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이해관계 서울역 개발 손도 못대..주변은 슬럼화 가속

박인혜,정순우,김강래 2017. 6. 6.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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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관문역할 위해서는 상업·관광·문화기능 갖춰야
서울역 도심재생 시급한데..사업예산은 225억에 불과 市는 보행로에 600억 '엇박자'

◆ 낡은 도심부터 재생하라 ② ◆

역사와 주변 개발은 진척을 보지 못한 채 수백억 원 예산으로 공중보행로만 만들어 놓은 서울역 주변 전경. 보행로에서 내려다보이는 서울역 모습은 노숙자와 비둘기로 가득 차 있다. [한주형 기자]
지난 5일 서울역 앞 지하철 14번 출구. 대합실로 향해 가는 길에 허름한 복장의 남성 노숙자가 "담배를 달라"며 다가왔다. 인도에는 물청소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 노숙자들이 사용한 폐지를 수거하고 있던 환경미화원 정 모씨(67)는 "노숙자들이 인도에서 소·대변을 보기 때문에 물청소를 정기적으로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평소에는 밤낮 가리지 않고 수십 명이 서울역 앞을 점령하고 있다. 청소하는 입장에서 힘들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서울의 관문인데 서울역 주변이 노숙자들 때문에 죽어가고 있어 아쉽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역은 인천공항에 내려 공항철도를 이용해 서울에 도착한 관광객이 처음 보는 한국의 모습이다. 하지만 현재 서울역은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역사 계단에서 내려와 마주치는 사람들은 휴식을 취하고 있는 노숙자들이었다. 일부는 그늘에서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바로 옆으로는 지도와 여행가방을 양손에 든 외국인 관광객들이 지나치는 시민에게 길을 묻는다. 30도에 육박하는 더운 날씨에 서울역 앞 악취는 평소보다 심했다.

노숙자와 비둘기 사이를 헤치며 역 광장을 다녀봤지만 서울을 알릴 만한 볼거리는 없었다. 옛 서울역사의 외관을 보존한 문화재청의 '문화역서울284'가 광장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지만 성격을 가늠하기 어려운 전시 포스터가 붙어 있다. 대한민국 철도와 교통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건물의 의미를 살린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러다 보니 '문화역서울284'의 연간 이용객은 32만명(2016년 기준)에 불과하다. 경복궁·창덕궁·창경궁·덕수궁과 종묘의 연간 관람객 수가 1000만명에 육박하는 것에 비하면 저조한 성적표다.

서울역에서 한강대로를 따라 동자동 쪽으로 걸어보니 또 다른 아쉬운 풍경이 펼쳐졌다. 갈월동까지 이어지는 대로변에는 2~3층 높이의 낡은 소형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몇 군데 새 건물이 중간중간 보이지만 대부분 수십 년째 수리조차 하지 않은 듯한 모습이다. 2층에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빈 사무실도 눈에 띄었다. 1층에는 술집, 슈퍼, 작은 식당, 노인복지센터, 불우이웃 시설, 학원, 인력소개소, 사회단체 사무실 등이 있었다. 국가 철도교통의 심장부에 붙은 배후상권의 입지의 성격은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다. 인근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60대 여성은 "노숙자 등 주변 환경 때문에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장사가 안 된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도시의 중앙 역사를 '근대 산업도시의 중심'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관광이든 업무든 서울역을 통해 서울에 들어온 이동객들은 도착하는 즉시 서둘러 이곳을 떠나기 바쁘다. 서울역이 상업·업무·관광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주변 환경도 사람이 머물고 싶지 않게 한다. 상업시설로 롯데마트와 롯데몰이 있지만 서울시의 '서울역 일대 미래 비전' 용역안은 그조차 철거 대상으로 지목하고 있다. 업무나 관광시설은 사실상 전무하다. 최막중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서울역 미래 비전 수립을 위한 심포지엄에서 "한때 산업화와 민주화의 중심이었던 서울역이 이제는 잊히고 방치된 장소로 변했다"고 우려했다.

서울역사만이 2003년 현대시설로 완공됐지만 외관만 번듯할 뿐이다. 복잡한 환승구조 때문에 공항철도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려면 10분 넘게 걸린다. 원샷 개발이 아닌 부분적 노선 추가로 인해 발생한 문제다. 열악한 주변 환경과 부족한 기능 보완을 위해 대대적인 서울역 종합 개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렇다고 도심 재생 차원의 접근이 활발한 것도 아니다. 서울시의 빈약한 의지와 잘못된 상황 인식부터 문제로 지적된다. 2015년부터 5년간 서울시가 서울역 도시재생 활성화 사업으로 책정한 예산은 225억원에 불과하다. 신촌동과 암사동 재생사업에 배정된 예산보다도 적다. 그나마도 서울역에만 투입하는 예산도 아니다. 중림동, 회현동, 소공동, 남영동까지 포함해 이 일대 재생사업에 쓸 돈이다. 도로와 가로등 정도 바꾸면 바닥이 날 수 있다. 서울시는 하지만 서울역을 통과하던 고가도로를 보행로(서울로 7017)로 만드는 데는 600억원의 거금을 투자했다.

최막중 교수는 "사람들은 걷기 위해 일부러 멀리서 오지 않는다"며 "서울역 주변 보행인구자원 부족을 먼저 극복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역과 주변의 업무·상업·관광 기능을 강화해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으로 만들어 유동인구를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래야 공중보행로의 활성화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해관계도 서울역 개발에 장애물이다. 서울시는 '서울역 일대 비전 수립 용역'을 실시했다. 국토교통부와 철도시설공단도 별도로 '서울역 통합 개발 기본구상' 연구용역에 착수한 상태다. 각 주체들이 거창한 청사진들을 만들고 있다. 서울역에 대한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그동안 서울역 일대 개발이 여러 차례 시도되다 무산된 이유이기도 하다. 서울역 용지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 문화재청, 한화, 국토부, 한국철도시설공단, 서울시 등이 소유권을 나눠 갖고 있다. 서로 개발의 목적과 이해가 다르며, 정치적 배경이 개입하면 더 심각한 갈등이 빚어진다. 강력한 추진력과 리더십을 갖춘 컨트롤타워가 나오지 않는 한 이들을 한데 묶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청계천 사업처럼 서울역 재생을 성공시킨다면 국가 지도자급 역량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기획취재팀 = 박인혜(팀장) / 정순우 기자 / 김강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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