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둠' 마크 파버 또 독설, 거품 붕괴 경고하는 이유

장박원 2017. 6. 5.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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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파버
[글로벌 CEO열전-14] 마크 파버가 다시 독설을 퍼부었다. 지난 5월 31일 경제전문 채널인 CNBC와 가진 인터뷰에서다. 주요 내용은 이렇다. "모든 자산시장에 거품이 잔뜩 끼어 있다. 어떤 자산도 싼 것이 없다. 지금은 1999년과 2000년 무렵 정보기술(IT) 종목을 중심으로 주식시장이 폭락했던 상황과 유사하다. 언젠가는 거품은 꺼질 것이고 자산의 50%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뉴욕 증시의 상승장을 이끌고 있는 IT 주식도 안심할 수 없다. (최근 고공 행진하고 있는) 아마존과 넷플릭스도 한순간에 10% 폭락할 수 있다."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증시가 동반 상승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런 경고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구글과 아마존 등 실리콘밸리의 혁신 기업들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은데 벌써부터 거품을 얘기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전문가들이 더 많다. 워런 버핏을 비롯한 투자 귀재들도 당분간 경기가 좋은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고 본다. 이처럼 낙관론이 지배하는 상황에서 거품론은 뜬금없고, 잘 작동하고 있는 시장에 재를 뿌리는 것과 같다. 하지만 꼭 그렇기만 할까? 파버의 전력을 보면 그의 경고를 허투루 들을 수 없을 것이다.

그는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 스티븐 로치 모건스탠리 이코노미스트와 더불어 미국 월가의 대표적인 비관론자다. 그는 아시아 금융중심지인 홍콩에서 펀드운용과 투자자문을 주력으로 하는 리미티드를 30년 가까이 경영하고 있다. 그동안 파버는 여러 차례 폭락장을 예언했고, 이 말은 맞아떨어졌다. 무시무시한 뉘앙스를 풍기는 '닥터 둠'이란 별명을 갖게 된 것도 그의 비관적 전망이 적중했기 때문이다.

파버는 1987년 뉴욕 증시의 '블랙먼데이'를 앞두고 폭락을 예고했다. 그의 권유에 따라 주식을 팔고 현금화한 투자자는 재앙을 피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그는 주목을 받았다. 1990년에는 장기간 호황을 누린 일본 경제가 무너질 것이라는 징후를 발견했고,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를 일찌감치 경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을 경청했더라면 우리나라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의 증시 활황이 버블 때문이라는 경고도 처음이 아니다. 지난 2월에도 그는 폭락 가능성을 점쳤다. "미국 증시는 투매에 취약한 상태에 있다. 어느 한 사건을 계기로 붕괴되지는 않겠지만 본격적 하락세가 시작되면 매도가 눈사태처럼 진행될 것이다." CNBC와 이런 내용의 인터뷰를 하기 한 달 전에도 그는 주가 상승을 "더 높은 다이빙대에 올라서는 것"이라고 비유했다. 그만큼 낙폭이 클 것이라는 의미다.

1946년 스위스에서 태어난 파버는 취리히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업을 마치고 월가에 뛰어들었는데 고위험·고수익을 추구하는 정크본드 전문 투자업체인 드렉셀 번햄 램버트에서 경험을 쌓았다. 이 회사 홍콩법인 전문이사를 역임하는 등 주로 아시아시장에서 활동하다가 1990년 리미티드를 설립했다. 월가와 홍콩에서 금융시장을 분석하며 그가 획득한 투자 비결의 요체는 '역발상'에 있다. 시류나 통념에 휩쓸리지 말고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자산시장에 낀 거품을 적기에 통찰하는 힘도 여기서 나왔다. 시장의 밑바닥에 흐르는 실체를 파악하다 보니 그는 겉으로 드러난 것과 정반대 방향으로 투자했다. 처음엔 그를 이해하지 못했던 투자자들은 고수익을 얻고서야 역발상 투자의 진정한 가치를 인정하곤 했다.

그렇다면 현재 증시에 형성된 버블의 원인은 무엇일까? 지난해 말부터 파버가 언론과 가진 인터뷰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기업들의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기록적 수준에 도달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이 너무 많다. 미국을 비롯해 멕시코와 브라질, 아시아 증시도 올해 들어서만 10% 이상 올랐다. 거대한 역풍을 걱정하는 근거다." 그는 이런 진단에 대한 처방도 잊지 않았다. "거품 붕괴 징후가 나타나면 미국 정부는 다시 돈을 찍어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금과 구리 같은 광물은 올해 투자자들에게 확실하게 수익을 줄 것이다. 유가 상승도 꾸준하게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원자재 관련 주식이 매력적인 이유다."

사실 이런 방식의 분석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파버가 2008년 발간한 '내일의 금맥(Tomorrow's Gold)' 증보판 서문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신용 증가 속도가 늦춰지면 유동성 부족과 대출채권의 부실화가 곧바로 일어나게 되고 결국 위기가 오게 된다." 10년 전 쓴 글이지만 지금도 고개를 끄떡일 만한 내용이다. 탄탄한 이론을 기반으로 한 파버의 경고가 이번에도 적중할까.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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