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운 없는 것 같았다. 2회 초 수비에서였다. 상대 타자가 친 타구가 3루 관중석 지붕 위에서 우익수 쪽을 향하는 조명 속으로 숨었다. 두산 우익수 정진호(29)은 그 타구를 놓치고 말았다. 조금 더 전진하면 잡을 수도 있던 타구. 그게 갑자기 강한 조명 속으로 사라지면서 2타점짜리 2루타가 되고 말았다. 자신의 시야를 방해한 비스듬히 내리 비추는 잠실구장 조명이 원망스러울 만했다. 그러나 그를 비추는 진짜 스포트라이트는 그 다음이었다. 한 시즌 한 번도 힘든 대기록. 그게 그에게 거짓말처럼 찾아왔다.

정진호가 KBO리그 역대 23번째로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했다. 지난 4월7일 서건창(넥센 히어로즈)이 두산전에서 달성한 이래 시즌 2번째 사이클링 히트다.

정진호는 7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홈 삼성전에서 1회 말 첫 타석에서 좌익선상 쪽 2루타를 때린 데 이어 2회 우중간 3루타를 생산했고, 4회 다시 중전안타를 쳐냈다. 여기에 7-7로 맞서던 5회말 2사 1루에서 상대투수 최충연의 몸쪽 140㎞짜리 직구를 받아쳐 우월 투런홈런으로 연결하며 대기록을 현실로 만들었다. 정진호는 그 여세를 몰아 7회 5번째 타석에서도 좌전안타를 뽑아냈다. 5타수 5안타 2타점. 최고 하루였다.

정진호는 역대 사이클링 히트 중 으뜸가는 기록을 남겼다. 불과 5이닝 만에 달성한 사이클링 히트. 역대 최소 이닝 사이클링 히트였다. 1982년 삼성 오대석 등 4명이 6이닝 만에 사이클링 히트을 쳐 낸 게 앞선 최소 이닝 기록이었다. 또 정진호는 역대 6번째로 4타석 만에 사이틀링 히트를 기록했다. 두산 선수로는 1992년 임형석 이후 5번째로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한 선수가 됐다.

정진호는 2011년 대졸 신인으로 두산에 입단한 프로 7년차다. 매년 주목받았지만 아직 백업 자원에 머물고 있다. 이날 사이클링 히트는 지난 6일 1군에 등록된 뒤 이틀째 잡은 선발 출전 기회를 제대로 살린 작품이었다. 3-0인 2회 조명에 타구를 빼앗기며 동점의 빌미를 제공한 실수도 화끈하게 메워졌다. 결승 2타점도 그의 몫. 두산은 9-7로 승리했다.

광주에서도 화끈한 기록이 나왔다. KIA가 사이드암 선발 임기영이 9이닝 5피안타 무실점 역투로 팀의 7-0 승리를 이끌어 올시즌 2번째 완봉승을 거둔 첫 번째 투수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