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정권 때 긴급조치 위반·재일동포간첩단 사건 피해자들 재심 무죄 후 형사보상금 청구..정부 "예산 부족" 지급 미뤄 대법원 "형사보상금도 일종의 금전채권" 정부 상고 기각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긴급조치 위반과 재일동포간첩단 사건 등에 연루돼 옥고를 치렀다가 재심 판결로 무죄를 받은 피해자들이 국가로부터 보상금과 함께 지연 이자도 받을 수 있게 됐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오모(76)씨 등 22명이 정부를 상대로 낸 지연이자 청구 소송에서 오씨 등의 손을 들어준 원심을 확정했다고 4일 밝혔다.
1975년 11월 25일 재일교포 본국유학생을 중심으로한 학원간첩단의 검거 과정을 발표하는 김기춘 당시 검찰 대공수사국장. [중앙포토]
오씨 등은 유신 통치 시절 긴급조치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가 재심을 통해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소송에 참여한 고모(80)씨와 구모씨는 1975년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됐다. 당시 사건을 기획한 검찰 대공수사국장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다.
검찰은 당시 한국말이 서툰 21명의 재일동포 유학생들을 고문해 허위자백을 받아냈고, 일부는 사형 선고까지 받았다. 고씨는 징역 10년과 자격정지 10년형을 받고 7년4개월간 복역한 뒤 풀려났다. 이들이 명예회복한 건 그로부터 40년이 흐른 2013년 재심 판결을 통해서였다.
피해자들은 이후 형사보상청구제도를 통해 법원으로부터 수형기간에 따라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씩 형사보상 결정을 받았다. 하지만 정부가 예산이 부족하다며 수개월 동안 지급을 미루자 오씨 등은 지연이자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국가 소송 대리인인 정부법무공단은 형사보상법에 보상금 지급의 지연이자에 관한 규정이 없다고 주장했다.
1심 법원은 “개인이 국가에 대해 구체적인 금전지급청구권을 취득한 이상 국가가 예산 편성의 어려움을 들어 지연이자 지급 의무를 면할 수 있다고 볼 수는 없다”며 원고측 손을 들었다. 1심 법원은 “판결 선고일까지는 연 5%, 이후부터 연 20%의 지연 손해금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재일교포 본국유학생을 중심으로한 학원간첩단 사건 항소심 판결 모습.
2심 재판부도 “금전채권이 성립된 이상 이에 관한 민사법 규정이 적용된다”며 정부 측 항소를 기각했다. 대법원도 하급심 판결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국가가 관련 예산의 부족함을 들어 지체를 정당화할 수 없는 것은 금전 채무자가 자력이 부족하다면서 금전 채무의 이행지체를 정당화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설명했다.