의원은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필리버스터 당시만 해도 바로 재개정 작업에 나서야할 것처럼 주장했던 민주당이 왜 여소야대 상황에서 재개정 작업에 들어가지 못했나”라는 질문에 “우리가 열심히 안챙긴 탓도 있지만 테러방지법을 인정하고 가자는 건 아니었다”면서 “4월 총선 이후 민주당 내에서도 ‘우리가 정리를 해야 한다. 금방 나라가 무너질 것처럼 해놓고 가만히 있으면 테러방지법을 인정하고 가는 꼴인데 이건 모순 아닌가라는 얘기가 있었다. 4월 총선 승리 이후에도 당 내에서 그런 논의는 있었다”고 말했다.

국민의당은 일찌감치 테러방지법 개정으로 방향을 잡았다. 국민의당은 지난해 3월 발표한 ‘어제와 싸우지 않으면 내일은 시작되지 않는다’는 제목의 20대 총선 정책공약집 39쪽에서 “테러방지법의 필요성은 인정되나, 테러방지법이 ‘국정원의 권한 강화법’ 또는 ‘국정원의 권한 남용법’이 되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훼손할 우려가 있으므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인권침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테러방지법을 개정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리뉴스]‘필리버스터의 추억’ 테러방지법 통과 1년3개월, 폐지·개정될까?

세부 내용으로 ‘테러 위험인물의 범위를 합리적으로 제한’ ‘대테러센터 등의 조직에서 국정원 이외의 조직이 집행 역할 담당’ ‘금융거래 지급정지 요청권 삭제’ ‘국정원에 부여된 대테러 조사권을 조사참여권으로 바꾸고, 위험인물 추적권은 동향파악권으로 축소’ ‘영장없이 전화감청을 허용하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을 원상복구’ 등을 내걸었다.

[관련기사]▶테러방지법이 여소야대를 만나면

20대 총선에서 38석을 얻어 제 2야당이 된 국민의당은 개정안을 내지 않았다. 22번째 주자로 필리버스터에 참여한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은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당시 논란이 된 부분이 컨트롤타워를 어디로 할 것인가와 견제기능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였다”면서 “이건 정부 조직 개편안하고 맞물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고, 새 정부의 조직개편안이 나온 뒤에 논의가 활발해 질 것”이라고 말했다. “20대 총선 직후 국민의당이 공약대로 개정안을 내놓지 않는 건 20대 대선 이후 새 정부에서 이런 부분을 진행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나”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말했다.

제1·2야당이 테러방지법 논의를 그만둔 사이 폐지를 들고 나온 이들은 무소속 의원들이었다. 무소속 김종훈 의원(울산 동구)은 지난해 11월 28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장 중요한 것이 (정치권 논의에서) 하나 빠져 있다. 바로 가장 대표적인 박근혜악법인 테러방지법”이라며 “제출 당시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법이라고 선전했던 이 법은 실제로는 정권 유지를 위해 국민을 사찰하는 법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국회에서 192시간 26분이라는 세계 최장 기록의 필리버스터를 진행했던 야당 의원들이 한결 같이 ‘야당이 힘이 없어 죄송하다, 야당이 다수당이 되면 가장 먼저 테러방지법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었다”면서 “하지만 야당이 지난 총선에서 다수당이 되고, 박근혜 정권의 민주파괴 행위가 만천하에 드러난 지금까지도 폐지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제 그 약속을 지켜야 하며 테러방지법 폐지안을 제출하려는 이유”라면서 “시민사회단체, 전문가의 의견을 반영하고 야당 의원들과 협의해 이른 시간 안에 폐지 법안을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관련기사][오마이뉴스]▶무소속 김종훈, 테러방지법 폐지법 발의키로

보름 뒤인 12월14일 무소속 윤종오 의원(울산 북구)이 테러방지법 폐지안을 냈다. 윤 의원은 “테러 및 테러위험인물의 개념이 불명확하고 모호할 뿐아니라, 국가정보원장은 대테러활동에 필요한 정보나 자료를 수집하기 위하여 대테러조사 및 테러위험인물에 대한 추적과 같이 헌법상의 영장주의 원리, 적법절차의 원리 등 국민의 기본권 보호 원리를 무시하는 위헌적, 인권침해적 요소가 내포돼있다”며 “국가정보원의 과도한 행사로부터 국민의 기본권 침해를 방지하고 헌법상의 기본원리를 준수하려는 것”이라고 폐지 이유를 밝혔다. 앞서 “야당의 폐지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비판한 김종훈 의원도 공동 발의에 참여했다. 이외에 노회찬(정의당), 박경미(더불어민주당), 서형수(더불어민주당), 윤소하(정의당), 이정미(정의당), 이해찬(더불어민주당), 전혜숙(더불어민주당), 제윤경(더불어민주당), 추혜선(정의당·가나다순) 의원 등 총 11명이 폐지안에 서명했다.

윤종오 의원은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야당 의원들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인데 대신 하셨다’면서 흔쾌히 서명했다. 제가 무소속이다보니 법안을 발의해도 서명 받는 게 쉽지 않은데 이번에는 다른 당 의원들이 서명해줘서 쉽게 (발의 요건인) 10명을 채웠다. (발의) 요건이 돼서 딱 그 정도만 서명을 받았다”고 했다.

윤 의원의 폐지안에는 시민단체도 참여했다. 박근용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은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테러방지법은 폐지와 개정 의견으로 나뉘는데 폐지에 대해서는 의원들 간에 의견 차이도 있고, 과연 통과될 수 있겠냐는 걱정도 있는 것으로 안다. 저희는 폐지 또는 개정을 주장하는데 이번에 국회에서 (윤종오 의원이) 폐지를 먼저 제안해왔다. 의원실에서 먼저 내려고 하는데 시민단체도 입장을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저희도 참여했다”고 말했다.

현재 민주당과 국민의당 내에서는 테러방지법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의원들은 신임 국정원장 취임 이후 테러방지법 개정·폐지 여부가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윤종오 의원은 “새 정부에서 신임 국정원장이 취임했으니 이와 관련한 논의는 7월 국회에서 이뤄지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학영 의원은 “폐지안이 나온 상황에서 우리가 폐지안을 두개 세개씩 또 마련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며 “이와 별개로 개정안을 준비해야 하는데 개정안은 심각한 토론이 필요한 일이다. 테러방지법이 대통령의 (인권침해) 우려를 종식시킬 수 있는지 살피고, 상충되는 부분은 없애는 방향으로 개정하거나, 개정해도 의미 없다면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경민 의원은 “이제 들여다볼 계기가 마련됐다고 판단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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