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대통령이 특정 歷史연구 지시하는 나라가 어딨나"

유석재 기자 2017. 6. 6.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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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爭: 가야사 복원] [1] 한국고대사학회장 하일식 교수
"가야史 예산 대부분이 토목공사에 쓰일까 걱정돼..
도종환 문체부 장관 후보는 재야사학에 경도돼 있어 우려"

지난 1일 문재인 대통령의 '가야사 복원' 지시가 학계의 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가야사 문제를 둘러싼 다양한 목소리를 릴레이 형식으로 들어 본다.

"대통령이 역사의 특정 시기나 분야 연구나 복원을 지시하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다."

한국고대사 연구자들의 대표 격인 한국고대사학회 회장 하일식(56·사진) 연세대 교수는 일요일인 지난 4일 저녁 학회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가야사 연구와 복원'을 국정 과제에 포함시키라고 했던 지시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하는 글을 올렸다.〈본지 5일 자 A2면〉 하 교수와 전화 통화를 한 것은 이날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대통령의 그런 발언이 왜 부적절한가?

"대통령이라는 위치에서 학문 문제에 대해 지시에 가까운 언급을 했으니 그렇다. 많은 연구자는 김대중 정부 때 금관가야(지금의 김해 일대)를 중심으로 가야사를 복원한다고 국가 예산을 엄청나게 많이(1290억원) 쓴 것에 대해 부정적인 기억을 갖고 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또 이런 얘기가 나오니 적절하지 못하다는 공감대가 생긴 것이다. 대통령이 학계에 '특정 시기 연구에 집중하라'고 하는 것은 외국에도 예가 없을 것이다. 미국이 그러겠나, 유럽이 그러겠나?"

―왜 대통령이 그런 말을 했을까?

"대통령이 언급한 맥락으로 추측건대, 아마 후보 시절에 지방 공약과 관련해서 지자체들이나 일부 연구자로부터 브리핑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문화관광벨트를 만든다는 것은 학문과는 다른 차원의 일이다. 거기서 일부 예산을 떼어서 연구비를 준다는 얘긴데, 가야사가 타 분야에 비해 부진한 것은 문헌 기록이 소략하고 연구자가 적은 것 등 다른 이유가 있다. 가야사를 진흥하려 한다면, 대통령이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할 게 아니라 전문가 그룹의 자문을 구해서 학문 후속 세대 양성을 포함한 장기 대책을 세워야 한다. 공약 실천하듯이 해서는 안 된다."

―연구 활성화 효과는 있지 않을까?

"예산이 정해지면 실제 연구에 들어가는 비용은 10%도 안 되고 대부분 토목공사나 이벤트로 쓰일 것이다. 이미 그런 비슷한 일들을 많이 봐 왔다. 물론 지자체는 쌍수 들고 환영할 것이다."

금관가야의 대표적 유적 중 하나인 경남 김해의 대성동 고분군. 2000~2004년 ‘가야사 1단계 복원 사업’에는 대성동 고분군과 구지봉 복원 등에 1290억원이 투입됐다. /문화재청

―'혼이 비정상'이라며 국정교과서를 추진한 전 정부와 비교하는 말도 했는데.

"정부가 역사에 개입하는 행위를 한다면 국정교과서 추진이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가야사 연구나 유적 복원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막강한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 이런 것에 일일이 나선다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악한 정권은 하면 안 되고, 선한 정권은 해도 된다'는 생각에 반대한다. 세상에 선한 정권이 어디 있겠나."

―영호남 화합을 위한 명분을 내세웠다.

"과연 가야사를 강조한다고 영호남이 화합하고 지역감정이 허물어지겠는가? 실현 가능성도 없을뿐더러 불합리하다. 역사를 도구화한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우스개소리지만, 지자체장들끼리 친해질 수는 있을 것이다."

―이 글을 한국고대사학회 홈페이지에 쓴 이유는 무엇인가.

"최근 가야사 문제를 비롯해서 임원들이 공개적으로 의견을 밝히자는 말이 많은데, 그럴 시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회장인 내 개인적인 생각을 일단 띄운 뒤 의견을 수렴하고 여론을 환기하기 위해서였다. 아직 공식 입장은 아니다. 많은 회원은 가야사 문제엔 '우려스럽다'는 생각을 갖고 있고, (문체부 장관 후보자인) 도종환 의원에 대해서는 격앙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문체부 장관 후보자인 도종환 의원의 역사관에 대해서도 문제로 삼았다(하 교수는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도 의원이 '상고사 정립'을 내세운 재야사학자들을 옹호한 것에 대해 우려스럽다고 썼다).

"문제는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문체부 장관이 되면, 엉뚱한 쪽으로 예산을 돌릴 수 있는 여지가 교육부 장관보다 훨씬 많다는 데 있다. 문체부에서 예산을 대는 문화 강좌와 지역 축제가 생각보다 많다. 도 후보자는 유명 재야 역사학자를 스승처럼 여기고 있다는 말도 들었다. 유사역사학에 경도된 사람들의 문제는, 한 번 그렇게 사고하면 사이비 종교에 빠진 듯 대화나 토론이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도종환 후보자에 대해선 일단 지켜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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