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조선시대 못지않은 모호한 관념이 한국사회 장애물"

2017. 6. 7.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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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집필 때와 같은 고뇌"..100쇄 기념 '아트 에디션' 출간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소설가 김훈이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문학도서관에서 열린 '남한산성 100쇄 기념 아트에디션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17.6.7 scape@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소설에서 나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언어와 관념의 문제인데 이것은 현대까지도 그대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못지 않은 관념에 빠져 있습니다. '북한이 주적이냐 아니냐, 국가냐 아니냐' 하는 질문은 성립될 수 없습니다. 북한은 강한 무력을 가진 군사적, 정치적 실체입니다. 실체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병자호란 때 청나라를 대하는 것 같은 몽롱하고 무지한 관념에 빠진 질문입니다."

소설가 김훈(69)은 7일 "정의니 불의니 도덕이니 이런 모호한 관념들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면서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처럼 걸려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장편소설 '남한산성' 100쇄를 기념한 간담회 자리에서다. "이것이 '남한산성'을 쓰던 나의 고뇌와 고통의 연장선상에 있다"고도 했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역사담론을 만들 생각은 전혀 없었다. 등장인물에 대한 평가를 시도하려는 생각도 없었다"고 말했다.

"'남한산성'은 아무런 결론 없는 소설일 것입니다. 인간의 방황과 고뇌, 그런 것들만 그려져 있는 것이죠.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조건들, 인간의 야만성, 인간의 삶이 빚어낸 풍경, 그런 것들을 묘사하려고 했던 것이 목표입니다."

그는 100쇄 발행을 맞아 지난 10년을 돌아본 일종의 후기인 '못다 한 말'을 새로 썼다. 여기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남한산성'에 관해 대화를 나눈 일화를 소개했다.

해남에서 열린 명량대첩 축제를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 같은 열차에 탄 김 전 대통령은 작가에게 각각 주화파와 척화파를 대표하는 최명길과 김상헌 가운데 어느 편이냐고 물었다. "작가는 아무 편도 아닙니다"라고 답하자 김 전 대통령은 "나는 최명길을 긍정하오"라고 말했다고 한다.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소설가 김훈이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문학도서관에서 열린 '남한산성 100쇄 기념 아트에디션 출간' 기자간담회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7.6.7 scape@yna.co.kr

작가는 "불굴의 민주투사 김대중이 주화파 최명길에 대해서 그토록 긍정적인 이해를 갖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놀랐다"면서 "타협할 수 없는 이념의 지향성과 당면한 현실의 절벽 사이에 몸을 갈면서 인고의 세월을 버티어내며 길을 열어간 그분의 생애를 나는 생각했다"고 썼다.

작가는 조선시대 사대주의를 "강자들 틈에서의 생존술"로 평가했다. 그는 "사대주의를 옹호하는 게 아니다. 생존술로서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교과서에서도 정확하게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관념의 늪에서 빨리 벗어나 모든 존재하는 것의 실체를 똑바로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한산성'은 1636년 병자호란 때 청나라 대군을 피해 인조와 신하들이 남한산성에 머문 47일을 그린 작품이다.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폭넓게 읽히면서 2007년 4월 출간 이후 지금까지 100쇄, 60만 부를 찍었다. 출판사 학고재는 100쇄를 '아트 에디션' 특별판으로 제작했다. 작가의 '못다 한 말'과 한국화가 문봉선의 그림 27점을 보탰다.

작가는 문 화백의 그림에 대해 "이 그림은 저의 소설을 설명하거나 부연하고 있지는 않다. 말과 길을 테마로 삼았는데, 문 화백이 그려주신 표지 그림이 인간이 걸어갈 수 없지만 걸어갈 수밖에 없는 길을 형상화시켜 주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단편소설 '언니의 폐경' 등에서 여성을 사물화·대상화해 묘사했다는 비판에 "여자를 어떤 역할과 기능을 가진 인격체로 묘사하는 데 매우 서투르다. 생명체로 보는 경향이 있다. 나의 미숙함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여자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내년에 칠순을 맞는 작가는 "앞으로 세 개나 네 개 정도 쓰면 끝날 것"이라며 집필계획을 밝혔다.

"역사나 시대의 하중에서 벗어나는 글을 써보고 싶습니다. 판타지와 상상의 세계로 끝없이 이야기를 끌고 나갈 수 있는 글을 써보고 싶은데 소망대로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건강을 유지해서 조금씩 쓰다가 가려고 합니다."

da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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