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신경 안써도 돼 좋아요".. 日여성들 홀리는 '어둠의 피트니스'

이동휘 특파원 2017. 6. 7.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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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서 유행 '어둠 속 체육관' - 이동휘 특파원 르포]
10대 소녀 47%·20대 여성 25% "남의 눈 때문에 운동 기피" 답해
샌드백 앞 어두운 작은 조명뿐.. 노출 심한 옷에 땀범벅이라도 주위 시선 피할 수 있어서 인기
美뉴욕서 유행하다 일본 상륙.. 1년 반 만에 도쿄서 50곳 성업
이동휘 특파원

지난달 28일 밤 도쿄 신주쿠 10층 건물의 5층에 있는 한 권투 연습장. 200㎡쯤 되는 연습장에 들어서자 1~2m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조명이 어두웠다. 천장에는 형광등 대신 조그만 할로겐 조명이 1.5m 간격으로 달렸다. 샌드백 앞에 선 남녀 60여 명은 신체 윤곽만 보일 뿐 얼굴을 알아보기 어려웠다.

잽·어퍼컷 동작 등에 대한 강사의 설명이 끝나자 조명은 더 떨어졌고, 음악 소리는 더 커졌다. 원투 펀치를 내지르던 마에지마(여·34)씨는 "남의 눈을 의식할 필요가 없으니 마음 놓고 뛴다"며 "(힘이 들어) 입에서 새나오는 소리도 곧바로 음악에 묻힌다"고 말했다. 이 권투 연습장은 작년 5월 처음 문을 열어 도쿄에만 지점 4곳을 두고 있다. 도쿄 지역 회원 3000여 명 중 절반 이상이 여성이다.

어두운 조명에서 운동하는 '어둠(暗闇) 피트니스'에 일본 여성들이 몰리고 있다. 다른 사람 눈을 많이 의식하고, 퇴근 후 사생활 침해를 원치 않는 일본인들의 특성이 어둠 속에서 운동하는 것이 인기를 끄는 이유라고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은 분석한다. 일본 식당에는 칸막이가 있는 1인용 좌석이 일반적일 정도로 일본인은 남의 눈을 피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작년 말 일본의 한 스포츠 에이전시 조사에 따르면, 일본 남녀 2만명 중 1885명은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 중 14.5%는 그 이유로 "내가 운동하는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시간·돈 문제를 제외하면 '남의 시선'이 운동을 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로 꼽혔다. 특히 10대 여성(47.6%)과 20대 여성(25.4%)은 남의 눈 때문에 운동을 하지 않는다는 응답 비율이 더 높았다.

일본 도쿄에 있는 권투 연습장‘비몬스터’에서 시민들이 야간 운동에 열중하고 있다. 이 연습장은 남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 없이 운동할 수 있도록 조명을 어둡게 만들어 옆 사람 얼굴을 알아보기가 어렵다. /비몬스터

미국 뉴욕에서 유행하던 '어둠 피트니스'가 일본에 상륙한 것은 작년 초이다. 도쿄에만 50곳이 성업할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 도쿄 번화가 롯폰기의 한 실내 자전거 체육관은 회원의 70%가 20~40대 여성이다. 실내가 어두운 것은 기본이고 거울도 없다. 체육관 관계자는 "체형에 자신이 없는데 땀투성이가 된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보거나 남이 쳐다보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라고 했다.

컴컴한 조명 덕분에 평소 도전하지 못했던 노출이 심한 운동복을 입는 사람도 많다. 미야케(여·39)씨는 "남들이 비웃을까 봐 못 입던 '탱크톱(짧은 민소매)' 스타일의 운동복을 자신 있게 입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어둠 피트니스에서 운동을 마치고 셀카를 찍어 소셜 미디어에 올리는 것도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다.

어두운 실내조명을 이용해 'VR(가상현실)' 영상을 틀고 운동하는 체육관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지난 4월 시부야에 문을 연 한 실내 자전거 체육관에는 가로 10m, 세로 2m 크기로 120도쯤 휘어진 스크린이 설치돼 있다. 운동이 시작되면 해외 각국의 명소는 물론 우주 속이나 다른 행성의 모습을 표현한 영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파리 개선문 앞이나 외계에 가서 자전거를 타는 듯한 느낌을 준다. 벽 전체에 나무가 우거진 숲이 담긴 영상을 쏴 숲속에서 요가를 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수련원도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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