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조' 회사 물려받은 대학생..증여세는 어떻게?

정재우 2017. 6. 5.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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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규모 10조 대기업 하림 그룹은 현재 창업주 김홍국 회장이 지배하고 있다. 그런데 하림 그룹의 지배구조를 보면 김 회장보다 더 많은 지배력을 확보한 사람이 있다. 92년생 대학생이자 김 회장 아들인 김준영 씨다.

김 씨는 5년 전이던 2012년 아버지로부터 올품(당시 한국썸벧판매)이라는 회사를 물려받았다. 김 회장이 가지고 있던 지분 100%를 아들 김 씨에게 넘긴 것이다.

2012년 당시 한국 나이로 21살이던 김 씨가 물려받은 올품은 하림 그룹 계열 동물약품 판매회사였다. 이 회사는 자회사 한국썸벧이 만든 동물약품을 사들여 하림 그룹 계열사에 되팔면서 돈을 벌었다. 5년 전 이 회사 하나 물려받았을 뿐인 김 씨가 어떻게 이미 하림 그룹을 물려받았다는 평가를 받게 됐을까.

물려받은 회사..알고보니 하림 그룹 '지배자'

하림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은 이달 상장을 앞둔 제일홀딩스다. 이 회사는 하림(47.9%). 팬오션(50.9%), 팜스코(56.3%), 선진(50%), 하림홀딩스(68.1%) 등 핵심 계열사를 직접 지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제일홀딩스 지분을 많이 가진 이가 그룹을 지배할 수 있다. 제일홀딩스 지분을 가장 많이 보유한 '개인'은 지분 41.8%를 가진 김홍국 하림 회장이다.


그런데 올품이 지분 100%를 보유한 자회사 한국썸벧은 제일홀딩스 지분을 37.14%나 가지고 있다. 여기에 올품이 직접 보유한 제일홀딩스 지분 7.46%를 더하면 김 회장의 아들 김준영 씨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제일홀딩스 지분은 45%에 달한다.

5년 전 아버지로부터 회사 하나 물려받았을 뿐인데, 이 회사로 자산 10조 규모 하림 그룹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의 지배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92년생 대학생 증여세 100억 어떻게 마련했나

김홍국 회장은 지난 2015년 6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올품에 대해 "100억 원 이상 증여세를 모두 내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아들에게 증여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다만 김 씨가 이 증여세를 어떻게 마련했는지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최근 올품이 주주 김준영 씨를 대상으로 지난해 100억 원 규모의 유상 감자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유상 감자는 회사의 자본(주식)을 줄이는 대신 주주에게 돈을 주는 행위다. 주주 입장에서는 주식 가치만큼 현금을 회수하는 수단이다. 주주가 회사에 본인 주식을 팔고, 돈을 받는 거라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김 씨는 회사 주식 30%가량(6만2500주)에 대한 유상감자를 통해 회사로부터 100억 원의 돈을 받았다. 주식을 사준 이가 그의 회사(올품)였던 덕에 주식값 100억 원을 받고도 회사 지분율은 100%를 유지했다.

이처럼 100억 원을 챙긴 것에 대해 논란이 일자 하림 그룹은 "김 씨가 유상감자로 받은 자금은 모두 증여세를 내는 데 들어갔다"며 "개인적으로 돈을 쓴 것은 한 푼도 없다"고 설명했다.

베일에 싸여 있던 김 씨의 증여세 출처가 공식적으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이와 관련해 하림 그룹 관계자는 "김준영 씨는 올품을 물려받은 이후부터 증여세를 매년 나눠서 내고 있다"며 "총 100억 원가량 되는 증여세를 내기 위해 유상감자로 자금을 조달했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본인이 가지고 있던 주식을 팔아서(유상감자) 돈을 마련했고, 이를 증여세로 냈다는 점에서는 법적으로는 문제 될 것이 없다.

하지만 올품이 준영 씨에게 지급한 100억 원의 유상감자 자금을 어떻게 마련했는지, 또 올품이 정당한 방식으로 성장하고 있는지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올품, 유상감자 시행한 날 대구은행으로부터 100억 빌려

올품 감사보고서 등 전자공시에 따르면 이 회사는 지난해 1월20일 회사가 가지고 있던 230억 원(당시 주가) 규모의 엔에스쇼핑 주식을 담보로 대구은행에서 100억 원을 빌렸다.

올품 법인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유상감자로 회사의 자본금과 주식 수가 줄어든 날 또한 지난해 1월20일이다.

공교롭게도 회사가 보유주식을 담보로 100억 원을 빌린 날은 유상감자로 주주 김준영 씨에게 100억 원을 지급한 날과 같다.

김 씨에게 유상감자 자금을 지급하기 위해 회사가 이자까지 물어가며 주식담보대출을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들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하림 그룹 관계자는 "돈에 꼬리표가 없는데, 어떻게 그 돈이 유상감자로 빠져나갔다고 단언할 수 있느냐. 올품도 사업을 영위하는 법인이기 때문에 대출은 언제든 필요하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씨는 유상감자와는 별개로 2015년 주주자격으로 올품에서 24억 원을 빌리기도 했다. 하림 측은 "이 또한 매년 나눠서 내던 증여세를 내기 위해 빌린 것이고, 합당한 수준의 이자도 냈다"고 설명했다.

내부거래로 성장한 올품, 계열사 합병으로 덩치 키워

10조 대기업 하림의 꼭대기에 있는 올품은 내부거래를 발판으로 성장한 기업이다. 자회사 한국썸벧이 동물약품을 만들면 이를 다른 그룹 계열사에 팔아 돈을 벌었다.

때문에 한국썸벧판매라는 간판을 달고 있던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 동안은 내부거래비중(총매출액 대비 계열사 매출액)이 83%에 달했다.


이후 2013년 1월 계열사 제일홀딩스가 지분 100%를 가지고 있던 양계·축산기업 '(구)올품'을 사들여 덩치를 키우면서 사명을 지금의 올품으로 변경했다.

매출액을 늘리면서 내부거래 비중을 낮추기 위한 합병이었는데, 공교롭게도 (구)올품은 인수되기 직전인 2012년 실적이 적자전환했다. 실적악화는 회사 인수 가격을 떨어트릴 수 있는데, 이는 파는 쪽(제일홀딩스)에는 불리하고, 사는 쪽(당시 한국썸벧판매=현재 올품)에는 유리한 일이다. 인수 직전(2012년 말) 순자산이 692억 원에 달했던 (구)올품의 인수 가격은 783억 원이었다.

올품은 이후 2015년 1월 그룹 계열 할부금융사 에코캐피탈 지분 100%를 제일홀딩스와 하림홀딩스로부터 총 440억 원에 사들이기도 했다. 올품이 440억 원에 산 에코캐피탈은 2014년 말 기준 자본금만 450억 원에 순자산이 510억 원을 넘는 회사였다.

올품은 계열사의 지원 속에 무섭게 성장했다. 아들 김 씨가 회사를 물려받기 직전인 2011년 말 매출액 707억 원을 기록했던 올품의 작년 말 기준 매출액은 4160억 원에 달했다. 364억 원이었던 순자산은 3763억 원으로 5년 만에 10배 이상 불었다.

아들은 5년 전에 물려 받은 회사를 통해 10조 원대 그룹의 지배력을 장악했다. 하지만 증여세는 5년 전 회사의 규모를 기준으로 매겨 100억 원에 불과하다. 그리고 세금은 물려줬던 주식 중 일부를 (회사에)팔아 마련했다. 결국 김 회장 입장에서는 20대 대학생 아들에게 자산 규모 10조 원대의 대기업을 '저비용 고효율'로 물려준 셈이다.

(*지난달 하림그룹은 사업구조를 개편하며 올품 자회사 한국썸벧의 사명을 한국인베스트먼트로 변경했는데, 기사에서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사업구조 개편 전 사명을 그대로 사용했음.)

정재우기자 (jjw@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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