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A대위'는 다 범죄자가 되는 한국

2017. 6. 7.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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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동성애자에 대한 혐오와 편견, 군대 내 성폭력 문제 해결에 장애 지적

어떤 사랑은 범죄가 되기도 한다. 대한민국 군대에선 그렇다.

육군본부 보통군사법원은 지난 5월 24일 전역을 앞둔 육군 장교 A대위(28)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동성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이유에서였다. 성인 남성과의 합의된 성관계였지만, 군법원은 A대위에게 ‘추행죄’를 적용했다. 군형법 92조 6항,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군인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군의 동성애 차별을 상징하는 이 조항이 A대위를 ‘범죄자’로 만들었다.

한국 인권운동사에서 군형법 92조 6항을 둘러싼 논란은 꽤 길다. 1962년 제정 당시에는 ‘계간’이란 표현이 담겨 있었다. 계간(鷄姦), 말 그대로 닭의 성행위를 뜻하는 표현으로 남성 동성애를 비하하는 혐오 표현이다. 오랜 논란 끝에 2013년 이 표현은 삭제됐지만 이번에는 ‘항문 성교’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국가가 개인의 성관계 체위까지 정하겠다는 법이다.” A대위의 변호를 맡은 김인숙 변호사의 말이다. 김 변호사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92조 6항은 합의하에 성행위를 해도 처벌하는 법으로, 법 그대로 적용하면 대상이 ‘군인’이라고 돼 있으니 이성 간 항문성교를 해도 처벌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조항은 강요 혹은 합의 여부도, 영외냐 영내냐를 따지지도 않는다. 동성 간 ‘항문 성교’가 있었음이 확인된다면 무조건 처벌 받는다.

A대위 사건의 주심판사는 선고공판에서 A대위가 “하급자들을 대상으로 추행 행위를 했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이 판결문 때문에 A대위는 순식간에 ‘성추행범’으로 낙인 찍혔다. ‘동성애자면 성추행을 저질러도 인권을 보호해야 하느냐’는 식의 댓글이 A대위 관련 기사에 줄줄이 달렸다.

피해자는 없고 ‘가해자’만 있다

그러나 판결문의 ‘추행’이란 폭력과 위력·위계에 의한 추행, 즉 강제추행이 아니다. 군 검찰도 A대위와 하급자들의 성관계가 합의에 따른 것임을 인정한다. A대위와 성관계를 가진 하급자 모두 다른 부대 소속으로 A대위와 지휘관계에 놓여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합의된 성관계가 ‘추행’이라고 표현된 것은 그에게 유죄를 선고한 근거가 된 군형법 92조 6항의 죄목이 바로 ‘추행’이기 때문이다. A대위를 지원한 군인권센터 관계자는 “A대위의 추행이 강제로 이뤄진 것이라면 적용 죄목은 92조 6(추행)이 아니라 92조 3(강제추행)이 되어야 한다”며 “A대위에게 적용된 혐의 중 강제추행으로 인정된 혐의는 하나도 없다”고 밝혔다.

A대위에 대한 군검찰의 기소가 육군의 ‘동성애자 색출작전’의 일환이며,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이 이를 직접 지시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논란은 한층 뜨거워졌다. 군의 동성애자 처벌의 법적 근거가 되는 군형법 92조 6항의 위헌성에 대한 논란이 재차 제기됐고, 정의당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이 조항을 폐지하는 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이들 의원의 사무실에 항의전화가 폭주했다.

존치론자들은 군대라는 공간의 특수성을 강조한다. 남성들이 집단생활을 하는 데다 상명하복이 철저한 군의 특성상 동성 간 성적 행위가 발생할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군 동성애는 국방전력을 약화시키는데 어떻습니까?” “네,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난 4월 대선후보 TV토론에서 나온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후보와 문재인 대통령의 문답 역시 이런 인식과 궤를 같이한다. 문 대통령은 당시 토론에서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발언으로 논란이 일자 이틀 후 사과했지만, 유독 군대 내 동성애에 대해선 완고한 입장을 보였다. “군대는 동성들이 집단생활을 하기 때문에 동성애가 허용된다면 많은 부작용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성애 강요가 있을 수 있고, 상급자에 의한 스토킹이 있을 수 있다. 그런 것들이 성희롱, 성추행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문 대통령의 단호한 입장이었다.

그러나 개인의 성 정체성은 타인의 ‘강요’에 의해 확립될 수 있는 것이 아닐 뿐더러, ‘합의된 성접촉’까지 ‘강요된 성접촉’과 마찬가지로 처벌하는 것은 기본권 침해라는 반론이 거세다. 이미 군형법은 92조(강간), 92조의 2(유사강간), 92조의 3(강제추행), 92조의 4(준강간, 강제추행), 92조의 5(미수범) 등을 근거로 합의에 의하지 않은 성접촉을 세분화해 처벌하고 있다. 오로지 문제가 된 92조 6(추행)만이 합의와 강제 여부를 불문해 처벌한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A대위와 성관계를 가졌던 하급자들 역시 수사를 받고 현재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추행’ 사건이라지만 피해자는 없고 가해자만 존재하는 것이 군형법 92조 6항인 셈이다.

군대 내 성폭력은 동성애자 탓?

군에서 사실상 동성애자 색출과 처벌 수단으로 활용되는 이 조항은 ‘군대 내 성폭력은 동성애자에 의해 자행된다’는 뿌리 깊은 편견과 함께 작동한다. 과연 군대 내 성범죄는 동성애 때문에 발생할까.

국내에서 진행된 군대 내 남성 간 성폭력에 관한 심층 연구는 2004년 국가인권위원회 의뢰로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수행한 ‘군대 내 성폭력 실태조사’가 유일하다. 여성가족부가 2016년 성폭력 실태조사 부가조사 차원에서 군 성폭력 관련 조사를 진행했지만 외부에는 공개하지 않았다.

2004년 조사에서 연구팀이 현역 군인과 제대 3년 이내 예비역 67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동성애를 이유로 가해나 피해가 있었다는 응답은 단 한 건도 없었다. 군교도소에 수감된 성범죄 가해자들에 대한 심층 면접조사에서도 수감자 전원이 자신은 동성애자가 아니라고 밝혔으며, 오히려 동성애에 대해 강한 혐오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연구팀은 “남성 간 성폭력 발생 원인을 동성애자들의 일탈적 성행위의 한 종류로만 이해하는 것은 잘못된 고정관념”이라며 “강자의 약자에 대한 권력과 지배욕구의 행사가 남성 간 성폭력의 주요한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오히려 연구팀은 동성애자의 경우 남성 간 성폭력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가해자가 될 가능성보다 더 높다고 지적한다. 조사 결과 “실제 남성 성폭력 가해자의 일반적인 유형은 동성애 혐오증이 심한 이성애자”였으며, 동성애자에 대한 성폭력 역시 ‘남자답지 못함에 대한 처벌’의 의미가 강하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군대 내 남성 간 성폭력이 동성애적 성적 선호를 가진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애적인 구도 내에서 계급의 위계성과 결합된 권력의 문제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면서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과 혐오는 자칫 군대 내 성폭력의 구조와 원인을 동성애자들만의 문제로 잘못 인식하게 만들어 신고율을 낮추는 등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아직도 많은 ‘A대위’들이 성범죄자로 지목돼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다. 육군본부에 따르면 총 23명의 군인이 군형법 92조 6항과 관련해 형사입건돼 수사를 받고 있다. 이렇듯 어떤 사랑은 ‘범죄’가 되는 군대에서, 정작 발생한 성폭력은 쉽게 넘겨지기 일쑤다. 지난 5년간 여군 대상 성폭력 범죄를 저질러 기소된 육군은 총 111명, 이 중 실형 선고를 받은 이는 7명(5.9%)뿐이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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